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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여섯 시 기상.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건 전역 후 꼬박 석 달만이다. 부랴부랴 백팩에 짐을 챙겨서 엄마와 함께 부천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뇌경색으로 입원해 계신 외할아버지와 치매 3급 판정을 받고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동안 수도권의 폭발적인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인해, 병원 측에서 가급적 면회를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터라 방문하지 못했다. 엄마와 나는 모두 2차 접종을 완료한 상태였지만, 코로나 확산세가 둔화하기까지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바이러스로 인해 졸지에 아픈 부모의 문병도 제한되는 게 참으로 잔인하고 괴로운 일인 것 같았다.

코로나가 낳은 10분 면회

네 시간여를 달려 목포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입이 심심하다는 외할아버지를 위해 두 손 무겁게 장을 봐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입구에서 체온을 체크하고 QR코드 체크를 완료한 뒤, 백신 접종 완료 증명서를 보여주고 나서 면회 신청을 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일찌감치 한 시간 전부터 우리를 기다리셨다고 했다. 멀찍이 바라보는데 부쩍 회복하신 듯했다.
   
병원 측에서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 접종완료자에 한해서 면회를 허용하고 있었다. 유리벽을 통해 막혀있지만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원활히 대화할 수 있었다.
▲ 유리벽으로 막혀있는 병원의 면회실 병원 측에서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 접종완료자에 한해서 면회를 허용하고 있었다. 유리벽을 통해 막혀있지만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원활히 대화할 수 있었다.
ⓒ 나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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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영자 왔어라! 아부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 잔뜩 사 들고 왔어라!"

면회실은 투명한 유리벽으로 막혀 있었다. 대화는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서 나눌 수 있었다. 음질이 깔끔했고, 귀가 어두운 노인분들을 위해 음량은 다소 크게 설정되어 있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식구를 만나면 잘 쓰지 않던 사투리가 짙어진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눈을 쉽게 마주치지 않고 말한다.

올해 여든 셋인 외할아버지께서는 단체생활이 갑갑한 듯 이제 다 나은 것 같으니 퇴원하고 싶다고 운을 띄운다. 뇌경색을 조기에 발견한 터라 치료 예후가 좋았다.

"아부지! 답답해도 좀만 참어라! 내가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봉게 지금 다 낫고 있는데, 나을 때 완전히 회복해야지 어설프게 나가면 처음부터 병원 생활 다시 해야 한다 안 하요. 불편해도 다 나을 때까지 쫌만 참으시요!!"

엄마는 조심스럽게 타일렀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나도 문안 인사를 드렸다. 입대 전에 인사드렸는데, 이제 무사히 군에서 전역했다고, 외할아버지께서도 건강하셔야 한다고 말이다.

네 시간을 달려왔는데, 면회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그것도 유리 벽을 통해서만 만나야 하는 게 참 아쉬웠다. 동시에 10분이라도 만나기 위해 네 시간을 달려온 자식의 마음은 유리벽을 통해서도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기억이 없는 딸을 마주한 외할머니
 
요양원에서 만든 간이 면회실이다. 면회시간은 10분으로 제한되어있다. 냉난방 시설을 갖추어 두었고 방문 기록을 꼼꼼히 남겨두고 있었다.
▲ 요양원의 간이 면회실 요양원에서 만든 간이 면회실이다. 면회시간은 10분으로 제한되어있다. 냉난방 시설을 갖추어 두었고 방문 기록을 꼼꼼히 남겨두고 있었다.
ⓒ 나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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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병원 면회실 앞에서 작은 삼촌을 만나, 그의 승용차를 타고 강진으로 달렸다. 오가는 차가 없어 운전이 수월했다. 치매로 완전히 기억을 잃으신 외할머니를 뵙고자 함이었다. 그날은 외할머니의 일흔 네번 째 생신이셨다. 미리 전화로 방문을 알렸다.

요양원 바깥에는 천막으로 간이 면회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입구의 벨을 누르니, 담당 요양보호사가 휠체어에 외할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투명한 비닐 천막을 사이로 모녀가 마주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위해 먹기 좋게 포장된 양갱 세트를 선물했다. 기억이 있을 적 그녀는 이가 약해서 달달한 양갱을 좋아했다. 

"엄마, 엄마 큰 딸 영자 왔소! 엄마 나 누군지 기억나요?"

섬에서 치매를 뒤늦게 발견한 나머지 병세의 급격한 진행을 막지 못했다. 그녀가 현생의 모든 것을 잊는 데는 채 6개월조차 걸리지 않았다. 여덟이나 되는 자식의 이름을 하나둘씩 잊기 시작하더니, 한 문장만 내내 되풀이하다가 지금은 이제 배에 힘을 주는 법도 잊어 배변 능력을 잃은 상태였다.

자아를 상실한 자신의 엄마를 보고 엄마는 눈물을 지었다. 일방적인 질문의 연속이었고,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이었다. 다만 딸의 마음만 간절히 전달되길 바라면서 엄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눈동자의 초점이 부정확한 외할머니는 딸이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묵묵부답으로 바라만 보았다. 양갱 상자를 가슴에 꼭 품은 채. 이곳에서도 10분은 너무나도 짧았다.

엄마는 연신 요양보호사님께 "엄마 좀 잘 부탁드린다"라고 싹싹하게 말했다. 엄마는 그 길로 친정 댁에 방문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아파서 놓아버린 밀린 살림을 몰아치듯 해냈다. 군데군데 곰팡이와 얼룩을 지우고 모든 집기를 기어이 다 치웠다. 어렸을 때는 집구석이 그렇게 지긋지긋했는데, 지금은 그저 눈물겹단다.

외할머니는 엄마의 엄마, 나는 (외할머니) 자식의 자식이다. 그 사이 한가운데서 부모 노릇과 자식 노릇을 분주히 오가는 한 딸이 있다. 대면도 비대면도 아닌 애매한 한가운데서, 오직 눈빛과 목소리만 오가는 단 10분에 불과한 불완전한 면회일지라도 귀한 시간이었다. 바이러스는 결코 가족애를 막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코로나 19로 인해 가족 문병조차 제대로 가지 못하는 이땅의 모든 부모 자식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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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생.『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의 저자, 정치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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