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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동물은 내게 OOO이다'입니다.[편집자말]
얼마 전 아파트 단지에서 대형견 여름이와 산책을 하는데 뒤에서 걸어오던 어르신 무리가 불만스럽게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저렇게 큰 개를 입마개도 안 하고 데리고 다녀? 어휴, 저런 개는 무서운데~"

대형견과 산책하다 보면 늘 익숙하게 듣는 말이기에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바짝 다가와 들으라는 듯이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탓에 결국 나도 로봇처럼 익숙한 멘트를 뱉어냈다.

"이 개는 입마개 의무 견종이 아니에요."
"아니, 그래도 해야지! 나는 싫어~"


결국 쌀쌀맞게 "저도 이런 소리 듣기 싫어요" 하고 빠르게 걸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싫다'라는 개인의 감정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있어 논리적인 근거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더 이상의 설명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대형견 입마개에 관련한 논쟁이 붙으면 실질적인 규제와 상관없이 '내가 싫고 무서우니까 입마개 착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다. 누구에게나 특별히 싫고 무서운 것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개를 충분히 안전하게 통제하고 있고, 목줄 착용 등 정해진 규제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걸 지켜보는 개인의 기분이 우선시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도리어 대형견과 함께 걷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된다. 내 개가 누구를 공격할 가능성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공격적인 말을 듣는 일이 실제로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면 서로 소모적인 논쟁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아예 이 모든 걸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렇다고 눈에 띄지 않게 집안으로 숨을 수도 없는 일이다. 내일도 나는 어쨌든 여름이를 데리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대형견 여름이
 대형견 여름이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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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존재를 깨닫는 일

하지만 항상 갈등만 겪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반대의 상황도 있다. 여름이와 매일 산책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우리 동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지 알게 됐다.

동네에 대형견이 별로 없다 보니 오며가며 마주치는 이웃들 중에는 여름이를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분들도 많다. 서로 반려견을 데리고 있지 않을 때에도, 얼굴이 익숙한 이웃끼리는 서로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떨 때는 반려견과 산책하던 어르신 한 분이 아는 체를 하더니 자신의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으시기도 했다. 나이는 10살이고, 심장이 안 좋아서 얼마 전에 수술을 했고, 걸어서 산책하기 어려워서 유아차에 태워 데리고 나온다는 사연을 들으면서 나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짧게 주고받는 대화지만 같은 반려인으로서 그 마음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또 가끔 자신도 리트리버를 키우고 싶은데, 키우기 어렵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분들에게 현실 육견의 고충이나 노하우를 나름대로 전해드리기도 한다. 

낯선 사람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이는 성격이 아니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현대인의 삶이 익숙한 나에게 이웃의 존재를 체감한다는 것은 무척 생경한 경험이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마주치고, 서로 반려견의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이 아니라 내 주변에 살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반려견을 데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동지였고, 이웃이자 친구가 됐다.

사람들과 섞여 살아간다는 것

개를 키우기 전까지 나는 고양이와 함께 우리만의 폐쇄적인 세계에 머무르는 데에 익숙했다. 집에서 혼자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사회적인 모임이나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아서 내가 구축한 안전하고 다정한 세계에서 벗어날 필요가 많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애정도 크지 않고, 기본적으로 내향형 인간인 나로서는 사람들과 마주칠 필요 없는 나의 일상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던 중 개를 키운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바깥 세상과의 접점이자 연결고리가 생기는 일이었다. 나 자신은 둘째치고 개는 산책을 비롯해 사회적인 활동을 필요로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바깥으로 나가고 사람들을 마주쳐야 했다. 사람 사는 게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듯, 여름이와 함께 세상에서 부대끼는 것은 때로 괜한 참견에 불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또 때로는 뜻밖의 위로를 주고받기도 하는 일이었다.

필연적으로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야 하는 나의 개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거나 자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여름이를 대신하여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있다. 약자를 쉽게 혐오하고 강자의 권력으로 그들의 권리를 당연하게 짓누르기도 하는 세상에서, 동물은 누구에게나 쉽게 타깃이 된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여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저 세상은 세상대로 돌아가도록 두고, 나는 나대로 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굴 설득하기도,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도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니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아주 작은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평온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충분했다. 더 좋은 일도, 더 나쁜 일도 마주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여름이와 살아가면서 나는 내 반려동물이, 그리고 내가 키우지 않더라도 세상의 다른 동물들이, 또한 사회에서 또 다른 약자이거나 소외된 사람들이 온당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반려동물 역시 우리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이고, 나는 그 사회를 구축해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싸우고 싶고, 미세한 목소리나마 보태고 싶고, 고민하고 싶어졌다.

결국 여름이는 우리가 사람들과 섞여서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내게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나와 반려동물의 작은 울타리를 넘어서 사람을 이해하고 어울리며 때로 누군가를 위해 지켜내야 할 가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여름이가 세상을 향해 열어준 문을 통해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group반려인의세계 http://omn.kr/group/with_with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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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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