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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지 털에 붙은 집신나물 씨앗
 강아지 털에 붙은 집신나물 씨앗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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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부터 산책으로 하루를 열기 시작했다. 따가운 햇빛을 피해 이른 새벽으로 산책시간을 바꿨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새벽 산책을 하니 이제는 습관이 되었나 보다. 날이 제법 선선해졌어도 이른 아침 강아지와 산책은 여전히 즐겁다. '가을 뱀 조심하라'는 남편의 잔소리는 늘 한결같은 레퍼토리다.

요즘은 산책 후 집에 돌아와 동행한 강아지의 발을 씻기는 일 외에 최근엔 털에 붙어있는 씨를 떼어내는 일이 더 추가됐다. 산책 코스에 따라 씨 종류도 달라지는데, 어느 날은 짚신나물 씨들이 주를 이루고 또 어떤 날은 주름조개풀이, 또 다른 날은 수크령 씨앗이 잔뜩 붙어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가며 선물을 받아온 기분이다.

조그만 시골 촌락처럼 이곳저곳에 모여 사는 식물들을 보곤 우리집 강아지 같은 동물 털에 붙어있던 씨앗이 떨어져 다음 해에 싹을 틔우고, 가을이 되어 이번엔 길고양이 털에 붙어 옮겼다. 어쩌면 너구리도 한몫 해서 씨앗의 이동이 계속 반복되는 상상을 하며 괜스레 미소를 짓는다. 아마도 조금 더 선선해지면 도깨비바늘과 도꼬마리 씨앗도 다른 곳에 보내달라고 필자의 강아지에게 재촉할 것이다.

가을은 식물들이 한해 결실을 맺는 시간이다. 봄여름 부단한 노력으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이유는 바로 씨앗을 맺기 위함이었을 테니 이제 그 씨앗, 자식들을 멀리멀리 분가시켜야 할 차례다. 씨앗을 어딘가로 이동시켜줄 수단이 필요하다.

필자의 강아지에 붙어오는 씨앗처럼 식물의 이동은 외부 힘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제한된 구역에서나마 스스로 힘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두 가지 경우가 함께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봉선화는 유행가 가사처럼 '손대면 톡!' 하고 씨방이 터지면서 자신의 힘으로 퍼져나가는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물봉선이나 콩과 식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무게 늘려 다 익으면 중력을 이용해 바닥에 떨어져 퍼져나가는 과일은 종에 따라 물과 동물, 사람에 의해 옮겨지기도 한다.
 
 바람에 날려 퍼저 나가는 자작자무 씨앗
 바람에 날려 퍼저 나가는 자작자무 씨앗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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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식물은 물, 바람, 동물, 인간에 의해 멀리 퍼져나간다. 바람에 의한 이동의 대표적인 예로 민들레, 단풍나무, 자작나무, 소나무 등이 있다. 외래종인 망초도 바람에 의해 확산되니 망초 한포기가 있으면 그다음 해 그곳은 망초밭이 되기 일쑤다. 물가에 사는 식물들은 씨앗에 공기주머니가 있어 물에 떠서 흘러가며 이동한다. 수련이나 마름, 창포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씨앗에 갈고리나 가시가 있는 경우 동물의 털에 붙어 이동하거나, 과육이 있는 과실류 등은 동물이 먹이로 섭취한 후 소화되지 않은 배설물로 확산되기도 한다. 특이하게 애기똥풀 씨앗은 씨앗에 단 맛을 내는 엘라이오좀이 포함되어 있어 개미들이 먹이로 물어다가 개미집으로 운반하면 그곳에서 발아해 번식한다.

수렵과 채집 생활로 인간이 식물의 이동을 적극적으로 돕다가 기원전 1만 년 전에 농업혁명이 일어나 인간이 한곳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그 속도는 조금 주춤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후 인위적인 식물의 이동 속도와 양은 지금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종류는 번식력이 극히 강하거나 인간의 구미에 맞는, 즉 선택된 종에 한한다는 것이다.

필자 마당도 예외는 아니다. 애써 다른 곳에서 구해 씨를 뿌린 초화류가 자리잡고 있으며, 불청객인 잡초들은 계속해서 뽑아내 제거하고 있다. 필자의 욕구로 선택된 종의 다양성만 증가한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필자도 식물 이동을 하루에도 몇 번씩 돕고 있는 중이다.   
 
 중력으로 떨어진 밤 한톨
 중력으로 떨어진 밤 한톨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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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귀퉁이에 숨어 핀 민들레는 지난 봄 작은 아이가 입으로 불었던 씨앗이 날아와 자리를 잡았을지 모르고 그 이전엔 옆집 아이가, 또 그 이전엔 건넛마을에서 누군가에 의해, 아니면 바람에 의해 먼 곳에서 날아왔을지도 모를 거라 상상해본다.

더 나아가 아주 오래전 1만 명 남짓으로 줄어 멸종 위기에 있던 호모사피엔스 중 약 1000명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이동을 시작하면서 중동, 아시아로 유럽과 호주로 이주하고, 그 뒤에 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할 당시 함께 묻어 나온 민들레일 수도 있겠단 상상을 한다. 그러다보니 원인과 결과는 아주 협소한 관점이고 세상은 커다란 아니 아주 단순한 우연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우연의 연속이 자연의 다양성을 만들어주고, 인간에겐 세상살이를 더 재미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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