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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확 추워지면서, 곧 서리가 내릴 태세인지라 이제는 정말로 수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뒷마당의 나무를 잘라내면서, 그때 떨어진 잔재로 이미 많은 것들이 부러진 상황이어서 여간 어수선해 보이지 않았기에, 텃밭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모든 것이 무성하던 여름의 푸르름이 가고, 하나둘씩 정리하는 마음이 어쩐지 쓸쓸하지만, 그렇다고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 광역 밴쿠버는 가을에 계속 비가 오기 때문에, 날이 반짝 개는 날 후다닥 일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부러진 고추 가지들을 정리하면서 고춧잎을 보니, 고추만 딸 일이 아니라, 고춧잎도 따야지 아깝지 않겠다 싶었다. 어차피 줄기는 뻣뻣해서 못 쓰고 잎만 쓸 요량이니 서늘한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잎을 모아 땄다.
 
너무 무성해서 잘라내기 미안했다.
▲ 잘라내기 전의 고추 너무 무성해서 잘라내기 미안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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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라페뇨, 오이 고추, 꽈리고추, 이름도 모르는 서양의 매운 고추까지 종류별로 나눠 담으면서, 잎은 그냥 다 한데 모았다. 그리고 다음에는 깻잎을 정리했다. 남아있는 꽃대는 꽃대대로 모으고, 잎은 잎대로 모으고... 서리 맞기 전에 치우고 싶어서 일을 하지만,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깻잎은 예쁜 대를 잘라 모아서 화병에 꽂았다. 푸르른 생기가 가득한 화병이, 마치 한여름처럼 상큼하여 기분이 좋아졌다.
 
수확의 계절
 수확의 계절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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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는 아직도 덜 익은 것들이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비가 오니 검게 썩어들어가는 병충해가 올 시기이므로 그냥 둔다고 해도 곧 다 상할 것이다. 그래서 그냥 모두 수확했다. 덜 익은 것들 중에서, 익을만한 것들 위주로 모아서 사과 한 개와 함께 상자에 담아두었다. 사과에서 나오는 가스가 토마토의 후숙을 돕는다. 어차피 잎은 먹을 것이 아니니 그냥 그대로 정리했다.

한참 일을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지역 텃밭 동호회 회장님이 잠깐만 집 앞으로 나와보라고 하셨다. 예고 없이 선물 보따리를 잔뜩 들고 오신 것이다. 별거 아니라며, 무청 쓰라고 건네주시는데, 무도 제법 달려있었고, 고추도 비닐봉지 한가득, 남편 좋아하는 갓과 챠드 잎들은 부케처럼 예뻤다. 내가 봄에 부탁했던 구근을 주러 들르셨는데, 덤도 한 보따리가 된 셈이었다. 
 
집에서 기른 무와 알뿌리들을 선물받았다
 집에서 기른 무와 알뿌리들을 선물받았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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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떨결에 차 대접도 못 하고 물건만 받고 그렇게 보내드렸다. 덕분에, 안 그래도 많던 수확물이 순식간에 늘었다. 지난 주말에는, 고마운 분이 연어를 잡았다고 와서 주고 갔는데, 이번엔 텃밭 야채라니! 나누고 사는 마음들이 너무 고맙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주말 동안 갈무리에 돌입했다.

한 보따리 받은 선물들... 이렇게 해치웠습니다
 
무청 시래기 말리기, 비 올까봐 지붕 밑에서 말렸는데, 금방 꾸덕하게 말랐다
 무청 시래기 말리기, 비 올까봐 지붕 밑에서 말렸는데, 금방 꾸덕하게 말랐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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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청 데쳐서 말리고, 남은 무로는 갓을 섞어 넣고 간단한 깍두기를 담갔다. 고춧잎과 깻잎은 어떻게 보관할까 하다가, 손이 가장 덜 가게 데쳐서 말리기로 결정했다. 채반이 모자라서 이리저리 밀어가며 말려주었다. 
 
잎 종류는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말린다. 중간에 뒤적이며 말리는게좋다.
▲ 고추잎 말리는 중 잎 종류는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말린다. 중간에 뒤적이며 말리는게좋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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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끝나자 그다음에는 고추 부각과 깻잎 꽃대 부각을 만들었다. 역시 이것이 그중 손이 덜 가는 갈무리였다. 고추는 반 갈라서 찹쌀가루 입혀 쪄서 말렸고, 깻잎 꽃대도 찹쌀가루를 뿌린 후, 적당한 사이즈가 되도록 뭉쳐서, 역시 쪄서 말렸다. 동호회 회장님께 얻은 고추로는 장아찌를 만들었다. 
 
깻잎 꽃대 부각, 고추 부각, 고추 장아찌
 깻잎 꽃대 부각, 고추 부각, 고추 장아찌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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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와중에 연어를 훈제했다. 갈무리 좋아하는 남편에게는 훈제기는 필수다. 고온 훈제와 저온 훈제가 있는데, 이번엔 저온 훈제를 하였다. 이것도 사흘이 걸리는 대대적인 작업이다. 연어는 일단 냉동을 먼저 시켰다가 해동을 한 후, 설탕과 소금 등을 섞은 1차 절이기를 하고, 그다음에 액체 넣어서 하는 2차 절이기를 하고, 다시 말리기 과정을 거쳐서 훈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훈제기에 들어가는 연어(좌), 훈증이 끝나고 나온 연어(우)
 훈제기에 들어가는 연어(좌), 훈증이 끝나고 나온 연어(우)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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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켜서 한다면 참 고단한 일인데, 알아서 둘 다 자발적으로 해대니 그저 못 말릴 수밖에 없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보니 자연 속에서 일을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된다. 자연이 일을 하면, 그 옆에서 거들면서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 바로 자연 속의 삶이라는 것을 매일 실감한다.

갈무리도 그 삶의 일부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가진 우리 한국의 갈무리 방식은 데쳐서 햇볕에 말리는 것이 많은데 반해서, 늘상 비가 오는 이곳의 갈무리 방법은 주로 병조림이나 훈제이다. 그리고 양쪽 나라 공통적 보관법인 발효가 있다. 나는 김치를 담고, 청국장을 만들고, 남편은 사워크로우트를 만든다.

한국을 떠나면 이런 일거리가 줄어들 줄 알았는데, 반대로 한국에서처럼 쉽게 다양한 것을 구매하기 힘드니 오히려 늘어났다. 두 문화가 합쳐진 가정의 갈무리는 다양하기에, 우리의 가을날들은 오늘도 이렇게 갈무리로 깊어 간다. 마치, 동화 속 개미가 열심히 일하여 겨울을 준비하듯이... 

*갈무리의 간략한 요약정리

1. 잎 말리기:
- 고춧잎이나 깻잎, 곤드레 같은 잎채소들의 보관에 좋다
- 두세번 깨끗이 씻어준 후, 팔팔 끓는 물에 소금 좀 넣고, 데치듯 짧게 삶아준다.
- 찬물로 재빠르게 두세 번 헹궈주고, 물기를 짠다.
- 물기는 너무 꼭 짜지 말고, 양 손바닥으로 꾹 눌러서 짠다. (꽉 쥐어짜면 질겨진다)
- 채반에 널어서 말린다. 오며 가며 뒤적이며 곰팡이 피지 않게 말린다.
- 완전히 마르면 밀봉하여 보관한다.

2. 부각:
- 부각은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씌워서 쪄서 말렸다가 튀겨 먹는 갈무리이다.
- 고추나 김 부각이 가장 흔한데, 깻잎 꽃대나 연근으로 부각을 만들어도 좋다.
- 야채를 깨끗하게 씻어준 후, 물기를 털어내고 (닦지 않는다) 통에 담는다
- 고추는 꼭지 따고, 반을 갈라 씨를 대충 털어낸다.
- 젖은 야채 위에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뿌린 후, 고루 묻도록 통을 들고 까불어준다.
- 김 오른 찜기에 올리고, 가루가 투명해질 때까지만 쪄준다. (대략 5~10분)
- 꺼내서 채반에 겹치지 않게 널어서 말린다.
- 바삭하게 완전히 말린 후 밀봉하여 보관한다.
- 먹을 때에는 기름에 빠르게 몇 초간 튀겨낸다.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lachouett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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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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