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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백전면사무소
 1970년대 백전면사무소
ⓒ 함양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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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모두 격앙된 상태로 이장을 향해 고함을 질러 댔다. 포마드를 잔뜩 발라 번쩍대는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추 이장은 사죄는커녕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멍석에서 일어나 추 이장에게 달려들려는 박 영감을 주변에서 겨우 뜯어말렸다.

박 영감이 서른 중반의 혈기 왕성한 농부였던 시절이다. 마을 회관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넓은 마당이 있는 박 영감의 집이 동네의 광장 역할을 하던 때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심지어 동네 개들까지 마당을 빽빽하게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는 꼬맹이들은 이제나저제나 하고 잔치 음식을 기다리느라 속이 다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박 영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보소, 추 이장! 그래가꼬 돈 띠묵은 기 잘했다는 기라?"
"내가 어데 잘했다 카더나? 니 같은 평민 무지랭이야 잘 모르겄지만, 이장 업무를 할라 카믄, 품위 유지를 쫌 해야 되는 기라. 그라이까네 술값으로 돈을 쫌 날맀뿟다, 요 말이지."


목에는 흰 수건을 두르고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박 영감은 분을 삭이지 못해 콧구멍을 벌렁벌렁해 가며 오장육부를 훑고 지나온 한숨과 욕지거리를 입으로 뱉어냈다.

"에라이, 시벌 놈아! 띠묵을 돈이 엄서가꼬 동네 사람들이 농약하고 비료 사라꼬 준 돈을 처묵어뿌나. 에이, 더러븐 새끼!"
"저, 저, 저, 어린 노무 쌔끼가 말하는 꼬라지 한번 보소! 내가 내 좋타꼬 술 묵은 기 아이라 카이. 마을 발전을 위해가꼬 내가 높으신 분들을 모시고 대접을 한번 했는 기라꼬. 이래 술을 쫌 뿌리놔야 우리 마을에 머가 돌아오는 기라. 암껏도 모리이까네, 지금 내한테 이카는 기지, 세상이 우째 돌아가는지를 알고 나믄, 내한테 훈장이라도 바치야 되는 기라꼬."


80년대까지도 농자재와 모종 등 농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이장을 통해 일괄적으로 구입되고 배분되었다. 행정 편의를 위해 관청에서 의도적으로 유도한 까닭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사실 농촌 구성원들의 문해력이 다소 미흡해서 어쩔 수 없는 조치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에게 돈을 다 거둬들인 뒤 그 돈을 개인적으로 써버리고 농협이나 농자재 가게에 외상으로 달아놓는 이장들이 좀 있었다고 한다. 우리 마을 이장의 계보에서 추 이장은 그런 부류에 속하는 위인이었다. 박 영감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씩씩거리며 말을 이어 갔다.

"니한테 4년씩이나 갖다 바친 내 나락(벼)과 보리가 불쌍타, 이 쌔끼야!"
"이장 한다꼬 내한테 수고비로 일 년에 한 번 나락하고 보리 쪼매 주믄서, 고깟 돈 한번 술값으로 썼다꼬, 아래 위 똥오줌을 몬 가리노, 저노무 새끼가! 그라고 내한테 주는 너거 집 나락은 다 쭉정이더만, 개노무 새끼. 니는 일부러 내한테 쭉정이만 골라서 줬뿌는 거 맞재?"


마을에 '연가조(年家粗)'라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어원이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이 규약은 '리정세'(자치규약으로 정해져서 마을 구성원들에게 거두는 일종의 마을 공동기금 같은 것)와 비슷한 성격이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연가조는 봉사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이장에게 지급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연가조 규약에 따라 한 가구당 1년에 나락 1말과 보리 1말을 이장에게 건네야 했다. 1말은 18L에 불과하지만 60~80년대 초까지도 우리 마을에는 한지 공장이 4개나 있어서 가구 수가 거의 70호가량 되었으니 이장은 적지 않은 수고비를 거둬들였을 것이다.

"이장, 니가 일을 잘했으믄 내가 쭉정이를 줬겄나? 요 앞에 경백리 이장은 마을에 신작로도 쫙쫙 깔아뿌고 하는데, 니는 뭐 하는 긴데? 사업도 하나 몬 따오고! 마을 숙원 사업인 다리도 지금 몬 놔가꼬 징검다리로 댕기야 되이까네 말이 되냐꼬. 니 말매로 높은 사람들하고 술을 그마이 처묵었으믄 다리는 하나 놨어야 될 꺼 아이가!"

박 영감의 호통에 추 이장이 입맛만 쩝쩝 다시며 딴청을 부리고 있을 때, 조심스러운 목소리 하나가 무거운 분위기를 살짝 비집고 나왔다. 면사무소 김 주사였다.

"아이고, 오늘 마을에 잔치가 있다 캐가꼬 도살비 좀 받아뿔라꼬 왔는데, 제가 날을 잘못 잡은 기 아이지요?"
"오늘이 영동이 아부지 환갑 잔치라가꼬 우리 집 마당을 내줬뿟는데, 그건 또 우째 알았을꼬? 참말로 점쟁이네 점쟁이."

  
 1950년대 우리 아빠의 외할머니 환갑 잔치
  1950년대 우리 아빠의 외할머니 환갑 잔치
ⓒ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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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주사는 박 영감의 말에 겸연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다 빙긋이 웃으며 누런 수첩을 꺼냈다. 그 당시 농촌 지역에선 세수 확보를 위해 가축 도살에도 세금을 걷었다.

"돼지 한 마리만 잡은 거 맞지요? 다음에 시간 날 쩍에 이장님이 면사무소 오시가꼬 돈 내시믄 되이까네, 저는 이만···."
"아이고야, 우리 김 주사 와이카노! 곧 음식 나오이까네 술이라도 한 잔 묵고 가뿌야지."


이장이 김 주사를 향해 자기 옆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며 말했지만, 평소와 달리 김 주사는 선뜻 상석으로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박 영감과 이장이 옥신각신 실랑이하는 모습을 얼마 동안 지켜본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파악한 것이리라.

"그 도살비는 아마 바뀐 이장이 내러 갈 끼라요, 김 주사님. 오늘 바로 투표해가꼬 추 이장 저노마를 확 끌어내리뿔 끼이까네. 잔치 시작 전에 투표부터 하입시다. 다들 제 말에 찬성하는 기지요?"

박 영감의 제안에 다들 찬성한다고 고함을 질렀는데, 잔치 음식을 기다리던 꼬맹이들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고 한다.

변심

"박 이장이 쪼매 더 하고 싶다 카이까네 한 1년만 더 하고, 그 뒤에 우리 이사장이 이장을 하믄 안 되겄나. 그게 순리가 아인가 싶다꼬."

머리칼이 온통 새하얀 박 영감의 말이었다. 작업반장과 남편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중평댁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박 영감을 동시에 쳐다봤다. 박 이장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게 눈웃음을 만들어 보였다. 진짜 잘됐다 싶었다. 농사일에, 육아에, 제멋대로인 철없는 남편에, 협동조합에, 마을기업에···. 이런 상황에서 이장 자리까지 떠맡고 싶지는 않았다.

이장 교체를 의논하기 위한 마을 회의는 박 영감의 말 한마디에 '주민 소환'의 성격에서 점점 박 이장을 재신임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박 이장도 다행스럽고, 나도 만족할 만한 상황이었다. 물론 반장과 남편은 칼에 찔린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를 쳐다보듯 황망하게 박 영감의 눈을 응시하기만 했다.

"골프 선생질 했다 카고, 대학교꺼정 댕깄다 캐도, 여자는 여자일 뿐인 기라. 여자가 무신 이장을 한다꼬."
"암탉 꽥꽥 집안 폭삭(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카는 말이 와 있겠노."
"술 처묵는 거 좋아하는 저런 가시나가 우리 이장 되믄, 넘사시러버가꼬(부끄러워서) 다른 동네에 놀러도 몬 간다 아이가."
"이장 단합대회 가가꼬 밖에서 술 묵으믄 어데다 오줌 쌀라꼬?"
"내는 일영이가 이장 되뿌믄 남자 이장 사는 동네로 이사가뿔라 캤다꼬."


슬슬 부아가 치밀고 주먹이 저절로 슬그머니 쥐어졌다. 내가 단지 여자라서 이장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나를 더 열 받게 만든 건, 내가 술을 좋아해서 이장 자격이 없다는 거였다.

물론 내가 술을 좀 좋아한다. 귀농해서 제일 좋은 게, 비가 오면 아침부터 술을 까도 흉을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 거의 다 노지 농사를 짓다 보니, 비가 오는 날은 쉬는 날이라 다들 김치전에 막걸리는 기본이다.

무산댁 자신도 비만 오면 아침부터 소주를 까면서, 내가 넘사시럽다고? 이제까지 술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장을 못 한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술을 많이 마실수록 호탕하다느니, 호연지기가 있다느니, 이딴 식의 반응을 보였으면서···.

(술을 좋아하는) 여자라서 이장은 안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문장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될 수 있었다. 내가 술을 싫어했어도 다들 내가 이장이 되는 걸 반대했을 것이다. 이 괄호 안에는 무슨 말이든 끌어올 수 있다. 결론은 내가 여자라서 이장은 안 된다, 이거다. 갑자기 마음이 변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장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반격

"내도 이장을 한 4년 정도 했지만, 지금 박 이장은 쫌 심하다꼬. 내가 이장 할 쩍에 마을 회관 개보수를 했꼬, 경지 정리도 했뿟다 아이가. 그란데 박 이장 이노마는 6년 동안 아무꺼또 마을에 해논 게 없다꼬. 박 이장아, 우리 마을이 뭐 문화재라도 지정됐나? 동네 꼬라지를 한 개도 몬 바꾸고 요대로 보존해야 되는 기라 뭐라? 이제꺼정 노인회 총무 하는 거 보믄, 나는 일영이가 이장하는 것도 괜찮지 싶다꼬."

잠자코 있던 김 영감이 느닷없이 한마디를 던졌다. 동네에 협동조합과 마을기업 이야기가 돌면서 김 영감은 마을 일에서 손을 뗀 듯한 느낌이었는데, 의외였다.

"내도 일영이가 이장 하믄 잘할 것 같다꼬. 삽질 잘하지, 예초기도 잘 돌리지, 욕 잘하지, 힘도 씨지, 꼼꼼해가꼬 뭐를 시키놔도 일을 잘하더라꼬."

소평댁은 말을 마친 뒤 나를 향해 이빨이 빠져 순박해 보이는 미소를 던졌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박 이장과 마을 주민들을 향해 한 가지 제안을 하고 말았다.

"오늘부터 선거 운동 시작하고, 일주일 뒤에 투표로 이장을 뽑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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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다가 함양으로 귀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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