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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초임 시절, 난 검은색 모토로라 스타텍을 호주머니에 꽂고 다녔던 자타공인 '얼리 버드' 교사였다. 당시 첨단 교육 기자재를 이용해 수업하는 모습을 중년의 선배 교사들은 마냥 부러워했다. 와이파이와 스마트폰은커녕 교무실에 노트북 컴퓨터도 흔치 않던 때였다. 

당시만 해도 환등기를 켜서 스크린에 비추는 슬라이드 필름이 나름 첨단 기자재였다. 다른 교사들이 전지 크기의 괘도를 들고 다녔던 때, 선명한 컬러 사진을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가격은 꽤 비쌌지만, 특히 역사 수업엔 그만한 값어치를 했다. 

교과서에 수록된 사진만으로는 태부족했다. 현장 답사가 힘들었던 시절, 특히 문화사 단원을 수업할 때는 한 장의 컬러 사진이 교과서의 무미건조한 서술보다 백 배는 더 효과적이었다. 지금도 당시 활용했던 300장짜리 역사교육용 슬라이드 필름을 가보인 양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슬라이드 필름의 전성시대는 오버헤드 프로젝터(OHP)가 상용화하면서 순식간에 저물었다. OHP 전용 필름을 이용해 사진이나 도표는 물론, 판서 내용을 미리 작성할 수 있어 기존의 슬라이드 필름과는 비교가 안 됐다. 필름을 칠판에 투사하면 그 위에 분필로 필기가 가능한 장점도 있었다. 

교실마다 화이트보드 칠판이 설치되고 보드 마커가 보급된 것도 그즈음이다. 교과와 상관없이 OHP는 교실 수업의 대세로 자리 잡았고, 수업 준비는 곧 OHP 필름 출력을 의미했다. 참고로, OHP의 원리는 슬라이드 필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원할 것 같았던 OHP의 위세도 불과 한두 해 만에 꺾였다. 사용이 간편한 데다 가벼워 휴대하기도 편한 실물화상기가 등장한 것이다. 교과서 내용을 촬영하듯 찍어 즉시 칠판에 그대로 구현할 수 있으니, 필름 위에 판서한 뒤 프린터로 출력하는 등의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교과서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이었던 신문 활용 수업(NIE)에도 실물화상기는 그만이었다. 머리기사든 사설이든 실물화상기 위에 올려놓으면 신문을 질감마저도 그대로 전해졌다. 수업 준비를 위한 과제랍시고 다양한 논조의 신문을 아이들에게 챙겨오라고 다그칠 필요가 없었다. 

수업 시간에 특정 기사를 스크랩하기 위해 오리거나 찢어 붙이는 등의 공작을 위해서 쓸 게 아니라면 신문이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의 노트를 칠판에 띄워 공유할 수도 있고, 입체의 세부를 보여주는 데도 유용했다. 당시 실물화상기는, 말 그대로 '도깨비방망이'였다. 

그러나 급속한 기술의 발달 앞에 실물화상기도 몇 해 못 가 뒷방 신세가 됐다. 교사마다 노트북이 제공되고 교실마다 대형 프로젝션 텔레비전(TV)이 설치되면서 굳이 화이트보드를 쓸 필요가 없어졌다. 노트북과 TV가 자유자재로 연동되는 상황에서 실물화상기는 거치적거릴 뿐이었다.

그즈음 전자 문서 형식(PDF) 파일로 변환된 교과서가 나왔고, 노트북에 내려받아 수업 시간에 활용하는 교사들이 늘어났다. 이후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활용해 교재를 재구성한 뒤 프로젝션 TV 위주로 수업하는 게 일반화됐다. 노트북과 TV가 칠판이었고, 마우스가 분필 역할을 한 셈이다. 

'열린 교실' 지향한다며 멀쩡한 벽을 허물어낸 적도

'MBC 수업'이라는 비아냥도 그즈음 사람들 사이에 회자가 됐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기술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낡은 수업 방식을 고집하는 교사들을 꼬집어 조롱한 것이다. 여기서 'MBC'란 입(Mouth)과 칠판(Blackboard), 분필(Chalk)의 영문 앞 글자를 딴 표현이다. 

'철밥통'이라는 고정관념에다 'MBC 수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교사들 대부분은 억울해했다. 당시 교사들은 한 해가 멀다 하고 새로 도입되는 기자재에 적응하느라 무진 애를 썼다.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게 나와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노트북과 연동시킨 대형 프로젝션 TV가 끝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TV 화면에 금방 싫증을 냈다. 기술의 변화 속도만큼이나 그들의 기호도 빠르게 변했다. 파워포인트로 만든 프레젠테이션 수업을 처음엔 신기한 듯 주목하다가 교과마다 보편적으로 사용된 탓에 이내 식상해했다. 

다시 또 한두 해 만에 TV와 칠판의 장점을 둘 다 살리는 방식의 진화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도입된 것이 빔프로젝터다. 노트북과 연동하면서 TV 화면 대신 칠판 위에 구현하는 데 제격이었다. TV는 다시 화이트보드로 대체됐고, 교실마다 천장에 빔프로젝터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천장에 매단 빔프로젝터도 얼마 못 가 교체됐다. 칠판을 향한 빛이 너무 강해 수업하는 교사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교사가 칠판 곁에 설 수 없어 아이들의 시선이 두 갈래로 분산됐다. 교사가 시야에서 벗어난 수업은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천장의 빔프로젝터가 칠판 위로 옮겨졌다. 그냥 옮긴 게 아니라 '신제품'으로 바꿔 단 것이다. 이른바 극초단파 빔프로젝터로, 눈부심도 적고 칠판 바로 위에서 비춰도 화상이 그대로 유지되는 장점이 있었다. 더욱이 셋톱 박스까지 연결되어 멀티미디어 기능까지 지원된다. 

물론, 교실 환경의 변화는 수시로 교체되는 교육 기자재의 변화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한때 '열린 교실'을 지향한다며 멀쩡한 교실 벽을 허물어낸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모둠활동과 토론 수업을 강화한다며 모이고 흩어지기 쉽도록 바퀴 달린 책상을 보급하기도 했다. 

몇 해 전엔 '교과 교실제'가 추진되면서 업무 중심의 교무실 구조가 교과 중심으로 재편되는 변화가 있었다. 학교마다 교실이 휴게실로 바뀌는가 하면, 협동학습실과 공용교실 등의 이름을 내건 특별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덩달아 교실의 '문패'도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했다. 

학교마다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과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료사진.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과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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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교육의 본령과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당국의 노력이라는 점엔 동의한다. 정책의 취지와 방향에 대해서도 대체로 공감한다. 다만,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깊은 고민 없이 학교 현장을 첨단 기술의 시연장이나 설익은 정책의 실험장으로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교실의 '하드웨어'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십수 년간 여러 나라의 학교를 가봤지만, 우리나라에 견줄 만한 곳은 없었다. 갖춘 교육 기자재로만 보면, 단연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누군가 장비가 부족해서 수업하기 힘들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작년 이후 코로나로 원격수업이 보편화하면서 교사 개인별로 태블릿피시까지 제공되는 상황이다. 더 많은 첨단 교육 기자재가 제공된다 한들 더 나은 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솔직히, 노트북이 있는데 왜 태블릿피시가 따로 필요한지 아직도 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을 돌이켜보건대, '알맹이'를 채울 겨를도 없이 새로 들여온 '껍데기'를 익히느라 헉헉댔던 세월이었다.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주눅이 들어서인지, 이젠 노트북과 빔프로젝터 없는 교실을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됐다. 빈손으로 교실에 들어갈 때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어젯밤 아이들과 원탁에 둘러앉아 토론을 벌이는 꿈을 꿨다. 종료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장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그곳은 노트북도, 빔프로젝터도, 심지어 칠판도 없는 텅 빈 교실이었다. 그 낯선 환경에 놀라 잠이 깼다. 그런 교실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요즘도 학교마다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고교학점제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1교사 1교실 체제'로 바꾼다는 취지다. 아이들의 적성에 따른 다양한 선택 과목을 개설하려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계획대로라면, 고교학점제는 내후년 고1을 시작으로 2025학년도에 전면 실시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첨단 기자재가 먼저 들어오고 있다. 듣자니까, 교실에 전자칠판이 설치된다고 한다. 스크린이나 화이트보드는 물론, 초록색 칠판도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분필과 분필 닦이도 더는 필요 없어, 이제 옛날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슬라이드 필름이 첨단 노릇을 하던 시절부터 전자칠판이 설치되는 현재까지, 교실의 눈부신 발전을 지켜봐 왔다. 그런데, 그만큼 내 수업 실력도 늘었는지, 나아가 그만큼 아이들과 더 교감했는지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이는 비단 나만의 자괴감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교실 안팎이 첨단 기술로 도배된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저절로 높아질 리 없다. 첨단 기자재가 교사의 열정과 헌신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금언과 '교육은 마음의 일'이라는 한 성인의 말씀이 유독 가슴에 박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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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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