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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회에는 '초심'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편집자말]
어릴적 우리집에는 책이 많았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엄마는 책을 읽어야 아이들이 바르고 똑똑하게 자란다는 책 외판원의 꼬드김에 못이겨 할부로 책을 구입하고 책장을 채워놓으셨을 것이다. 동화책도, 백과사전도 있던 그 책장에는 위인전도 나란히 줄지어 서 있었다. '계몽사 소년소녀 위인전집'은 세계 위인 20권, 한국 위인이 20권이었고 나는 그 위인전들을 닳고 닳도록 읽으며 자랐다.
 
위인전을 읽고 자란 아이는 평범한 어른이 되었다.
 위인전을 읽고 자란 아이는 평범한 어른이 되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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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전이 나에게 가르쳐준 깨달음은 이런 것들이었다. '어릴 때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 위인이 된다',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면 성공한다', '나도 세계에 이름을 떨칠 위인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라는 그런 생각들.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인생에 대한 자신감은 위인전을 너무 많이 읽은 꼬마의 삶에 위인들이 너무 깊숙이, 친숙하게 스며들은 부작용이었을 것이다.
  
위인전을 읽으며 레오나르도다빈치를 동경했던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살면서 간간히 눈물 질끔 나는 어려움도 겪었고 주어진 순간마다 나름 애쓰고 노력하며 살아낸 것 같기는 한데 노벨평화상을 타지도 못했고, 이름을 떨칠 만한 예술작품을 남기지도 못한 보통의 어른으로 자라났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이 성장하고 발전하며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일이 폭죽처럼 터지는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적에 맞추어 대학에 들어가고, 상황과 기회가 닿는 순서대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만큼의 일을 했다. 그렇게 평범해지는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 그것이 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다.

인생 후반부의 시작에 서 있는 나

요즘, 내 삶을 절반으로 나누어 생각한다면 전반부는 지나갔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냥 하루하루 나이를 먹는다고만 생각하면 지금은 어제보다 더 나이드는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에 '전반부와 후반부'가 있다고 친다면, 지금은 그 후반부의 시작점이다.

위인전을 읽었던 소녀는 삶의 전반부를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았다. 성공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남들에게도, 나 스스로가 보기에도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의 바람과 꿈이 커다래서였을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내가 생각한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닌데... 조금 더 근사하고, 조금 더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라는 생각은 종종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내 삶의 현재란, 과거의 내 선택들이 모여 이루어진 결과물일테니까. 후회되고 돌이키고 싶은 순간들이 아무리 산더미처럼 많다고 해도 나는 그 순간에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일 테니까.

이제 삶의 두 번째 시작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다시 생각해본다. 근사하고 화려한 목표를 향해 달리고 애쓰던 삶의 전반부와는 다르게, 인생의 후반부는 '의미를 찾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새롭고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내가 여지껏 살아온 내 삶에서, 내 주변의 관계 속에서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살피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하나하나 골라 '나답게' 만들어 내 마음에 심어두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
 
세상에 태어나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고 우는 드라마 JTBC <인간실격>의 이부정(전도연 역).
 세상에 태어나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고 우는 드라마 JTBC <인간실격>의 이부정(전도연 역).
ⓒ JTBC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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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해야 하는 일 첫 번째는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기'다. 솔직히 나는 나 스스로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다. 호기심은 많지만 끈기는 부족하고, 늘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타인의 평가나 비판에 쉽게 상처받곤 한다. 그런 나의 단점들이 내 인생의 여러 지점에서 실수와 후회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생겨먹은 나'를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 같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상처받는 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당연한 것이니까. 끈기가 없고, 쉽게 상처받는 대신 호기심이 많고 타인에게는 너그럽다는 장점이 내 안 어딘가에 있으니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두 번째는 '나는 어떻게 나이들고 싶은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나는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전해주는 사람으로 나이들고 싶다.

내가 아는 것을 모두 맞다고 생각하며 상대를 가르치려 하는 사람보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고, 내 입장을 이해시키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내가 만나고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수는 줄이고 이해와 공감의 표현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나이들고 싶다. 그런 것들이 내가 되고 싶은 '삶의 후반전을 산책하듯 여유있게 걷는 사람'의 모습이다.

인생의 후반부를 의미있게 만드는 세 번째 일은 '나를 가치있게 해주는 일들의 목록을 만드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하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지,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몰입하는지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루하루를 다르게 산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해야하는 일만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며 24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매일 달라지는 하늘을 눈으로 담고, 산책길에 만나는 바람에 감동하고, 밤의 빗소리에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글을 쓰고 기록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새로 산 책의 표지를 넘기며 냄새를 맡는 일을 좋아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닮은 정서를 찾아내며 마음으로 연결되는 기분에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이런 삶의 소소한 기쁨의 목록들을 늘 기억하려 한다. 이것들이 내 삶을 어떤 방식으로 채워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위인전을 읽으며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싶어했던 아이의 소망이 무조건 허망하거나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삶이 내 뜻대로 풀려나가지 않음에 낙담하고, 나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받아들이며 작아지기도 했지만 나의 평범한 삶 속에도 반짝이는 순간과 소중한 기억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멋진 삶을 꿈꾸며 열심히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있는 거니까.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제 열여섯살이 된 둘째가 화학 시험을 망쳤다며 울상이 되어 말을 했다.

"엄마, 나 인생이 너무 힘들어. 공부 때문에 짜증나는 것도 싫고.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서 답답해. 뭐든 다 결정된 엄마 나이가 부러워."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나는 무엇이든 선택하고 결정할 것들이 너무 많은 삶의 앞부분을 살고 있는 아이가 한없이 부러운데, 아이에게는 그것들이 모두 부담이고 막막하기만 한 모양이다. 그런 측면에서 '후반전의 출발점에 서 있는 지금 내 나이도 나쁘지 않은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삶은 꽤 너그러운 면도 있어서 언제든 궤도 수정이 가능하다. 삶의 후반부를 시작하는 출발선에 서 있는 지금, 나는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되어 내 삶을 유연하고 의미있게 만드는 방법들을 찾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group낀40대 http://omn.kr/group/forty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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