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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 대통령, 백색함대 발족하고 파나마 운하 건설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에 진출한 이후, 이 두 지역, 즉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자 노력하였다. 미국이 대서양과 태평양에서 복수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한 것은 1898년 스페인 전쟁 때부터이다.

이때 미국은 쿠바나 푸에르토리코 등 대서양에서 전쟁을 하면서 동시에 필리핀, 하와이, 괌 등 태평양에서 전쟁을 수행하였다.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동시에 전쟁을 하려면 전함 등 해군이 증강되어야 했고, 미국을 둘러싼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를 빠르게 이동해야만 하였다.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고 한 사람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 세계를 항해하는 백색함대를 발족시켰으며, 대서양과 태평양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파나마 운하 공사를 시작하였다.

영일동맹을 상대로 두개의 전쟁 준비, 일독동맹 상대로 두개의 전쟁 승리

미국은 1차 대전 직후 거함 건조에 주력하여 북미대륙뿐만 아니라 유럽의 대서양과 아시아의 태평양에서 대규모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였다. 미국은 영일동맹 시기 대서양에서 영국과의 전쟁, 태평양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하였다. 미국은 2차 대전 즈음에는 유럽에서 독일과의 전쟁, 태평양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하였으며,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두 개의 전쟁은 현실이 되었다.

냉전시기 소련은 유럽과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토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봉쇄정책은 유럽전쟁과 아시아전쟁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중동은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이 아니라고 하여도 이스라엘 문제로 인해 항상 전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보호해야 하는 미국은 언제든지 중동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았다.

소련이 붕괴된 후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제한된 봉쇄정책을 유지해왔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중동에서의 문명충돌은 아프리카로 확대되었다. 과거 소련 봉쇄에 대한 부담은 경감되었지만 중동의 부담은 증가하였다. 아프리카의 부담은 새로 발생하였다.

소련 붕괴 이후 약소국을 상대로 하는 복수의 전쟁이 가능해져

미국은 이런 새로운 조건에 부응하여 오늘날 전 세계를 북부, 남부, 중부, 유럽, 아프리카, 태평양-인도로 구분하여 각 지역에 지상전, 해전, 공중전을 함께 수행할 수 있는 통합사령부를 두고 있다. 전 세계에 있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특수전 사령부가 통합사령부로 흡수되었다.

현지의 통합총사령관은 통합전투개념에 따라 육해공군의 참모총장은 물론 합참의장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직접적인 명령을 받아 각 군을 통합하여 작전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냉전 시기 소련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러시아는 그러한 동시전쟁을 수행할 능력과 의사가 없다. 따라서 미국은 소련이 붕괴된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 대규모 군대를 상주시켜 독일, 일본, 한국 등 주요 거점을 방어하도록 하는 봉쇄전략을 일부 수정하였다.

6개의 신속기동여단이 각각의 소규모 전쟁을 수행할 수 있어

대규모 전쟁이 동시에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들고 오히려 소규모 전쟁이 전 세계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대규모 주력부대를 한 곳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규모의 주력부대를 주요 거점에 흩어져 놓았다가 분쟁이 발생할 경우 분쟁지역으로 빠르게 이동시키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채택하였다.

독일, 일본,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육군의 주력을 전 세계의 분쟁지역에 신속하게 배치하기 위하여 미 육군은 2000년부터 6개의 신속기동여단(Stryker Brigade Combat Team)을 운용하고 있다.

1개의 신속기동여단은 3개 기계화 보병대대, 1개 포병대대, 1개 공병대대, 1개 정찰중대 등 300여 대의 고성능 경장갑차와 4.500여 명의 군인들로 구성돼 있다. 1개의 신속기동여단은 C-130 허큘리스(Hercules) 수송기를 통해 96시간 안에 분쟁 지역에 투입된다. 한국의 미 제2사단은 1개의 신속기동여단을 운용하고 있다.

10개의 항모강습단이 9개의 원정타격단의 상륙 작전을 지원

분쟁 지역에 있어 신속한 상륙작전을 위하여 미 해군은 1991년부터 9개의 원정타격단(Expeditionary Strike Group)을 운용하고 있다. 1개의 원정타격단은 1개의 강습상륙함, 도크형 수송양륙함(Landing Platform Dock) 1척, 도크형 양륙함(Dock Landing Ship) 1척, 이지스 순양함 1척, 이지스 구축함 1척, 호위함 1척, 수상함 6척, 핵잠수함 1척, 초계기 2대, 2,300명 연대규모의 해병 원정대(Marine Expeditionary Unit)로 구성된다. 한국에 파견되는 원정타격단은 오키나와에 있는 제7 원정타격단이다.

 
유사시 한반도에 파견되는 제7 원정타격단이 훈련하고 있는 모습
 유사시 한반도에 파견되는 제7 원정타격단이 훈련하고 있는 모습
ⓒ 미국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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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은 2004년부터 10개의 항모강습단(Carrier Strike Group)을 운용하고 있는데, 평상시에는 작전 지역을 순회하며 전쟁이 나면 원정타격단을 보호한다. 1개의 항모강습단은 항공모함 1척, 65대의 함재기, 이지스 순양함 1척, 이지스 구축함 또는 호위함 2척, 공격형 핵잠수함(SSN) 2척, 보급함 등 7,500명의 해군으로 구성된다.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는 제7함대의 제5항모강습단이 한국을 담당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뒤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등을 저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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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12년간 기관지위원회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연방제 통일과 새로운 공화국』,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 마르크스의 실천과 이론』 등의 저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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