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회에는 '초심'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편집자말]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1시간 5분이었다.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운동하러 가는 시간 5분, 유산소운동 5분, 근력운동 30분, 오는 시간 5분, 와서 밥 차려주는 시간 20분. 근력운동 시간이 다소 부족한 것이 아쉽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밥과 반찬은 점심때 해 놓은 것이 있으니 간단히 달걀찜 정도만 해서 차려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5분 단위로 디테일하게 계획하고 움직이는 이유는 소설 수업 때문이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가, 퇴사 후 본격적으로 창작 수업을 듣고 있었다. 여유 없이 5분 단위로 계획했던 일은 조금씩 늦어지고 있었다. 밥 차리는 시간이 늦어졌고, 달걀찜 하는 시간이 늦어졌다. 내 밥 먹는 시간은 포기했다.
 
아이에게 서두르라고 재촉하다 접시가 깨졌다. 좀 천천히 밥을 먹어도 되었을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에게 서두르라고 재촉하다 접시가 깨졌다. 좀 천천히 밥을 먹어도 되었을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 이혜선

관련사진보기

 
이날따라 아이들은 장난치며 밥을 먹었다. 밥 먹는 속도가 더뎠다. 분명 내가 수업에 들어가고 나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먹을 태세다. 아이들에게 얼른 먹으라고 재촉했다. 이미 소설 수업은 10분이 늦은 상태였다. 먹은 그릇은 설거지통에 넣어두라고 일러두고 일어서려는 찰나, '쨍그랑'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밥 먹으면서 장난치더니 그릇을 식탁에 떨어뜨린 것이었다. 깨진 그릇과 함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머릿속에 복잡한 이성과 감정이 뒤섞여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치 백지 답안지를 받아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이랄까.  

감정세포가 하는 말... 엄마의 초심은 어디로 갔을까

감정 : 이미 수업은 10분이 늦었는데, 저걸 치우고 가면 더 늦을 거야. 아이는 왜 이 시점에서 저걸 깨서 나를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지?
이성 : 아이는 일부러 그러지 않았어.
감정 : 내가 이미 장난하지 말고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었잖아.
이성 : 빨리 밥 먹는 것과 그릇 깨지는 건 상관없는 일이야.
감정 : 아이 때문에 더 늦게 생겼어!
이성 : 어차피 늦은 수업이었어. 10분 더 늦게 들어간다고 달라지지 않아.
감정 :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아.
이성 : 참아. 화를 낸다고 깨진 그릇이 붙지도 않고, 늦은 수업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지금은 이걸 치울 때야. 아이도 이미 얼어 있잖아.


화를 간신히 참아내느라 입을 꾹 다물었고, 아이는 내 눈치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 미안해"라고 했다. 차마 "다치지는 않았니?"라고 묻지는 못했다. 내 화를 간신히 참느라 묵묵히 깨진 그릇을 치우기만 했다.

이성 : 아이에게 다쳤냐고 물어봐야지.
감정 : 알아! 안다고! 나도 안다고! 이 상황에서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육아서에서 수도 없이 읽었다고!!!


그릇을 치우는 동안 아이는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계속 침묵을 지키며 그릇을 치웠다. 입을 벌리면 아이에게 화를 낼 것만 같았다. 참는 편이 나았다.

깨진 그릇을 다 치우고 날 때쯤, 이성과 감성의 치열한 싸움도 끝났다. 나는 온몸의 에너지가 소진된 기분이었다. 아이들에게 씻고, 놀고 있으라고 한 뒤, 컴퓨터 앞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에너지가 소진되면서 수업에 참여할 의지도 사라졌다.

멍하니 넋을 놓고 인터넷 서핑을 했다. 문득 과거의 지난 오늘 글을 보다가 아기 어릴 때 나를 향해 해맑게 웃던 사진을 보았다. 아이의 웃음엔 순수한 기쁨만 있었다. 난임으로 힘들어하다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매 순간이 기적 같았다.

너무나도 '엄마'라고 불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만 들려도, '또? 뭐?'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분명 사랑하는데, 방해받고 싶지 않은 이중적인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노력하겠다는 나의 초심은 어디 갔을까.

엄마와 늘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
 
둘째는 문제집을 풀 때 꼭 손을 잡아달라고 한다. 문제를 푸는 동안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둘째는 문제집을 풀 때 꼭 손을 잡아달라고 한다. 문제를 푸는 동안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 이혜선

관련사진보기

 
퇴사하면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회사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은 늘 부족했다. 회사 다니는 동안 육아는 시어머님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퇴사와 동시에 육아는 엄마인 내가 전담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아이들의 수업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채워졌고, 밥과 간식을 준비하다보면 오후였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남편과 사업을 이끌어나가면서 시간은 더욱 부족했다. 일은 대부분 재택근무였는데, 재택근무라는 말에는 집안일과 육아도 포함이라는 걸 몰랐다. 어디서든 일할 수 있으니 나 혼자만의 시간은 늘 도둑당하는 느낌이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회사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새벽시간뿐이었다.

아이들은 수시로 달려와 나에게 무언가 요구하고, 수다를 떨고,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며 이야기 하고 싶어 했다. 미래엔 이런 순간이 그리워질 것이라는 걸 알지만 지금의 현실은 내가 너무 바빴다.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자주 나왔다. "엄마 지금 일해야 해, 방해 하지 마", "문 열지 마", "잠시만", "조금만 있다가" 등등. 이것이 요즘의 내 모습이었다.

풀타임 워킹맘으로 사느라 아이들 어릴 때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했다. 아이들과 느긋하게 저녁 먹는 게 소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퇴사 후 집에 내가 있으면서 가장 좋아했던 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보상받고 싶기라도 한 듯, 모든 것을 엄마와 함께하고 싶어 했다. 나 또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원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내 욕심이 앞서 엄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화가 났던 이유를 다시 곰곰이 생각했다. 여유가 없었다. 에너지 고갈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위험 수위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위험 수위를 낮출 필요가 있었다. 오늘의 일을 복기했다.

1시간 5분에서 나에게 할애한 시간은 45분. 아이들에게 할애한 시간은 20분. 그 뒤로 2시간을 다시 소설수업에 투자할 계획이었다. 비율로 볼 때,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여유를 만들어 집 나간 초심을 불러와야 했다. 어디서 여유를 만들어야 할까.

나는 소설을 쓰기로 한 나의 꿈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절대로 놓고 싶지 않은 꿈이지만, 지금은 엄마로서의 역할과 생계를 위한 일에 잠시 집중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은 포기하지 않았지만, 우선 순위를 정하다

아이도, 사업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착한 나의 꿈은 기다려줄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올인 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이가 방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엄마, 접시 깨서 미안해요."

존댓말까지 써서 이야기하는 걸 보니, 많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제야 집나간 초심이 돌아오기라도 한 듯, 나도 미안하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었다.

"내일은 말썽을 피우지 않도록 노력해 볼게."

아이가 말했다.

"엄마도 화내지 않도록 노력해 볼게."

나도 말했다.

꼭 안은 아이의 체취와 온기에 마음이 말랑해졌다. 소설가 박완서는 "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이 더우면 걷어차고, 필요할 땐 언제고 끌어당겨 덮을 수 있는 이불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일부터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이불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언젠가 아이들이 커서, 더는 엄마와의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그때는 기다려주었던 나의 꿈을 소환해야지. 어쩌면 그때, 아이들과 진하게 보낸 시간이 꿈의 연료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group낀40대 http://omn.kr/group/forty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