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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룹 지오디가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 <어머님께>에 나오는 가사다. 그땐 절절하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이 가사를 보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이제는 어디서든 자장면 한 그릇 정도는 사 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돼서 그런지 가사가 와닿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엄마도 자장면 좋아해."
"엄마는 자장면 말고 짬뽕."

세상은 이렇게 변했는데 좀처럼 변하지 않는 건 우리 엄마의 '싫다병'이다. '싫다병'은 소위 말해 일단 "싫다"고 하고 보는 병이다. 긍정의 여왕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우리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은, "난 됐어", "난 안 먹어", "난 싫다" 이다. 내가 어디를 가자고 하거나 무언가를 먹자고 할 때 엄마가 "그래 하자", "그래. 그거 먹자"라고 동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 "싫다" "됐다" "괜찮다"
 
 엄마의 "싫다"가 진짜 "싫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여행을 다니면서부터다.
  엄마의 "싫다"가 진짜 "싫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여행을 다니면서부터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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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족 여행을 다녀올 때도 그랬다. 워낙에 운동이나 산책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걸 즐기는 엄마가 코로나 이후 집에만 있으려니 여간 답답해 하시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끼리 지낼 수 있는 독채형 리조트를 예약하고 2박 3일 동안 콧바람을 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계획을 말했더니 돌아온 답은 "난 됐어, 돈 아깝게 거길 뭐하러 가" 였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얼른 반격한다 "엄마, 내가 가고 싶어서 그래." 결국 설득에 성공해서 리조트에 갔다. 산책로를 엄마와 나, 오빠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한 시간쯤 기분 좋게 돌고 난 뒤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1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날도 좀 더웠고, 기운이 떨어질 시간이어서 아이스크림을 사오겠다고 했다. 그때 또 득달같은 엄마의 대답이 돌아왔다. "싫어, 난 안 먹어" 내가 엄마와 지내 봐서 알지만, 그 시각 엄마의 컨디션을 봤을 때 아이스크림을 마다할 타이밍은 아니었다.

"엄마, 무조건 안 먹겠다고 하지 말고 먹고 싶을 땐 먹겠다고....(해도 돼)"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말했다.

"난 누가바."

그러더니 본인도 무안하셨는지 깔깔깔 웃으신다.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서 나도 웃었다.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엄마에게 "난, 괜찮다", "됐다", "싫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맥이 빠져 버리곤 했다. 그러다 엄마의 "싫다"가 진짜 "싫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여행을 함께 다니면서부터다.

돈 쓰는 게 아깝다는 엄마를 설득해서 제주도, 남해, 통영, 경주 등 국내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가기 전에는 마뜩잖아 하다가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엄마는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해외여행을 갈 때도 예외 없이 '싫다병'이 재발했다. "난 비행기 오래 타는 거 힘들어. 이번이 끝이야." 그랬던 엄마는 서유럽, 동유럽, 북유럽은 물론 재작년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스페인까지 다녀오셨다.

이게 오빠나 나나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빠를 갑자기 보내고 나서 보니, 성인이 된 후 아빠와 찍은 사진 한 장이 없었다. 제대로 된 추억 하나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엄마와의 추억은 많이 쌓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사실 팔십이 넘은 엄마와 여행을 한다는 건, 내 몸이 두 배로 힘들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엄마가 칠십대, 내가 사십대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다닐 만했다. 그러나 팔십이 넘은 엄마는 체력이 확연히 떨어져서 조금만 무리를 해도 오래 고생하신다.

그러다 보니 식당에서 밥을 포장해 오거나 동선을 미리 살펴보거나 필요한 물품을 사오는 등 자질구레한 심부름은 언제나 내 몫인데, 내 몸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나도 오십이 넘다 보니, 지난번 여행을 다녀와서는 무릎에 물이 차기도 했다. 무릎이 좋지 않은 엄마와 나는 여행지에 가서나 산책을 할 때 종종 벤치에 앉아 쉬곤 한다. 내가 엄마의 무릎을 주물러 드리면, 엄마도 내 무릎을 주물러주겠다고 한다. 걷는 속도와 양이 줄고, 걷다가 서로의 무릎을 내주는 건, 예전과는 달라진 여행 풍경이다.

입으로는 "싫다" 해도 마음으로는 좋은

여행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평상시 엄마의 마음을 읽는 것. 엄마의 "싫다"에 진짜와 가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진짜 거부와 가짜 거부를 구분하려 노력한다.

엄마가 진짜 '싫다' 할 때는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다. 그럴 땐 병원을 모시고 가거나 쉴 수 있게 해드린다. 그 외에 자식 돈을 쓰기 아깝거나 내가 고생한다고 여겨져서 하는 거부는 진짜 거부가 아니다. 그래서 자식 돈 쓰기가 아까운 눈치거나 내가 고생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길 땐 진지하게 엄마와 협상에 들어가곤 한다.

"엄마, 엄마가 다 싫다 하고 안 한다고 하면 나중에 자식들 마음에 한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우리 마음 편하게 해주고 가려면 싫다고만 하지 마셔."

잔소리를 한 덕분인지, 엄마의 '싫다병'은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함께 마트 가는 길에 한 옷가게 앞에서 예쁜 옷을 발견했다. 동시에 "저 옷 예쁘다" 하고는 둘이 홀린 듯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엄마는 일흔다섯을 넘기면서부터는 옷을 잘 사지 않았다. 오히려 있는 옷을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기 바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빠를 보내시면서 아빠의 옷을 정리할 때 가장 마음이 아팠던 엄마는 우리가 엄마를 보내고 똑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 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마음 아파도 괜찮으니까 예쁜 할머니였으면 좋겠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는데, 그날은 달랐다. 그 옷이 마음에 쏙 든 모양이다.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엄마. 한번 입어나 봐." 그렇게 유혹에 성공했고 아주 간만에 엄마는 옷 한 벌을 장만했다. 엄마가 엄마만을 위한 소비를 한번에 '좋다'고 하신 게 얼마만인지.

입으로는 싫다 해도 마음으로는 좋은 게 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싶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고, 엄마의 '싫다'도 이제 조금 줄어들고 있는데, 엄마의 시간이 너무 짧게 남은 것 같아서 마음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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