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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전북 순창군의 한 찻집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북연합 오은미 회장을 만나 여성농업인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지난 11일 오전 전북 순창군의 한 찻집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북연합 오은미 회장을 만나 여성농업인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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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은 국제연합(UN)이 제정한 '세계 여성농업인의 날'이다. 유엔은 여성농업인의 삶과 지위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여성농업인의 날을 앞둔 지난 11일 오전 전북 순창군의 한 찻집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전북연합 오은미(57) 회장을 만나 여성농업인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지난 1989년 전국여성농민위원회로 전국조직을 결성한 데서 역사가 시작된다.

오 회장은 순창군민으로서 올 3월에 제32차 총회를 연 '순창군여성농민회'(순창여농)에 대한 자부심부터 풀어놓았다.

"전북여성농민회는 전국여성농민회 중에서도 처음으로 창립했고, 시골 단위에서는 순창이 제일 먼저 깃발을 올렸죠. 여성농민들이 농촌에서 인원도 많고 비중이 크지만 사회적 지위나 위상들은 제대로 인정과 대접을 못 받는 상태였어요. 지금까지 30년 넘게 여성농민회 활동들을 해왔는데 농촌에서는 지금도 여성은 하나의 보조적 수단이에요. 임신, 출산, 집안 살림, 농사일, 사회 활동 등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들이 최소한 1인 5역을 담당하고 있는 데도요."
  
지난 3월 제32차 총회를 연 ‘순창군여성농민회’에 참석한 오은미 회장과 회원들
 지난 3월 제32차 총회를 연 ‘순창군여성농민회’에 참석한 오은미 회장과 회원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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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여성농민회, 시골단위 전국 최초 창립

오 회장이 순창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지난 1992년이다. 순창에 살던 농민, 남편 최형권씨를 전주에서 만난 게 계기가 되었다.

"그때 순창군농민회에서 최형권, 이선형 이 두 분을 빼놓을 수 없죠. 자기 삶을 농민운동에 투신했어요. 그냥 삶을 바쳤으니까 저는 그 부분이 너무 존경스러웠거든요. 순창군여성농민회도 그런 힘이 뒷받침돼 시골 단위에서 전국 최초로 만들어진 거죠."

오 회장은 1994년 결혼하면서 순창에 터를 잡았다. 그녀의 나이 스물아홉, 남편 최씨가 서른여섯 살 때였다. 28년째 순창군민으로 살고 있다.

올해 전여농 전북연합은 순창군과 익산시에서 '여성농업인 영농여건개선사업'을 벌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여성농업인 사업은 전국 8개 단위 중에서 전북에서 2곳이 선정돼 진행했다. 전북연합과 순창여농이 지난 7월부터 시작한 '여성농업인 사업'은 군내 50여 개 마을에서 이뤄졌고, 연말까지 총 60개 마을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오 회장은 전북연합이 올해 진행한 '여성농업인 정책한마당'이 큰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9월 30일부터 10월 1일까지 부안에서 정책한마당을 했어요. 코로나로 인해 100명 이하로 제한했는데 90명이 넘게 참여하셨어요. 여성농민들에게 진짜 필요한 일들을 짜임새 있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그동안 만들어왔던 여성농민회 30년이, 그냥 30년이 아니고 몸부림치면서 절박함과 치열함 속에서 힘을 모아 하나하나 만들어왔던 거라 모두들 애정과 당당함이 있거든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할 수 있겠다'라고 자신감을 얻은 시간이에요." 
 
올해 전여농 전북연합은 순창군과 익산시에서 ‘여성농업인 영농여건개선사업’을 진행했다.
 올해 전여농 전북연합은 순창군과 익산시에서 ‘여성농업인 영농여건개선사업’을 진행했다.
ⓒ 오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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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절박한 현장 목소리 들어야

오 회장은 전북연합 회장을 올해 처음 맡았다. 이전 회장이 전여농 회장으로 옮겨가면서 공석이 된 전북연합 회장의 남은 임기 1년을 떠안았다. 회장으로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인지 물었다.

"사람이죠. 재생산이 안 되잖아요. 활동가도, 여성농민회 회원들도. 또 회원들이 거의 고령이세요. 기존 회원들이 칠십, 팔십이 기본이시고, 또 젊은 사람들은 시간이나 돈이나 이런 것들을 희생해야 한다, 그런 게 있어요. 하지만 회원들은 되게 보람을 많이 느끼세요. 활동가들이 계속 줄어드는 게 가장 힘들지만. 젊은 분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전여농 측은 내년에 다시 시작되는 2년 임기 전북연합 회장을 오 회장이 계속 맡길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내년에 치러질 전북도의원 선거에 순창 지역구로 출마할 예정이다.

전북 순창에서 민주노동당으로 출마해 제8, 9대 도의원에 당선됐었던 그녀는 현재 진보당으로 도의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전북도의원은 더불어민주당 35명, 민생당 1명, 정의당 1명, 무소속 2명 등 총 39명이다. 진보당으로 도의원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민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 청소년, 어린이, 여성 등을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죠. 또 그런 분들이 저희한테 오세요. 다른 데 가서 하소연을 해도 제대로 들어주질 않으니까. 구체적인 예로, 농민수당 문제로 우리가 전북도와 계속 싸우고 있잖아요. 근데 우리에게 도의원이 없다 보니까 별 무시를 다 받고 있는데, 정말 뼈저린 반성을 하면서 우리도 농민을 대변하는 의원을 만들자고 했죠. 그게 순창이에요."

농민을 대변하는 농민 출신 의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차이점은 무엇인가.

"농민을 대변하는 의원이 있으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의회에서 할 수 있어요. 제가 예전에 (도의회에서) 발언할 때 농민들의 절박하고 절실한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했어요. 개인적인 건 푸념이고 한타령이지만, 그걸 의회에서 하면 의제화가 되고 여론이 되죠.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현장을 보고 듣고,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촉구해야죠."

농촌 삶 자체가 한 분 한 분 소중

오 회장은 대화 중간중간 울컥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실제로 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기도 했다.

"처절하고 치열하고 그러면서도 그 속에 웃음이 있어요. 하하하하. 자부심과 당당함이 있으니까, 누가 뭐라 해도 '우린 여성농민이다' 스스로 자부심이 있어요. 우리가 농사짓고 살아가는 게 '내가, 우리가 못 배우고 팔자가 사나워서' 그런 게 아니라, 농업과 농민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런 걸 같이 합시다' 이야기하다가도, 노래하다가도 정말 울컥울컥 할 때가 많죠. 어머님들 그런 모습엔 공감대가 있으니까, 서로 보면서 우는 것 같아요. 하하하하."

오 회장의 웃음소리에 눈물이 번졌다. 땅은 진실하지만 그 진실 속에는 농부의 고단한 노동이 담겨 있듯, 짠 눈물 속에도 찐득한 진심이 담겼으리라. 오 회장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한 분 한 분 소중해요. '그냥 내 팔자소관'이나, '내 무식의 소치'라고 그러시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농민들이 있기에 사회가 유지되고 밥 세끼 먹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 고마움을 사회가 너무 몰라주죠."

오 회장과 함께 거닐며 순창읍 장터에서 만난 많은 주민들은 오 회장을 알은체 했다. 오 회장을 알아본 주민들은 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저렇게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여기 농민들은 다 알제. 을매나 우리덜 위해 애쓰는지."

흐르는 눈물을 닦다가 이내 웃고, 또 울컥하길 반복하던 오 회장. 그녀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농민이 행복하고, 살맛 나는 농촌을 만들어 보는 게 꿈이에요. 우리가 통일시대도 대비해야 하잖아요. 기후위기도 그렇고. 농업이 중요하거든요. 힘들지만, 계속 짓밟혀도 우린 죽을 수가 없어요. 하하하하. 제가 이 시대에 해야 할 몫이고, 감사하게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10월 13일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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