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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선거 후보들.
 2021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선거 후보들.
ⓒ 우즈베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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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1991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성립부터 무려 25년이나 철권통치를 이어온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2016년 9월 뇌출혈로 급사하면서 총리직에 머물던 샤우캇 미르지요예프가 후임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우즈베키스탄은 폐쇄적 분위기에서 탈피해 열린 국가로의 전환을 꾀하며 민주인권 신경제 국가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매년 급격한 물가상승과 뿌리 깊은 부정부패로 인해 민중의 삶은 여전히 고달픈 상황이다.

2021 우즈베키스탄 대선을 맞이해 필자는 두 편의 기사를 통해 이번 대선의 속사정을 밝히고, 승리가 확실시되는 미르지요예프 집권 2기의 당면한 과제에 관해 논해보려 한다.

2021 대선은 쉐도우복싱, 미르지요예프 승리 확실시 

2021년 10월 24일, 대선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현시점에서 미르지요예프의 재선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네 후보가 더 있지만 모두 허수아비, 즉 투르키스탄 식으로 말하면 장난감 목각인형 '코기르착'에 불과하다. 1991년 초대 대선에서 카리모프와 대결했던 무함마드 살리흐는 73세의 고령에다 터키로 망명해 있는 탓에 간헐적인 정치적 성명을 내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이 없는 상황이며, 그가 이끌었던 자유당(Erk partiyasi) 역시 사실상 해체된 것이나 다름 없다. 카리모프 집권 25년의 혹독한 계엄통치로 인해 현 정부에 맞설 만한 거물급 정치인이나 반대파는 새싹부터 잘려나간 형편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샤우캇 미르지요예프 외에도 알리시르 카디로프, 나르줄라 아블라무라도프, 막수다 와리소바, 바흐람 압두할리모프까지 네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우즈벡 국민 대다수는 이들이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미르지요예프의 재선을 확신하고 또 지지하는 편이다.
▲ 우즈베키스탄의 전통목각인형 코기르착(Qo‘girchoq)의 모습 이번 대선에서는 샤우캇 미르지요예프 외에도 알리시르 카디로프, 나르줄라 아블라무라도프, 막수다 와리소바, 바흐람 압두할리모프까지 네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우즈벡 국민 대다수는 이들이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미르지요예프의 재선을 확신하고 또 지지하는 편이다.
ⓒ 송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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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번 대선에서 미르지요예프에 거침없이 쓴소리를 가하며 날을 세웠던 야당 후보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2020년 홀연히 대선 출사표를 던지고 올해 봄까지 우즈벡 국민을 상대로 치열한 여론전을 펼쳤던 진실과 진보당(Haqiqat va Taraqqiyot partiyasi)의 총재 히디르나자르 알라쿨로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다물라'의 등장, 유명 블로거들의 지원사격도

'다물라(داملا)'는 페르시아어 숫자 10을 뜻하는 da(ده) 와 종교와 과학에 정통한 지식인을 일컫는 mulla(ملا) 의 합성어로, 열 가지 이상의 지식에 모두 능통한 고명한 학자를 일컫는 투르키스탄 특유의 존칭표현이다. 또한 카리모프와 미르지요예프에 날선 비판을 가했던 알라쿨로프의 별칭이기도 하다.

그는 본래 경제학 교수로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2년 동안 테르미즈 국립대 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우즈베키스탄에서, 그것도 중앙정부의 감시가 느슨한 지방국립대의 최고위직에 오른다는 것은 한몫 두둑하게 챙길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알라쿨로프는 오히려 학내에 만연한 입시비리와 부정출석을 바로잡고 면학분위기를 개선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소비에트 시절부터 70년 이상 이어진 우즈벡의 부정부패는 알라쿨로프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수르한다리야 주(州) 정재계 고위인사들의 자제들까지 깊이 얽힌 학내의 부조리에 일개 임명직 대학총장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총장직에서 쫓겨나면서 열세 건의 민형사 소송에까지 휘말렸고, 이후 지루한 법정싸움은 거의 10년이나 계속됐다. 알라쿨로프가 '대통령이 되어 우즈베키스탄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알라쿨로프는 1956년 수르한다리야 주의 슈르치(Shurchi) 지역에서 태어나 타쉬켄트국가경제학원(현 타쉬켄트 경제대)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 취득 후에는 세계은행 경제개발부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2년 5월 교육부에 의해 테르미즈 국립대 총장으로 임명됐으나 22004년 6월 돌연 해임되고 열댓건의 소송에까지 휘말렸다. 그는 10년의 기나긴 법정투쟁 끝에 모두 승소했으나 총장직을 되찾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서 알라쿨로프는 샤우캇 미르지요예프와 그 주변인물들이 자신의 해임에 관여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이를 반박하는 정부 측과 진실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 진실과 진보당 총재 히디르나자르 알라쿨로프(Xidirnazar Olloqulov) 알라쿨로프는 1956년 수르한다리야 주의 슈르치(Shurchi) 지역에서 태어나 타쉬켄트국가경제학원(현 타쉬켄트 경제대)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 취득 후에는 세계은행 경제개발부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2년 5월 교육부에 의해 테르미즈 국립대 총장으로 임명됐으나 22004년 6월 돌연 해임되고 열댓건의 소송에까지 휘말렸다. 그는 10년의 기나긴 법정투쟁 끝에 모두 승소했으나 총장직을 되찾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서 알라쿨로프는 샤우캇 미르지요예프와 그 주변인물들이 자신의 해임에 관여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이를 반박하는 정부 측과 진실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 Euros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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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까지도 알라쿨로프란 이름을 들어본 우즈벡인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당해 6월 진실과 진보당의 창당식과 함께 몇몇 유튜버들이 알라쿨로프에 힘을 보태면서 차츰 대중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카리모프에 의해 반강제로 국외 망명한 사마르칸드 잠바이(Jomboy) 출신의 저널리스트 자항기르 무함마드는 적극적으로 알라쿨로프를 지원했다. 또 카리모프에 대해 격한 비판을 쏟아내던 의사 겸 인권운동가 나마즈 나르모민, 각종 사회문제를 다루며 10만에 가까운 구독자를 확보한 코즈구(Ko'zgu: 거울) 채널 운영자 압두카디르도 진실과 진보당의 대선 캠페인에 적극 동참했다. 
 
자항기르 무함마드는 67세 고령의 나이임에도 그간 미국의 소리(VoA) 기자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직접 운영. 우즈벡 누리꾼들과 온라인 소통에 나서고 있다. 그의 유튜브 채널(Jahonnoma) 구독자 수는 8.1만으로, 이는 전임 대통령 회고영상이 주로 올라오는 이슬람 카리모프 채널(11.2만)이나 현 대통령 미르지요예프의 채널(9.7만)에 비해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숫자다. 더욱이 다양한 텔레그램 채널에서 그의 정치비평은 입소문을 타 점점 더 많은 우즈벡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자항기르 무함마드는 과거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수립에 참여했던 국회의원이었을 뿐 아니라 국영방송국 사장까지 지냈던 거물급 인사이기도 하다.
▲ 미국에 망명 중인 자항기르 무함마드(Jahongir Muhammad) 자항기르 무함마드는 67세 고령의 나이임에도 그간 미국의 소리(VoA) 기자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직접 운영. 우즈벡 누리꾼들과 온라인 소통에 나서고 있다. 그의 유튜브 채널(Jahonnoma) 구독자 수는 8.1만으로, 이는 전임 대통령 회고영상이 주로 올라오는 이슬람 카리모프 채널(11.2만)이나 현 대통령 미르지요예프의 채널(9.7만)에 비해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숫자다. 더욱이 다양한 텔레그램 채널에서 그의 정치비평은 입소문을 타 점점 더 많은 우즈벡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자항기르 무함마드는 과거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수립에 참여했던 국회의원이었을 뿐 아니라 국영방송국 사장까지 지냈던 거물급 인사이기도 하다.
ⓒ 자항기르 무함마드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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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창당식 이후 알라쿨로프가 넘어야 할 첫 번째 산은 정당등록이었다. 우즈베키스탄 전국 8곳 이상의 주와 수도 타쉬켄트 통틀어 2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었다. 매회 조회수가 10만에 육박하는 유튜버들의 홍보로 2만 정도는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많은 지지자들이 알라쿨로프가 손쉽게 정당등록을 마치고 대선후보로 나서는 장면을 고대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복병을 만나게 된다.

1987년 '용팔이 사건'의 재현, 친정부 블로거들의 반격

신군부와 민주세력 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경험한 대한민국 중장년층에게도 34년 전 있었던 '용팔이 사건'(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 : 전두환 정권 지시로 안기부가 개입한 대표적 정치공작 중 하나)은 다소 까마득한 기억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용팔이 사건이 그대로 재현되는 분위기다.

알라쿨로프가 정당토론회를 열기로 한 날, 공교롭게도 그의 집 앞에 찾아온 몇몇 대형 유튜버들 때문이었다. 50만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슈흐랏 무사예프가 자택을 나서는 다물라를 향해 시비를 걸며 조롱을 일삼았고, 생중계되는 토론회 현장에선 신원미상의 군중들이 들이닥쳐 욕설과 행패를 부려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다. 76만의 구독자를 확보한 또 다른 유튜버 나심 할로프(Nasim Xolov)는 진실과 진보당의 정당등록 서명 과정에서 속임수가 있었다며 당국의 강력한 법적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50만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대형유튜버 슈흐랏 무사예프는 본래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지방정부나 권력자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상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현재는 친정부 성향의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파워 블로거나 대형 유튜버들을 모두 블로거라 부른다) 다물라를 지지하는 우즈벡 누리꾼들은 그를 '돼지(cho'chqa)'라 부르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으나 여전히 올리는 영상마다 1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여론형성에서 이들 블로거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 유튜버 슈흐랏 무삽예프(Shuhrat Musaev, 왼쪽)와 다물라(오른쪽) 50만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대형유튜버 슈흐랏 무사예프는 본래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지방정부나 권력자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상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현재는 친정부 성향의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파워 블로거나 대형 유튜버들을 모두 블로거라 부른다) 다물라를 지지하는 우즈벡 누리꾼들은 그를 "돼지(cho"chqa)"라 부르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으나 여전히 올리는 영상마다 1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여론형성에서 이들 블로거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 Jahongir Muhammad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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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실과 진보당은 대선후보 등록 마감일까지 2만 명을 채우지 못했고 우즈베키스탄 법무부로부터 공식적으로 '등록불가' 답변을 받았다. 우즈벡 국민은 새로운 야당의 출현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으며 부정부패에 분노하면서도 현 정부에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온라인 상에서는 다물라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댓글과 '좋아요'가 매 영상마다 수천 개씩 쏟아졌음에도 결과적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고 만 것이다.

물론 석연찮은 점도 없지 않았다. 알라쿨로프 측은 서명인이 충분했음에도 현 정부의 다양한 방해공작에 의해 대다수 인원이 누락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복잡하고 까다로운 구소련 체제의 서류작업 역시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단 하나의 절차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등록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우즈벡 법무부는 6월 21일 성명을 통해 진실과 진보당이 제출한 2만 명의 서명 가운데 고작 9873표만 유효했고 27표는 허위였으며 2044표는 후에 서명을 철회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샌님이 뭘 할 수 있겠어?"

필자의 한 지인은 알라쿨로프에 대해 다음처럼 평가했다. "알라쿨로프? 그런 샌님이 뭘 할 수 있겠어? 조만간 감옥에나 가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 친구는 검찰이 뇌물을 받은 통에 자신이 고소한 사기꾼이 처벌받지 않는다며 한탄했지만 정작 그런 부조리를 척결하려고 총대를 맨 정치인에 향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마찬가지로 다물라를 지지하고 그를 응원했던 필자 주변의 우즈벡인들조차 진실과 진보당 등록을 위한 서명운동에 어느 하나도 동참하지 않았다.

카리모프가 25년 철권통치에 이어 현 정부 역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탄탄대로를 걷는 이유는 우즈벡 경제가 오랫동안 외부와 차단된 자급자족 형태를 유지한 까닭이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에 금전적 이해관계가 깊었던 미주유럽의 역할이 주요했던 것과는 달리 우즈베키스탄은 인접한 러시아와 중국마저 함부로 관여할 수 없는 북한식 경제를 꾸려왔다.
 
카리모프는 1991년 겨울 대선을 눈앞에 두고 나망간에서 소요사태가 일었을 무렵, 나망간 청사를 점거했던 일련의 무슬림 군중과 이들의 지도자였던 타히르 욜다쉬(Tohir Yo'ldosh)와의 협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스러운 꾸란에 손을 얹고 무슬림으로서 맹세합니다. 저는 우즈베키스탄을 이슬람 국가로 선포할 것입니다.” 독실한 나망간 무슬림들은 카리모프가 꾸란에까지 맹세한다는데 설마 거짓말을 하겠느냐면서 그를 철석같이 믿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대선에서 승리한 카리모프는 이내 보란 듯이 약속을 뒤엎고 소련식 세속주의 노선을 유지하면서 나망간 무슬림들을 탄압했다. 중앙아에서 꾸란에 맹세하며 적을 안심시킨 뒤 시간을 번 이후 배후를 치는 전술은 사료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오랜 전통이다.
▲ 1991년 겨울 나망간에서의 이슬람 카리모프 카리모프는 1991년 겨울 대선을 눈앞에 두고 나망간에서 소요사태가 일었을 무렵, 나망간 청사를 점거했던 일련의 무슬림 군중과 이들의 지도자였던 타히르 욜다쉬(Tohir Yo"ldosh)와의 협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스러운 꾸란에 손을 얹고 무슬림으로서 맹세합니다. 저는 우즈베키스탄을 이슬람 국가로 선포할 것입니다.” 독실한 나망간 무슬림들은 카리모프가 꾸란에까지 맹세한다는데 설마 거짓말을 하겠느냐면서 그를 철석같이 믿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대선에서 승리한 카리모프는 이내 보란 듯이 약속을 뒤엎고 소련식 세속주의 노선을 유지하면서 나망간 무슬림들을 탄압했다. 중앙아에서 꾸란에 맹세하며 적을 안심시킨 뒤 시간을 번 이후 배후를 치는 전술은 사료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오랜 전통이다.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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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리모프와 미르지요예프가 반대세력을 가볍게 누를 수 있었던 진정한 이유는 그들이 중앙아 권력투쟁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까닭이다.

민족과 지역이 복잡하게 얽힌 중앙아에서 정의와 인권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워 신사적으로 행동한 이들은 언제나 낙오자로 기록될 뿐이었다. 또한 현재까지는 민중의 힘이 권력자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므로, 공정한 게임이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알림잔(송호림)은 東西 투르키스탄의 근현대사와 고전 차가타이어를 연구하는 독립적인 아마추어 사학자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위구르 문제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며 실제와 다르게 소개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 거주하며 페이스북에 '중앙아시아 연구회(Central Asia Research Group of Korea)' 모임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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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 역사문화를 중심으로 고전 차가타이어와 지역 근현대사를 탐구하는 아마추어 연구자입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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