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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는 나에게 일주일에 한 번, 용돈을 받는다. 용돈으로 슬라임 만들 때 필요한 대용량 물풀과 기타 재료를 산다. 친구들과 문방구에 가서 딱 봐도 조악한 플라스틱 반지와 팔찌를 산다. 간혹 돈이 남을 때는 군것질을 해 용돈을 깔끔하게 다 쓴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 되면 아이는 "엄마, 용돈!"이라고 말한다. 그 바쁜 아침에 용돈은 어쩌면 잊지도 않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용돈과 상관없이 아이가 필요하다는 건 거의 사준다. 입고 싶다는 걸 사 입히고 연휴나 휴가 때는 최대한 아이가 가고 싶다는 곳에 간다. 비단 우리 아이뿐 아니라 요즘 대부분의 부모들이 이럴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른들끼리 모이면 종종 나오는 푸념 중 하나가 '요즘 애들은 결핍이 없어'라는 말이다. 얼마 전 동네 엄마들과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가 이런 의문이 생겼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결핍은 경제적인 부분에만 한정되는 게 아닐까. 갑자기 잊고 있었던 예전 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여행 중에 알게 된 아이의 결핍
 
아이끼리는 금방 친해진다는 데 우리 아이는 왜 아닌가 싶어, 실망스러웠다.
 아이끼리는 금방 친해진다는 데 우리 아이는 왜 아닌가 싶어, 실망스러웠다.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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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7살 때, 다른 나라로 3개월 동안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난 아이가 경험할 새로운 세상과 물질적 결핍(한국에서만큼은 풍족하지 않을 테니)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 생각했다. 짐이 무거워 아이의 장난감은 하나도 가져오지 못했고 동화책은 한 권만 챙겨갔다.

아이는 맥도날드 해피밀 세트의 장난감을 하나씩 모으며 아주 소중히 다뤘고 동화책 대신 내 일기를 재미있게 읽으며 자신의 경험을 덧붙였다. 오랜만에 간 한국 식당에서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 누구보다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한국에서 누렸던 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결핍이 생겼다. 바로 '소통의 결핍'이었다. 난 아이의 손을 끌고 유명한 교회와 성당들을 보러 다녔다. "멋있지? 대단하지 않아?"라고 하면 아이는 "뭐 별로 볼 것도 없네. 이게 다야?"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아이가 여행을 와서 더 짜증을 낸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유명 여행지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큰 놀이터가 있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놀이터로 달려갔는데 조금 놀다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엄마, 이진이랑 여기서 술래잡기하면 엄청 재밌을 거 같은데 아쉬워."
"쟤네들이랑 같이 놀아. 저기 있는 애가 너 쳐다보는데?"


블로그나 여행 에세이를 보면 아이끼리는 금방 친해진다는 데 우리 아이는 왜 아닌가 싶어, 실망스러웠다. 아이는 부끄러운 듯 쭈뼛대다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 여행지에선 한인 숙소에 묵었는데 아침 8시에 조식을 주었다. 아이는 아침잠이 많은데도 일찍 일어나 씻고 오전 8시가 되기도 전에 식사 장소로 갔다. 주인아저씨 귀찮게 하지 말고 이따가 가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뒤늦게 식당에 갔더니 아이는 식사 준비를 하는 주인 아저씨와 어제 갔던 곳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아이의 말을 잘 들어준다. 관광지에서 보지 못했던 깔깔 웃는 아이의 모습을 그곳에서 봤다. 아이는 그 시간이 즐거워 보였다. 생각해 보니 가족이 아닌 한국 사람과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그때였다.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말하기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아이에게 친구가 없고 소통이 되지 않는 이곳이 과연 즐거운 곳일까. 장기간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경험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그 뒤로 나는 아이와 더 많이 이야기하고 아이의 의견도 한 사람의 의견으로 받아들여 우리가 갈 곳을 함께 정했다. 

경제적 결핍만 생각하는 어른들
 
학원 스케줄이 있으니까. 아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학원 스케줄이 있으니까. 아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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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결핍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덮친 지금이 절정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는 요즘 들어 부쩍 유튜브 시청 시간이 늘었다. 친구와 만나고 전화하는 시간보다 유튜브를 보고 댓글 다는 시간이 더 길다.

식사시간에도 친구들과 어떻게 지낸다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즐겨 하는 게임 업그레이드 소식이나,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버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요즘 누구랑 친해?"라는 내 말에 한참 고민하는 아이를 보면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관계의 결핍 만큼 소통의 결핍도 생겼다. 촘촘한 스케줄에 따라 생활하는 아이들이라면 시간의 결핍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아이도 월요일에 학교가 끝난 후, 수학학원 그다음은 영어학원, 그다음은 수영학원에 간다.

한 학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서도 안 되고 딱 정해진 만큼만 시간을 보내고 바로 이동해야 한다. 학원 스케줄이 있으니까. 아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내가 아이 나이였을 때도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친구를 만날 시간, 놀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아이에게 학원이 많으면 학원을 좀 정리할까, 하고 말해도 스스로 불안한지 그건 또 싫단다.

아이마다 느끼는 결핍은 다 다를 것이다. '요즘 아이들' 하며 판단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 아이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생각지도 못했던 결핍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요즘 아이들이라고 결핍이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나 어릴 때와 결핍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결핍도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나와 비슷한 연령대 사람들과 어릴 적 이야기를 하다 보면 월급날 아빠가 사 오시는 치킨이나 아이스크림이 좋았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결핍이 결핍으로 남지 않고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우리 아이들의 결핍도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핍이 좋은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몇 달 전부터 아이와 대화하다 한 달에 한 번, 평일에 학원을 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날을 정하기로 했다. 아이는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어떤 날로 할까, 그날엔 무얼 할까, 계획하느라 바쁘다. 물론 아이는 학원 스케줄이 가장 빡빡한 날에 쉬려고 하고 난 학원 스케줄이 하나 있는 날에 아이가 쉬었으면 해서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질 때도 있다.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지만, 행동과 생각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은 늘 쉽지 않다. 하지만 엄마가 된 이상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마음을 내려놓는다.

'한 달에 한 번인데 빠지면 뭐 어때. 길게 보자. 길게.'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group대체왜하니 http://omn.kr/group/teen_why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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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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