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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통령 선거(3.9)와 지방선거(6.1)가 멀지 않았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벌써 몇 년째 세계 꼴찌다. 급기야 지난해엔 처음으로 인구가 줄었다. 최근 연구는 가파른 인구 감소(저출산)가 수도권으로의 지나친 인구 집중 탓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수도권으로 몰리는 발길을 돌려세우지 못하면 인구 감소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큰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도 로컬(수도권 밖 지역) 의제는 여전히 뒷전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다시 로컬로 향하게 할까.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로컬 연구자들을 만나 의견을 물었다. 4회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기자말]
지난 18일 행정안전부는 시·군·구 89곳을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동안 관련 연구들은 있었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구체적 지역까지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연평균 인구증감률, 인구밀도, 청년 순이동률을 비롯한 8개 지표로 '인구감소지수'를 개발하고, 이를 잣대로 인구 감소 지역을 선정했다고 한다.

경기·인천 지역의 일부 시·군을 비롯해 광역시의 자치구들도 이번에 이름을 올렸는데, 정부는 당장 내년부터 매년 1조 원씩(10년간) '지방 소멸 대응 기금'을 마련하고 곧 특별법도 제정해 이들 지역을 다방면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자리도 늘리고 청년들도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지방 어느 중소도시의 원도심 풍경
 지방 어느 중소도시의 원도심 풍경
ⓒ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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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지자체들이 저마다 현실에 맞는 '맞춤형' 정책 대안을 '지역 주도의 상향식'으로 수립해 시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뒷받침하겠다는 대목이다. 전국 곳곳에 혁신도시를 조성해 인구를 분산시키려던 정책처럼 중앙정부가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세워 똑같이 내려 먹이는 것만으로는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지역마다 제대로 된 '맞춤형' 해법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쓴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역의 일자리와 청년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한테 일자리를 제안해주기도 하는데 이 지역에 있는 회사에는 안 가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다"면서 "이 지역 노동시장에 대한 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청년들이 기대하는 일자리와 현실 일자리 사이의 간극이 큰 상황에서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일자리들만 늘려서는 청년들을 지역에 붙잡아두는 것조차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양 교수는 여성들이 갈 만한 좋은 일자리가 없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했다.

"여성 정규직 자리가 없으면 여성들을 지역에 붙잡아두거나 또는 오게 할 수 없다. 이게 키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결국 좋은 일자리에 여성을 얼마나 채용하는지가 지역의 혁신 역량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마산·경남 지역의 맞춤형 전략은 무엇일까. 최근 경남대 연구실에서 그와 나눈 대화를 옮겼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 경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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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대에서 교수로 일한 지 5년이 된 걸로 안다. 가까이서 지켜 본 지방 사립대 학생들의 현실은 어떤가.

"꼭 이 지역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기보다는 지역에 마땅한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니까 서울에 가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하려는 일이 서울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게 맞다. 거꾸로 말하면 지역엔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거다. 그런데 막상 서울로 가려면 주거비도 많이 들고, 가족도 없으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가야 한다면 가는 거다."

- 최근 논문에서 지역 청년들의 '일 경험'을 다뤘다. 설명을 해달라.

"학교에서 취업 담당 교수를 맡고 있다. 학생들한테 일자리를 제안해주기도 하는데 이 지역에 있는 회사에는 안 가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 지역 노동시장에 대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n차 밴더(하청)고, 저 회사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추가 수당도 안 주고 일을 시키고...' 이런 것들을 학생들도 벌써 다 안다.

남학생들은 군대 가기 전에 지역 기업들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해보거나 제대하고서도 학비 벌려고 또 일을 한다. 많이 벌면 한 달에 300만 원도 버니까. 그러면서 상황을 다 알게 되는데 자기들이 보기엔 관리직이라고 해도 노동조건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으니까 가기가 싫은 거다. 

여학생들은 그마저도 갈 데가 없다. 괜찮은 자리라고 하면 대개 사무보조, 또는 중소기업의 회계·경리 자리인데 월급을 많이 받아도 불안한 자리들이다.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나와야 할 것 같은 자리들... 그러다보니 여길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서도 거제 여성 청년들의 처지를 주요하게 다뤘던 게 인상적이었다. 마산은 거제보다 더 큰 도시인데 이곳 여성 청년들의 현실은 어떤가.

"청년들이 몇 살에 지역을 떠나는지를 살펴본 연구가 있다. 스무 살 무렵에는 남학생의 순유출이 많다. 그런데 이들을 계속 따라가 보면 스물일곱 살 쯤 돼서 다시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대기업이나 안정적인 중견기업 제조업 사무직, 또는 기술직 일자리를 구하려는 경우다.

반면 여성들은 스무 살에는 남성에 비해 잘 떠나지 않는데, 부모들이 허락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도 여전히 지역의 교육대나 사범대를 보내려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여기서 대학을 다니다가 졸업할 나이가 되면 부모랑 의절을 하는 한이 있어도 못 살겠다면서 떠난다. 교대 사대를 나와서 수도권으로 임용고시를 보기도 한다. 

그렇게 떠나고 나면 여성들은 절대로 안 돌아온다. 한편으로 공공부문과 전문직·준전문직 일자리를 제외하면 여성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없고, 같은 일자리라 하더라도 처우가 서울만 못한 경우가 많다. 물론 문화적인 면도 영향을 미친다."
 
양승훈 교수가 5년간 거제 대우조선에서 사무직 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양승훈 교수가 5년간 거제 대우조선에서 사무직 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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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술 기반의 혁신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조금 더 설명을 해달라.

"부산·울산·경남은 죽으나 사나 제조업을 해온 지역이다. 앞으로도 그 자원과 경험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와서 무슨 관광특구로 당장 전환하긴 힘들지 않겠나. 그래서 기술 기반으로 혁신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 지역이 가진 역량은 결국 제조업 기반의 기업들과 공과대학들이다. 이 인프라를 활용해야 한다.

세운상가가 메이커스페이스로 진화해가는 것처럼 마산도 봉암단지 같은 곳들에는 공구상가들도 많고 베테랑 엔지니어들, 장인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곳에 일자리를 만들고 창업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현대자동차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와 수소차로 전환하고 있는데 그러려면 같이 협력을 해나갈 전기장치 업체들을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없으면 독일 같은 해외에 나가서 부품을 사오거나 아니면 수도권에 시설 투자를 한다. 지금까지는 기술 개발을 할 수 있는 인프라나 인재들이 수도권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기도 지금까지 중화학기업들, 현대자동차나 GM 같은 회사들과 함께 일했던 기업들과 네트워크가 있다. 이곳에서 청년창업, 기술기반 창업을 유도하고 뒷받침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제조 역량이 구축돼 있고, 경험이 누적돼 있는 곳이다. 우스개로 축구골대 무너지면 용접할 수 있는 사람이 지천인 동네다."

-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선정 때도 구미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이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섰지만 결국 용인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쓸 때만 해도 구조적으로만 생각했다. 수도권으로 다 빨려 들어가는 단단한 구조부터 깨지 않으면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 거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터질 수도 있다고 본다.

가령, 미국 시애틀이 언제부턴가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테크 스타트업의 천국이 됐는데, 시작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본사를 옮긴 거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애틀로 갈 때 여건이 좋아서 간 게 아니라 그냥 빌 게이츠 고향이라서 간 거다. 가고 나서는 지역 대학들에 대규모 투자도 하고 엔지니어들, 직원들도 지역 대학들에서 뽑았다. 그러면서 인재들도 몰려들고, 아마존과 스타벅스를 비롯한 유수의 기업들도 뒤따라 자리를 잡으면서 혁신 클러스터가 형성 된 거다.

서울에 이어 판교도 비싸지면 기업들도 대체재를 찾게 될 텐데, 물론 편리한 길은 조금씩 조금씩 남하하는 것일 테지만 아예 배경이 다른 곳에서 과감하게 도전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스웨덴 예테보리나 말뫼도 조선업이 쇠퇴한 뒤에 오래된 공장 주변에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할 수 있는 사이언스파크를 조성해 기술 개발과 창업을 뒷받침했다. 우리도 경남처럼 산업 기반과 제조 역량 그리고 사람들의 기술 숙련도가 축적돼 있는 곳들에서 얼마든지 해볼 수 있다."

- 여성 취업을 늘리는 건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명박정부 때 강만수 산업은행회장이 고졸 고용과 여성 고용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적이다. 당시 대우조선도 산업은행이 관리하고 있어서 엔지니어(사무직)를 포함해 사무직 공채 때 여성을 30% 가까이 뽑았다. 그때 뽑힌 여성들을 추적조사 해보니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문제없이 잘 다니고 있더라. 육아휴직을 하더라도 다시 돌아와서 일을 해나가고 있다. 여성들을 많이 뽑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여성 엔지니어를 안 뽑았던 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쁜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정규직 자리가 없으면 여성들을 지역에 붙잡아두거나 또는 오게 할 수 없다. 이게 키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결국 좋은 일자리에 여성을 얼마나 채용하는지가 지역의 혁신 역량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생산직도 마찬가지다. 미국 자동차 공장들을 보면 자동차 조립 라인에 여성들도 많다. 우리나라도 정규직들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아르바이트하러 오는 여성들이 많다. 여성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사무직이나 기술직에서는 차별을 둘 이유가 없다고 본다. 여성 고용을 늘리기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차별 해소를 위한 적극적 조치), 할당제를 정책적으로 해도 된다고 본다. 공대 안에서 여성 비율이 가장 작은 기계공학과조차도 여성들이 20% 정도를 차지한다면 회사에서도 여성 엔지니어를 그 정도는 뽑아야 하지 않겠나."
 
거제 원도심 장승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소셜벤처 '공유를 위한 창조'가 장승포로에 나란히 조성한 세 개의 공간들
 거제 원도심 장승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소셜벤처 "공유를 위한 창조"가 장승포로에 나란히 조성한 세 개의 공간들
ⓒ 공유를위한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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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로컬 크리에이터, 지역 가치 창업가를 육성해야 한다는 정책은 어떻게 보나.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도 폐공장들이 많은데 그런 곳들을 펍으로 바꾸고 셔틀버스로 부산과 마산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공장도 위험하지 않게 조금만 손을 보면 굉장히 재밌는 공간이다. 망해가는 재래시장에 청년몰 만드는 것보다 나을 거라고 본다. 다만 무얼 하든 중구난방으로 만들기보다는 규모의 경제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거제 원도심인 장승포에 새롭게 공간을 조성하고 청년들을 불러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소셜벤처 '공유를 위한 창조'를 응원하려고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적도 있다. 관심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데, 꼭 승리하길 빈다."

[관련기사]
[로컬에서 희망찾기③] "일 모르고 의지 없는 공무원, 떠나기를 기다릴 수밖에"(http://omn.kr/1vdtb)
[로컬에서 희망찾기②] "도시가 죽고 사는 건 리더에게 달렸다, 이 두 도시를 봐라"(http://omn.kr/1v53b)
[로컬에서 희망찾기①] "잘 되는 가게들의 비밀? 로컬에서 살아남으려면..."(http://omn.kr/1v2r4)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

양승훈 (지은이), 오월의봄(2019)


태그:#양승훈, #지역소멸, #인구감소, #로컬,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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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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