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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더미 속에서 사심을 담아 알리고 싶은 책, 그냥 지나치긴 아까운 책을 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가 골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나는 특성화고등학교를 나왔다. 지금이야 '특성화고'라는 말이 보편화됐지만, 10여 년 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이 말은 그리 익숙한 명칭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닌다고 말하면, 종종 '실업계 고등학교인 거냐'는 질문이 돌아오곤 했다.

전문계고등학교의 과거 명칭이 실업계고등학교이고, 이 전문계고등학교가 특성화고등학교로 통합된 것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이런 물음을 받을 때면 나는 매번 구구절절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영상을 배우는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단편영화나 방송 제작 같은 걸 공부한다고. 그건 일종의 해명이나 항변에 가까웠다.

공장, 노동, 현장실습, 취업. 사람들이 '실업계'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는 이미지들과 나를 구분하고 싶었다. 그 옛날과 '요즘' 특성화고는 다르다고. 그러니까 내가 속한 이 세계는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그리 나쁘지 않다고.

이 생각은 진심이었다. 나도 역시 영상 제작과 관련한 실습을 했지만 이는 대부분 학교 울타리 안에서 진행되었다. 방학이면 사비를 털어 친구들과 함께 개인 작품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노동이었다. 고생은 했지만 착취당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고, '특성화 고교 취업률 향상'이 주요 정책 과제로 말해지던 때였으니 학교도 부랴부랴 취업률을 신경 쓰긴 했지만 그게 학생들을 향한 구체적인 압박으로 되돌아오진 않았다. 나는 조금 일찍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고 여겼고,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모멸감을 견뎌야 하는 일도 없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꽤나 안전하고 자유로웠다.

그러나 이런 나의 경험은 내가 속한 세상 안에서만 유효한 '반쪽짜리' 진실이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게 전부였던 그 공간에서 발을 떼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알고 경험한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은 다르다는 그 말 

내 또래의 누군가는 바로 그 '요즘' 특성화고를 다니며 현장실습에 나가 계약서 없이 일했고, 최저시급도 받지 못했다. 실습생이라는 신분이었지만 잔업이 있다는 이유로 야근을 해야 했고, 일하는 게 미숙하다며 끊임없이 책망의 말을 듣기도 했다.

때론 관리자나 동료가 없어도 홀로 일을 해내야만 했고, 여러 번 고장 났지만 제대로 수리되지 않은 위험한 기계 앞에 서야만 했다. 이런 사실을 학교에 토로해도 '네가 버티지 않으면 다음에 후배들이 실습을 못 나간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렇게 버티다 누군가는 다쳤고, 또 죽어갔다.

나와 같은 터전 안에 속해 있었지만 다른 일상을 살아가던 이들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요즘은 다르다'는 내 판단은 오만한 것이었다. 그 오만한 판단을 부끄럽게 만드는 소식들은 아직도, 여전히, 끈질기게 뉴스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지난 6일, 또 한 명의 특성화고 학생이 일터에서 숨을 거뒀다. 전남 여수의 한 요트 선박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정운군은 바다에 잠수해 요트 바닥에 붙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 사망했다.

홍군은 만 17세였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겐 잠수 작업을 시킬 수 없다. '현장실습표준협약서'의 내용이 지켜지기만 했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사고였다. 홍군이 서명했다는 그 협약서엔, 잠수 작업은 실습생에게 시킬 수 없는 '위험한 작업'으로 분명히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트라우마가 있을 정도로 물을 무서워하고, 잠수 자격증조차 없던 홍군은 12kg에 이르는 납 벨트를 맨 채 홀로 바다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참담한 소식 앞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최진영의 단편소설 <일요일>에서 주인공인 '나'가 읊던 세 문장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돈 버는 일이 힘들다고 말할 수는 있어.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그렇게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
먹고사는 일이 원래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어."
 - 최진영의 소설집 <일주일> 중에서, '일요일' 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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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일주일>
 최진영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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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성당 유치원에서 처음 만나, 초등학교 중학교 같은 곳을 나온 세 사람 민주, 도우,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습관처럼 성당에서 만나, 미사를 드리고 서로가 전부인 것처럼 뛰어 놀던 세 사람. 이들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세 사람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면서부터였다.

미사의 말미, 서로에게 멋쩍게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는 의식은 그대로였지만 그 이후의 시간은 이전과 달라진다. 도우는 미사가 끝나면 과외를 받으러 갔다. 그에겐 휴대전화나 현금 카드 같이 민주와 '나'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생겨났다. 도우는 서른살이 되기 전에 외국 대학의 교수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는 또래가 아니라 교수인 부모를 자신의 라이벌로 삼았다. 도우는 외고에 진학했다.

도우 같은 애들과는 애초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며, 세상이 '불공평하지 않냐'고 투덜대던 민주도 공부엔 열심이었다. 그는 학원에 다녔고, 공무원인 부모는 민주가 원하는 성적을 내면 한정판 가방과 신발을 안겨줬다. 민주는 일반계고에 갔다.

그리고 '내가 전셋집에 산다는 걸 알았'지만, '도우의 한 달 과외비가 얼마인지는 몰랐던', 1등을 꿈꿔본 적은 없지만 빨리 돈을 벌어 부모님에게 용돈을 주고 싶었던 '나'는 특성화고에 진학해 자격증을 따고, 알바를 하고, 현장실습을 나간다.

달라진 일상으로 인해 잘 만나지 못하던 세 사람이 다시 모이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알바를 뛰던 '나'는 도서관에 치킨 배달을 나갔다가 아이패드로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땡땡이를 치고 나온 민주와 도우를 조우한다. 그 자리에서, 도우는 치킨을 뜯으며 이런 단어들을 툭툭 뱉어낸다. '미성년자', '현장실습', '죽음'. 그 또렷한 단어들을 곱씹으며, '나'는 생각한다.
 
"... 지겹도록 들었다. 그게 바로 세상이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그럼 다들 그렇게 죽나? 그렇게 죽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거라고 말하면서 미성년자 실습생이 죽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살기 좋은 세상. 도우와 민주가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들에게 먼저 말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중략) 민주와 도우가 걱정하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벌써부터 나를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불행한 사람으로 보는 것만 같아서. 나는 친구들과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p.38) 

쓸 수밖에 없었던 소설

<일요일>은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에게 평화를 빌어주던 세 사람의 삶이 어긋나는 지점들을 짚는다. 함께 일요일을 보내고 같은 시간을 통과해온 이들의 서있는 풍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왜 달라져야만 했는지 묻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은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며, '누구는 웅덩이에 있고 누구는 언덕'에서 '어쨌든 노력하며 아무튼 불공평하게 살고 있'는데, '제발 세상이 좋아졌다느니 젊은 애들이 문제라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일갈하기도 한다. 

최진영 작가는 소설집 <일주일> 끝에 수록된 에세이, '사사롭고 지극한 안부를 전해요'에서 <일요일>이 은유 작가의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고 쓴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CJ제일제당으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직장 내 괴롭힘 등에 시달려 숨을 거둔 고 김동준군, 그리고 김동준'들'의 이야기를 담은 르포다. 최 작가는 이 책을 두고 "소설을 쓰려고 읽기 시작한 책 아니었"지만 "다 읽은 후에는 그 책을 바탕으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청소년의 삶을 타자화하거나 납작하게 묘사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의 절실했던 마음을 가늠해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은 달라졌다'며 반쪽짜리 세상만 바라보고 있는 이들과 함께, 이 소설을 이어 읽고 싶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도 더 많이 달라져야 하므로.

일주일

최진영 (지은이), 자음과모음(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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