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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날개를 가진 나비는 꽃에서 흡밀하는 종 보다 동물의 시체나 똥에서 무기물을 빠는 녀석이 더 많다. 호랑나비나 노랑나비, 표범나비 등이 풀밭에서 노니는 모습만 보았던 사람들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는 섭식행동이다. 꽃꿀을 빠는 나비는 사람들에게 친근하지만 주로 밤에 활동하는 나방은 해충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모두 같은 나비목에 속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전혀 달라진다. 북한에서는 전자를 낮나비라하고 후자를 밤나비라 부른다. 계통학적으로 볼 때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연에서는 9대 1 정도로 나방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만약, 인류가 누에나방 고치로 비단을 만드는 방법을 발명하지 못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을 것이다. 누에고치로 만든 실크를 매개로 동서양의 문명교류가 이루어졌으니 우리가 아는 비단길이다.
 
명주실을 뽑는 하얀 고치 속에 맛있는 번데기가 있다.
▲ 누에고치와 번데기 명주실을 뽑는 하얀 고치 속에 맛있는 번데기가 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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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역로를 통해서 종교, 과학기술, 나침반, 화약, 인쇄술을 비롯하여 당시의 인류문명이 만든 모든 것들이 전파되었다.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도 이 시절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와 번역한 일은 동아시아 불교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인류와 함께 한 잠업의 역사는 기원전 1만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이 오랜 기간 동안 누에의 번식은 사람의 손을 거쳐왔기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도움 없이는 세대를 이어가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양잠업은 우리 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아다시피 잠실과 잠원동은 조선시대 때부터 나라에서 운영하는 양잠소가 있던 지역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어렸을 적 먹을거리가 귀한 시절에는 누에고치 번데기를 솥에 삶아서 즐겨 먹었었다. 지금의 중년 세대라면 그 짧쪼름하고 닭고기 같은 맛을 기억할 것이다. 현재도 명맥을 이어가면서 번데기 통조림은 계속 생산이 되고 유원지 근처에서는 다슬기와 뻔데기를 판다. 누에는 인간에 의해 가축화 되었지만 아직도 몇몇 종은 야생에서 살아간다. 

뜨게질로 고치집을 만드는 누에나방

누에나방류는 몹시나 독특한 고치를 만들며 외관이 풍성하고 수려한 편이다. 성충의 입은 흔적만 있고 소화기관이 없어서 수명이래봤자 일주일 정도에 불과하다. 밤나무산누에나방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밤나무 잎을 씹어 먹지만 광식성이라 다른 나무도 가해하는 녀석이다.
 
평소에는 숨겨두었다가 위협을 느끼면 활짝 드러내어 공격자를 놀라게 만듬
▲ 밤나무산누에나방의 눈알 무늬 평소에는 숨겨두었다가 위협을 느끼면 활짝 드러내어 공격자를 놀라게 만듬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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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등) 잎도 갉아 먹고 때로는 과수원에 출현하여 사과와 배를 먹으므로 과수농가의 미움을 받는다. 아랫날개에 부엉이의 눈과 같은 검은색 원형 무늬가 있다. 평소에는 감춰 두었다가 위협을 느끼면 활짝 펴서 공격자를 놀라게 만든다.

그물망과 같은 번데기 집을 만드는데 처음에는 테니스 라켓줄과 같은 투명한 흰색이었다가 진한 밤색으로 굳는다. 질기기가 이를 데 없어 손으로는 결코 찢어낼 수 없고 칼을 대도 잘라내기가 어렵다. 

이 질긴 고치를 어떻게 뚫고 나오는지가 궁금증을 유발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입에서 뭔가 분비물을 내어서 녹이고 나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겠으나, 직접 날개돋이 과정을 보니 그 합리적인 구조에 유레카를 연발하게 된다. 분비물은 전혀 없었다. 반 가르기를 해서 살펴봐도 그 원리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스렝이(성긴 그물망) 한 쪽은 완전이 밀봉하지 않고 탈출구를 만들어놨다.
▲ 어스렝이 안의 밤나무산누에나방 번데기 어스렝이(성긴 그물망) 한 쪽은 완전이 밀봉하지 않고 탈출구를 만들어놨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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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를 보면서도 한쪽이 뚫려있다는 것을 우화가 진행되는 순간까지 눈치챌 수 없었으니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진화의 산물이다. 고치의 한쪽 면은 완전히 봉합하지 않았기에 안쪽에서는 밀고 나올 수 있지만, 바깥쪽으로는 침입할 수 없는 설계다. 직접 관찰하면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자연과학이 주는 혜택이다.

10월 중순경에 날개돋이 했다. 한여름이 다 가도록 소식이 없기에 기생당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밤중에 뭔가 빠작빠작 비스킷 부셔지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리더니 녀석이 드디어 세상을 향해 나오기 시작했다.
 
어스렝이 고치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장면이다.
▲ 밤나무산누에나방의 날개돋이 어스렝이 고치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장면이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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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후에는 애벌레 시절에 몸에 쌓아두었던 노폐물을 배출하는데, 녀석도 예외는 아니라서 연한 황토색의 물똥을 쏟아내었다. 몸집이 크니 그 양도 상당히 많다. 번데기집에서 탈피한 암컷은 곧바로 짝짓기 페로몬을 풍겨 수컷을 부른다. 빗살 모양의 크고 잘 발달된 더듬이를 가진 수컷은 암놈의 페로몬에 이끌려 와 세대를 이어간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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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를 펴냈다. 다음 세대를 위한 화보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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