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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기사 공식적으로 세계 무대에 최초로 등장한 한글에서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이런 질문으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 싶군요. 한국인의 문화적, 정신적 자주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를 꼭 하나 든다면 무엇일까요? 나는 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독립정신과 한글 존중은 정비례의 함수관계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최초로 조선의 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엔 조선의 사대부들 사이에서 한글은 몹시 천시되었습니다. 사정이 그러했기 때문에 1883년 9월 19일자 '뉴욕 헤럴드' 지에 대서 특필된 한글 문서가 지니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거예요. 먼저 미국 신문에 소개된  한글 문서 실물을 찬찬히 살펴 보도록 합시다.
 
미 언론에 최초로 보도된 한글 문서  왼쪽 문서는 사절단에 대한 고종의 신임장, 오른 쪽은 전권 대신 민영익의 미 대톨령에 대한 인사말
▲ 미 언론에 최초로 보도된 한글 문서  왼쪽 문서는 사절단에 대한 고종의 신임장, 오른 쪽은 전권 대신 민영익의 미 대톨령에 대한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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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문서는 고종 임금이 파견한 사절단에 대한 신임장이고, 오른쪽은 전권 대신 민영익이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행한 인사말입니다. 이 두 문서와 영문 번역본에 담긴 용어 중에 주목을 요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조선을 '대조선'이라 칭하고 영어로는 'Tah Chosun'라 표기한 점을 먼저 들 수 있겠습니다. 종래 '조선'은 영어로 'Chosen'이라 표기했는데 이는 물론 일본식 발음입니다. 1882년에 체결된 조미조약 영문본을 보면, 조선이 'Chosen'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일본식 이름이 한국의 조약문(영문)에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번엔 미국정부와 언론이 일제히 한국을 조선어식으로 'Tah Chosun', 조선인을 'Corean' 혹은 'Chosunese'로 표기하였습니다. 이렇게 한미관계의 첫걸음에서 조선이 비로소 제 이름을 찾고 대외 종속을 벗어나는 역사를 썼던 것이지요. 

조선을 '대조선'으로 칭하는 한편 미국은 '대아미리가합중국'이라 호칭하였습니다. 조선의 임금은 '대군주'라 자칭하고 미국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 백니쇠쳔덕'이라 호칭했습니다. '백니쇠쳔덕'은 한자로는 '伯理璽天德'인데 'PRESIDENT프데지던트'의 발음을 따서 옮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국 대통령을 'GTREAT(대) PRESIDENT(백니쇠쳔덕)'라 부른 셈이지요. 이로써 양국 국가명과 원수의 호칭이 대등하면서도 상호 예의를 갖추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신임장의 말미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개국 사백구십이년 뉵월 심이일(개국開國 492년 6월 12일)"

예전의 조미조약에서는 청국의 '光緖광서' 연호와 개국연호를 병기했는데, 이번에는 청나라 연호를 과감히 버리고 조선의 개국연호만을 사용한 것이지요. 이는 조선이 청나라에 대한 종속 관계를 청산하고 명실상부한 자주독립 국가를 이루었음을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미국 언론을 통해 조선이 한글이라는 독창적이고도 우수한 문자를 창제한 문화국가임을 과시한 점이 최대의 쾌거였다고 해야겠지요. 조선 사절단으로서는 정작 모국에서는 천시당하고 있는 한글에 대해 미국인들이 놀라워 한다는 사실에 신선한 자극과 자긍심을 느꼈겠지요. 타자의 거울에 비친 자아의 재발견이라 할까요?

당시 수행원으로 참여했던 유길준이 훗날 한국에서 한글 운동의 선구자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겁니다. 유길준은 외쳤지요.

"읽을 지어다. 우리 글을 읽을 지어다. 우리 대한 동포여, 우리 민족이 단군의 후예로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특유한 문자가 있어서 그 사상과 의지를 성음聲音으로 발표하고 기록으로 4천여의 성상을 통과하여 역사의 진실을 지키고 습관의 실정을 증명하도다." 

그렇다면 이 뜻 깊은 최초의 한글본 국서는 과연 누가 작성했을까요? 이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으므로 우리 스스로 탐색해 보도록 합시다. 우선 위의 두 문서를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필체가 동일하며 유려합니다. 따라서 많이 써 본, 한 사람의 글씨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사절단 중에서 한글에 능한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먼저 전권대신(正使) 민영익(閔泳翊)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는 왕가의 일원이었습니다. 민비의 조카였고 누이동생이 세자빈이었습니다. 왕실의 여인들은 한글로 소통했습니다. 민영익도 한글로 그들과 소통했음이 분명하구요. 민비는 외교관의 부인들에게도 한글 편지를 보내곤 했지요(아래).
 
민중전의 한글 초청장 미국공사 부인에게 보낸 민중전의 한글 초청장(1894.2.24)
▲ 민중전의 한글 초청장 미국공사 부인에게 보낸 민중전의 한글 초청장(189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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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일은 궁중에서 다수의 공식 문서가 한글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이지요. 몇몇 실례를 보겠습니다.
 
세자빈 후보자 명단 1882년(고종 19)세자빈 후보자 명단, 최종적으로 민영익의 누이가 선정된다. 책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10쪽 촬영.
▲ 세자빈 후보자 명단 1882년(고종 19)세자빈 후보자 명단, 최종적으로 민영익의 누이가 선정된다. 책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10쪽 촬영.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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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1882년의 왕실 한글 문서로서 민영익의 여동생인 세자빈과 관련된 문건들입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민영익은 늘 한글을 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여겨집니다. 아울러 그 자신이 한글을 유려하게 썼습니다. 훗날 조선에서 그와 나는 한글로 편지를 주고 받았지요. 민영익이 나 조지 포크에게 보냈던 편지 하나를 볼까요?
 
민영익의 한글 편지 George Foulk 미국대리공사에게 보낸 민영익의 한글 편지(1885). <알렌의 일기>(단국대학교출판부) 18쪽 촬영.
▲ 민영익의 한글 편지 George Foulk 미국대리공사에게 보낸 민영익의 한글 편지(1885). <알렌의 일기>(단국대학교출판부) 18쪽 촬영.
ⓒ 단국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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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의 첫머리를 현대어로 옮기면 '미국대리공사 복구씨'인데 여기에서 '복구'는 바로 내 이름 '포크Foulk'의 한글식 이름입니다. 한자로는 福久(복구)라고 했지요. 민영익의 한글 편지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아래는 1887년 알렌 미국 참찬관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민영익의 한글 편지 알렌 참찬관에게 보낸 민영익의 한글 편지(1887.음력 10.170), <알렌의 일기>(단국대학교출판부) 128쪽 촬영.
▲ 민영익의 한글 편지 알렌 참찬관에게 보낸 민영익의 한글 편지(1887.음력 10.170), <알렌의 일기>(단국대학교출판부) 128쪽 촬영.
ⓒ 단국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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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익의 서화는 조선에서 명성이 자자했지요. 보다시피 한글도 매우 유려하게 썼지요. 그렇다면 한글본 국서를 쓴 사람은 민영익이었을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한글본 국서와 민영익의 한글을 자세히 대조해 보면 필체가 서로 다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글 국서의 주인공이 서광범이라고 판단합니다. 서광범과 나는 한글을 주고 받았습니다. 비록 실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글씨체를 나는 기억합니다. 또한 당시 서광범은 사절단에서 서열이 세 번째로서 문서에 관한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사절단 중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개혁적인 사상의 소유자였지요. 

한글 문서를 미 대통령에게 전달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그에게서 나왔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서광범이라면 모를까, 그런 평지 돌출적인 일을 아무나 생각해 낼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한글의 세계화 역사>를 쓴다면 당연히 1883년 9월 방미 사절단의 한글 국서 제정 사건이 한 페이지를 장식해야 할 거예요. 당시 한글 초보를 배우고 있던 나 조지 포크는 뉴욕 헤럴드지에 한글이 대서특필되는 것을 보고 묘한 감동을 느꼈지요.

우리는 다음날 보스턴을 방문했습니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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