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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학계에서는 우리의 강리도(1402)를 매우 다양한 분야와 관점에서 조명 평가하고 더 나아가 그로써 역사서를 고쳐 쓰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앞으로도 그러한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영국 출신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지도학자인 페르디난데즈 아르메스토(Felipe Ferdiández-Armesto, 아래 '아르메스토'로 약칭)가 강리도를 어떻게 조명하고 평가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000여 쪽에 이르는 그의 명저 <세계사 The WORLD, A HISTORY>(2006)는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를 포괄하는 인류문화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지도를 역사 해독의 핵심 준거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총 10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원전 500년 이후부터는 각 부의 첫 장에 그 시대를 대표하거나 거울이 되는 기념비적 지도를 싣고 있다.

나는 언젠가 미국 여행 중에 서점에 들러 이 책을 우연히 들춰보았는데 뜻밖에도 강리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6부(13-14세기)의 첫 머리에 웅장한 강리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영국 학자 아르메스토 세계사 책 표지
▲ 아르메스토 세계사책 영국 학자 아르메스토 세계사 책 표지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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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스토 세계사 속의 강리도
▲ 세계사 책의 강리도  아르메스토 세계사 속의 강리도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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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오른쪽 한 면을 강리도가 장식하고 있고 왼쪽 면에는 '한국의 세계지도Korean World Map'라는 제목으로 강리도를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세계지도: 약 1402년 경부터 나온 것으로서, 강리도Kangnido라 알려진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다. 이 지도는 또한 한국에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지도이기도 하다. 14세기의 중국지도를 바탕으로 삼은 강리도는 아프리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아라비아 반도는 지도의 좌측 아래쪽에 그려져 있다. 인도 아대륙은 거대한 중국 땅에 함입陷入되어 있다. 우 상단에 놓인 한반도는 실재보다 훨씬 크게 그려져 있으며, 일본은 실제보다 훨씬 멀리 아래 쪽에 놓여 있다.
 
왜 이 책은 13-14세기의 세계사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지도로 조선초의 강리도를 등장시킨 것일까? 당시 조선인의 세계상이 무슨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일까?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조선초 한국인의 세계관이라기 보다는 이 지도가 지니고 있는 세계사 사료로서의 독보적인 가치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3-14세기는 몽골의 시대로서 최초로 유라시아 및 아프리카의 교통이 이루어졌으며 명실공히 최초의 세계사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강리도는 바로 그 이채로운 시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초상화임과 동시에 지식  정보의 창고인 셈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료는 강리도가 거의 유일하다. 세계 학계에서 강리도를 진귀한 세계사적 문물로 높이 평가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앞서 언급한 아르메스토는 또 다른 저서에서 강리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1492: 세계가 시작된 해(1492: The Year the World Began)>(2009)에서 저자는 강리도를 세계사적 맥락의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 '세계사적 맥락의 새로운 관점'이란 다름이 아니라, 서양 최초의 지구의인 베하임 지구의(Behaim Globe,1492년경 제작)와 강리도를 연계시켜 조명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동안 외국의 강리도 연구가들이 강리도를 서양의 지도와 대비할 때에 대체로 15세기 중반의 이태리인 프라 마우로Fra Mauro의 세계지도나 14세기 후반 유대인이 그린 카탈란 아틀라스Catalan Atlas를 선택했으며, 베하임 지구의와 연계시키는 경우는 없었다. 필자가 아는 한에는 그렇다. 
 
베하임 지구의(1492년 경)
▲ 베하임 지구의 베하임 지구의(1492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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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베하임 지구의는 어떤 물건일까?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이 지구의는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의 상인 마르틴 베하임(Martin Behaim, 1459-1507)이 제작한 것으로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베하임은 1480년대 초반 고향을 떠나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이주하여 수년 동안 거기서 살았다. 당시 리스본은 탐험 항해 및 지리적 발견의 중심지였다. 항해와 지리 그리고 무역과 상품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그곳에 모였고 또 그곳으로부터 흘러 나왔다. 상인들, 항해가와 더불어 일류 지리학자, 수학자 및 지도 제작자들이 또한 모여들었으며 정보와 지도를 노리는 스파이들도 암약했다.

베하임은 자신이 포르투갈의 서아프리카 원정항해에 직접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그가 여러 지도와 항해 정보를 폭넓게 수집한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는 1490년 고향인 뉘른베르크로 돌아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전하는 말에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베하임에게 지구의 제작을 의뢰했다. 화가와 기능공의 도움을 받아 베하임이 기념비적인 지구의를 완성하는 데에는 2년 남짓이 걸렸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지구의를 '지구사과Erdapfel'라고 불렀다. '지구사과'는 현재 뉘른베르크 국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베하임의 '지구사과'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혁신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프리카와 인도양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종래의 전통적인 서양지도들에는 아프리카의 남단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게 아니었다. 육지의 띠가 아시아의 동단까지 이어져 있었다, 따라서 인도양은 육지에 갇힌 내해였다.

그러한 지리관념에 균열이 생긴 것은 1488년 포르투갈 항해가 디아스Dias가 희망봉을 항해하면서였지만 그즈음에도 여전히 희망봉 저 너머의 해안선과 바다의 모습은 추측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베하임 지구의 상에서 아프리카는 바다로 둘러 싸여 있고 인도양은 개방되었다.

위의 지구의에서 보다시피 아프리카의 남단이 동쪽으로 뻗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는 종래의 전통적인 서양 지도의 유산이 반영된 것이다. 아무튼 베하임의 '지구사과'는 유럽에서 인도양으로 진입하여 향료와 황금이 지천에 널려 있다는 동방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웅변해 주었다. 그로써 서양인들은 동방 진출의  욕망을 지펴 올렸던 것이다.

한편 베하임의 '지구사과'에는 세계사를 바꾼 엄중한 오류가 담겨 있었다. 지구의 크기 자체를 매우 작게 계산한 데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 불과 며칠 만에 일본이나 중국 땅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묘사한 점이었다. 콜럼버스는 그러한 오인에 의존하여 서쪽으로 배를 몰았다. 그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대륙이 신대륙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아무튼 베하임의 지구의는 여러모로 동시대 사람들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고 흥분을 일으키기에 족했다. 이 대목에서 아르메스토는 강리도를 베하임 지구의가 유럽인들에게 준 충격과 연계시킨다.

아르메스토는 "베하임 지구의는 한눈에 세계를 조망할 수 있게 해 주는 놀라운 작품"이며 "많은 오류와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기록물"이라고 평가한다. 나아가 그는 당시  동양에서 나온 지도에 관심을 돌린다면, 가장 훌륭한 지도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강리도라고 지적한다(출처: 아르메스토의 <1492: The Year the World Began>).
 
강리도는 1402년에 만들어졌고 많이 복제되었다.  지도 하단에 적힌 발문에서 유학자 권근은 지도의 완성을 흐뭇이 바라보면서 지도 제작의 과정과 목적을 기술하고 있다. 세계은 극히 넓어서 안으로  중국으로부터 바깥의 사해에 이르기까지 몇 천만리인지 알 수 없다고 권근은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지도들이 너무 엉성하거나 너무 간단하다고 비판한다.

강리도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전체를 보여준다. 한반도는 거대하고 상세한 반면에 유럽의 형상과 윤곽은 애매하고 개략적이지만 거기엔 약 100개의 지명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중국은 크고 상세하다. 인도는 미흡하지만 그 형상을 식별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는 서단 쪽에 짓눌려져 있다. 아프리카 내부의 대부분은 거대한 내해가 차지하고 있다.

지구적 시야를 담고 있는 강리도는 자부심과 기백이 넘친다. 1492년의 지구의가 유럽에서 일으킨 흥분은 조선에서 강리도가 일으킨 그것과 매우 흡사한 것으로 보인다."(출처: 상기 책자 관련 부분 요약)

우리는 영국 학자 아르메스토의 관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 학계의 강리도관과 대조해 본다면?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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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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