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중3 남자다. 농사는 힘들다는 걸 깨닫고 있는 청소년이다. 청소년과 농사는 왠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 것 같지만 그래서 마음에 든다. 농사는 힘들지만 일하고 나면 왜 이렇게 뿌듯하고 즐거운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 농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아마 대부분은 힘들다는 투정이 되겠지만.

부모님과 함께 자발적으로 주말 농부가 되다

농사일의 시작은 내가 16살이 되는 올해 설날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시는 농사일이 점점 힘에 부치는 게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자발적으로 주말 농부가 되기로 했다.

우리 가족에게 주말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가는 날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물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밭에서 일을 거들었겠지만 그때는 일이라기보다는 '놀이'나 '체험' 정도였다. 올해는 아버지 표현에 의하면 내가 거뜬히 한몫을 할 만큼 컸다고.
 
복숭아 잡초제거 중
 복숭아 잡초제거 중
ⓒ 전찬혁

관련사진보기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할머니가 차려주신 뭇국과 불고기를 한 그릇 뚝딱 먹고 바로 밭에 투입되었다. 할아버지께서 갈아 놓으신 밭에 비닐을 씌우고 씨감자도 심었다. 하루종일 허리 굽혀 일했는데, '비닐을 씌우고 씨감자도 심었다' 딱 이 한 줄로 요약할 수밖에 없다니… 이 일은 다음 날도 하루종일 이어졌다.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내가 혼자 심은 씨감자만 40킬로그램 정도였다. 이거면 다행인데 씨감자 심기가 끝나니 쪽파 모종 심기로 종목이 바뀌었다. 그 후로도 어느 주말엔 하루종일 당근을 뽑고, 또 어느 때엔 대파만 줄곧 판다. 해가 지면 일이 끝날 줄 알았더니 뽑은 대파의 흙을 털고 다듬어 무게 맞춰서 저울 달아 묶고 포장하기가 이어진다.

그 후로도 주말이면 자주 우리 가족은 할머니댁 밭일을 거들었다. 힘든데 왜 기분이 좋았을까?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과 깨달음이 순간순간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밭일은 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한다. 어느 날은 할머니께서 직접 밭에 나오셨는데, 할머니 말씀으로는 쪽파를 심으러 나왔다고 했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눈치를 챘다. 할아버지 감시가 주된 목적이라는 걸. 할아버지 나이가 돼도 땡땡이는 어림없는 거구나! "풋"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뭔가 삶이라는 건 살아 있는 한 살아가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나 할까!

내가 밭일을 하며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간식이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해질 수 있구나를 느끼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가 된다. 어느날은 동생이 간식으로 초코파이와 망고맛 음료수를 가져왔는데 밭에서 건네받는 이 간식은 당연히 꿀맛이며, 드물게 동생이 이뻐 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핸드폰과 한몸이던 내가 알게 된 노동의 기쁨

주말에 가족이 다 같이 시골로 가지 않는 평범한 주말 풍경은 이렇다. 나랑 동생은 방에서 주로 핸드폰을 하고, 어머니도 역시 안방에서 누워 계시다 밥 시간이 되면 우리 밥을 차려주시고 다시 침대와 한 몸이 되신다. (이게 기사로 나가면 어머니가 눈을 흘기시지 않을까!) 아버지는 주말에도 별일 없으면 회사에 출근하신다.

솔직히 이런 주말도 나쁘진 않다. 핸드폰과 한 몸이 되는 기쁨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분명한 건 시골에서 농사 짓는 주말도 썩 괜찮다는 것이다. 밭에서 몸 움직이고 땀 흘리는 와중에 코로 들어오는 당근 냄새, 대파 냄새, 온갖 풀 냄새와 흙 냄새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이게 노동의 기쁨인가 싶다.

우리 왔다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차려 내시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마디가 눈에 들어오고, 할머니의 감시(?) 속에서도 묵묵히 할 일 하시는 할아버지의 둥근 등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복숭아 나무 솎아내기
 복숭아 나무 솎아내기
ⓒ 전찬혁

관련사진보기

 
시골에 가지 않았다면 각자 지냈을 주말에 가족이 다 같이 한 세트로 움직이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핸드폰 좋아하는 나도 핸드폰만 주구장창 하고 있으면 이래도 되나 싶지만 달리 상황을 바꿀 의지가 생기진 않는데, 밭일을 하고 있으면 이거 하길 잘했다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아! 그렇다고 농사가 힘들지 않은 건 절대 아니다. 몸은 무지막지하게 힘들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힘든데,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 또한 참 마음에 든다. 순수하게 노동을 하고 있다는 감각은 나를 꽤나 멋진 인간으로 느끼게끔 해준다.

요즘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실태에 대해 어른들의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 나는 당당히 이야기하고 싶다. 청소년에게 농사를 가르치라! 일을 할 때는 물론이고 일이 끝나도 피곤해서 고꾸라질 것이다. 핸드폰 할 체력이 없다.

댓글1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에서 국어썜이 알려주셔서 가입한 16세 기자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