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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판결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4·3당시 이승만의 불법계엄령에 의한 군법회의를 연상하게 했다."

지난 7일 제주지방법원(제2민사부 재판장 류호중 부장판사)이 제주4.3관련 생존수형인과 유가족 3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린 가운데, 원고측은 이에 항의하고 나섰다. 이날 재판 결과로 인해 39명 중 10명 내외만 손해배상금을 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재판정에는 현아무개(1925년생), 양아무개(1929년생), 부아무개(1929년생), 오아무개(1930년생), 오아무개(1933년생) 등 고령의 어르신들이 섰다. 이들은 70여 년 전 형무소에 갇혀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후에도 70여 년 동안 국가로부터 계속 피해를 당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제주지방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제주4·3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발생한 사건으로 대한민국 제헌헌법을 적용받는다. 이승만 국회의장이 공포(1948.07.17.)한 제헌헌법 제9조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으나 4·3당시 제주도에서는 민간인을 향한 불법적인 야만적 탄압이 이뤄졌다. 
 
제주지방법원(제2민사부 재판장 류호중 부장판사)의 판결에 충격을 받은 고령의 제주4·3희생자(원고측)들이 제주지방법원 건물 계단에 망연자실한 상태로 앉아 있다.(2021.10.07.)
▲ 망연자실한 4·3희생자들 제주지방법원(제2민사부 재판장 류호중 부장판사)의 판결에 충격을 받은 고령의 제주4·3희생자(원고측)들이 제주지방법원 건물 계단에 망연자실한 상태로 앉아 있다.(2021.10.07.)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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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여 쪽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2003.10.15.)에는 70여년 전 제주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자행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고건 국무총리)'가 채택한 보고서와 건의서를 받고 2003년 10월 31일 제주에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보고서가 채택된 이후 정부를 대표해 4·3추념식에 참석한 행정수반들은 4·3당시 반헌법성과 불법성에 대해 지금도 사과하고 있다.

살아남은 희생자들은 시대적 변화에 희망을 가지고 죽기 전에 억울함을 풀기 위해 대한민국 사법부에 다시 재판을 청구(2017.04.19.)하였고, 사법부는 당시 공소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기각(2019.01.17.)하였다.

이후 70여 년 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생존 수형인들은 사법부의 판결에 희망을 가지고 국가의 잘못에 대해 형사 배상(2019.02.22.)과 손해배상을 청구(2019.11.29.)했다.
하지만 제주지방법원은 "피고(대한민국)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원고들의 주장인 4·3 당시 불법성으로 인한 후유 장애와 이후 국가의 지속적인 탄압에 대해서는 증거가 불충분하여 "국가의 불법 행위로 이뤄진 일련의 결과일 뿐이지 별개의 불법 행위로 볼 수 없다"라며 피해자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민사소송법(제202조)은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제주지방법원의 판결은 증언의 신빙성 여부를 넘어 과도할 정도로 엄격한 증명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4·3희생자들은 사법부에 판결을 요청한 손해배상 내용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10개월 된 아들과 구금되었다가 목포형무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먹지 못한 아들이 죽었다."
"4살인 아들과 함께 구금된 후 전주형무소에서 경찰 등에게 아들을 빼앗겼고, 빼앗긴 아들이 고아원에 보내진 후 사망."
"2살 때 어머니와 형무소에 구금되었고, 출옥 후에도 불법사찰과 감시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경찰 등에 의해 총상을 받았고, 치료를 받지 못해 이후 후유 장애를 앓았다."
"연좌제로 딸이 학원을 못하게 되는 등 불이익을 받았다."
"4·3당시 인천형무소에 구금 됐다가 전쟁이 나자 인민군에 끌려갔다가 남쪽으로 돌아 왔으나 국방경비법 제32조 이적죄로 기소되어 20년간 수감되어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제주지방법원은 판결문에서 "민사소송에서 사실의 증명은 추호의 의혹도 있어서는 아니되는 자연과학적 증명은 아니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 검토하여 어떠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대법원, 2010)"이라며 희생자들의 증언은 "구체적으로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번 재판부의 판결에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첫째, 70여년 전의 야만적인 사실을 증언한 것인데, 구체적 증거가 부족하다면 더 어떤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가? 당시 살아남은 자식들은 죽은 부모 흑백 영정도 빨갱이로 몰릴까봐 숨기거나 불태웠다. 가메기 모르는 식게(까마귀도 모르게 몰래 지내는 제사)를 지내야 했고, 속솜허라(말하지마라)며 70여년 동안 숨죽여 살아 온 그들은 생존을 위해 기록만이 아니라 기억까지 지울 것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둘째, 4.3의 상황이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면 사법부가 말하는 특별한 사정은 어떤 경우인가? '대통령은 법률에 따라 계엄을 선포한다'는 제헌 헌법 제64조를 어기고 계엄법 없이 계엄령을 선포한 후 대한민국 군대 15개 연대 중 4개 연대의 군인을 제주에 투입하여 137개 마을을 불태웠다. 또 전쟁시에도 해서는 안 되는 초토화 작전(1948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제3차 유엔총회시 미시행 서명)을 시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이들을 죽였다. 10세 미만 어린이와 여성, 60세 이상 노인 33%가 희생되었고, 제주도 인구 1/3~1/10이 죽은 상황이 제주지방법원은 일반적 상황으로 규정하는 것인가. 2019년 사법부가 70여년 전의 재판의 '공소'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기각했을 정도로 제주는 당시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2006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한 <피해자 권리장전>은 "피해자가 피해회복을 위하여 국내외의 법적․행정적 절차를 활용하고 가해자의 책임과 제재를 추궁하는 권리"와 "피해회복의 내용으로 원상회복, 금전배상, 재활조치, 만족, 재발방지의 보증" 등을 보장하고 있다.

4·3당시 자행한 공권력의 반헌법성과 불법성에 대한 희생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사법부가 증거의 신빙성 여부를 떠나 지나치리만큼 과도하고 엄격한 증명을 제시하라니... 제주지방법원의 판결에 정의의 여신인 디케의 저울은 '공정했다'라는 답을 할지 반문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제주의소리'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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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정의, 그리고 희망 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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