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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에 자리한 초안산은 조선시대 궁녀와 환관, 사대부, 중인을 비롯하여 여러 계층의 무덤이 흩어져 있는 곳이다. 수풀 사이로 봉분과 상석, 문인석, 비석, 동자석 등이 산재하여 그때의 묘제와 석물 변천사 연구의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 때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 따르면 혼인을 할 수 없었던 궁녀들은 세월의 시름을 귀뚜라미와 함께 보냈다고 한다. 

당시에 대나무로 만든 곤충 채집통을 충롱(蟲籠)이라고 불렀다. 등불을 키는 등롱과 같은 의미다. 여기에 베짱이나 방울벌레, 귀뚜라미 같은 곤충을 담아서 머리맡에 두고 고즈녁한 소리를 즐겼다. 세월이 흐르면서는 귀뚜라미 싸움으로 변질되었으나 가을의 전령사가 전해주는 노래는 허허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송나라 시절에는 두실솔(斗悉率)이라는 귀뚜라미 싸움이 크게 유행했다.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극성스러웠는데 남송 시대의 재상 가사도(賈似道)는 몽골과 전쟁을 할 때도 애첩들과 이 싸움을 즐겼다. 왕후였던 누이의 후광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가사도는 '귀뚜라미 정승'으로 불리울 정도로 두실솔에 탐닉했다.
 
꽁무니에 긴 산란관을 갖고 있다.
▲ 귀뚜라미 암놈 꽁무니에 긴 산란관을 갖고 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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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계 최초의 곤충학 서적인 촉직경(促織經)을 펴낼 정도로 귀뚜라미의 번식과 조련 방법에 골몰했다. 실권을 장악한 가사도는 전횡을 일삼다가 말년에 부하 장수에 의해서 독살 당한다.

귀뚜라미 싸움은 이후에도 3백 여년 간이나 성행하였다. 명대의 선덕제는 귀뚜라미 전문 사육사를 두면서 두실솔에 열광했고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가장 크게 번성하여 도박시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싸움에서 우승한 귀뚜라미 한 마리가 말 한필 가격에 거래되었으니 전국민이 빠져든 버블이었다. 

현재도 명맥이 이어져 귀뚜라미 시장이 열리고 있다. 베이징의 화냐오(花鳥) 시장은 조류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애완동물을 파는 곳이다. 이 시장 안에는 밍충제(鳴蟲街)라고 하는 거리가 있는데 이름 그대로 '우는 곤충'을 파는 거리다. 지금도 서민들의 오락거리로 귀뚜라미가 매매되고 있으며 외국인에게 더 이름이 알려진 장소다.

귀뚜라미 싸움은 활동이 왕성한 8, 9월에 절정을 이룬다. 직접 구경한 사람에 의하면 귀뚜라미가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는다고 한다. 정성들여 보살핀 사육사의 명령에 따라 자세를 전후좌우로 바꾼다고하니 놀랍기 그지 없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했던 1988년에는 아카데미 9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마지막 황제>가 개봉 되었다. 청나라의 어린 황제 '푸이'가 신해혁명으로 부터 시작하여 일제에 의한 꼭두각시 황제가 되었다가, 중공의 문화대혁명 때 평민으로 병사하는 일생을 보여준다.

세 살에 등극한 푸이는 궁궐의 한 쪽에서 들리는 벌레 울음 소리를 따라간다. 한 노인이 가슴 속에서 여치를 꺼내 푸이에게 건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북경여치(Gampsocleis gratiosa)인데 울음소리는 귀뚜라미였다. 곤충에 대해서 잘 모르는 관계자들이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음향효과였다.
 
육식을 위주로 하는 잡식성이라 다른 곤충을 사냥해서 먹는다.
▲ 여치 육식을 위주로 하는 잡식성이라 다른 곤충을 사냥해서 먹는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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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귀뚜라미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나온 지미니 크리켓(Jiminy cricket)일 것이다. 의인화 된 지미니는 피노키오가 양심을 찾아 인간으로 환생하는 여정에서 멘토이자 안내자 역할을 맡았다.

가을을 물씬 느끼게 하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짝을 찾는 수컷의 세레나데다. 암놈은 수컷이 내는 소리를 통해 짝짓기가 가능한지 여부를 파악한다. 심지어는 노래를 부르는 수놈이 건강한지 여부와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울음소리를 통해 수컷의 사회적 지위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경쟁에서 진 수놈은 울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짝짓기를 포기 하지는 않는다. 숨 죽이고 가만 있다가 소리를 듣고 찾아온 암놈을 몰래 낚아채 강제로 교미를 시도한다. 귀뚜라미는 추운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 광역 분포한다. 여러 나라에서 식용곤충으로 사육되고 있으며 동물의 사료로도 이용된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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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를 펴냈다. 다음 세대를 위한 화보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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