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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우리 집 뒷마당은 산과 이어져 있다. 그래서 부엌문을 열고 뒤쪽 데크로 나가면 산의 풍경이 마치 우리 집 앞마당인 것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공기도 좋고, 늘 푸르름을 시야에 넣을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 

그런데 며칠 전이었다. 저녁을 먹고 치운 후였는데 갑자기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뭔가 큰 것이 넘어지거나 한 것 같은 소리였다. 

"뭐지? 곰이 데크까지 올라온 것일까?"

요새 날이 서늘해지면서 곰의 방문이 부쩍 늘었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비가 와서 더욱 깜깜한 밤이었는데, 고요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바닥에 바비큐 도구들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조롱조롱 걸어놓은 것들이라 동물이 친다고 해서 그렇게 3개가 다 떨어질 이유가 없을 거 같은데 이상하다 싶었다. 그 순간 남편이 "오, 세상에!"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쇠로 된 바비큐 그릴이 휘어있고, 바닥에 도구들이 떨어져있었다.
 쇠로 된 바비큐 그릴이 휘어있고, 바닥에 도구들이 떨어져있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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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니 커다란 나뭇가지가 데크 난간에 떨어져 있었다. 우리 집은 뒷산과 연결되어 있어서 오래된 나뭇가지들이 종종 떨어진다. 보통은 잔가지들이고, 길면 팔뚝보다 좀 긴 것도 있는 정도였는데, 이 가지는 데크의 난간을 모두 덮을 만큼 컸다. 나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가까이 가보았더니, 새로 지은 난간이 부서져 있었고, 그 옆 화분의 식물들도 부러져 있었다. 

우리는 이 데크에 앉아서 식사를 하거나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하는데, 만일 우리가 앉아있을 때 떨어졌으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가지에 사람이 맞기라도 했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다. 안 그래도 이 나무가 높이 자란 채 휘어 있어서 우리 데크에 걸쳐 있는 것이 무섭다고 거의 일 년 전부터 말하곤 했었는데, 결국은 이런 사고가 터지다니...
 
데크에서 하늘을 향해 찍은 사진. 한 그루만 유독 가로로 놓여있다.
 데크에서 하늘을 향해 찍은 사진. 한 그루만 유독 가로로 놓여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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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데크로 드리운 이 나무는 높이가 어림잡아 20~30미터 정도 되는 미루나무이다. 위쪽의 5미터 정도는 활처럼 휘어있었기 때문에 더욱 위협적이었다. 미루나무는 원래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무가 이 정도의 키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렇게 크고 나면 위쪽까지 영양 공급이 잘 되지 않아 가지가 부러져 떨어지는 일이 흔한 편이다.

더구나 이 지역은 일 년의 대부분이 비가 오는 기후여서 나뭇가지가 썩기도 쉽다. 그래서 우리 집 마당에는 늘 자잘한 가지들이 떨어져 있곤 했다. 최근 들어서도 큰 가지가 여러 번 떨어졌었다.

아침이 밝은 후에 나는 사진을 찍으러 나갔다. 캐나다에서는 자기 집에 있는 나무라 해도 개인이 허가 없이 마구 자르면 안 된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허가가 나오겠지만, 우리 동네는 시에서 관리하지 않고, 아파트 단지처럼 따로 관리가 되는 곳이다. 그래서 이런 일은 관리소에 연락을 하면 해결해준다. 관리 구역에서 사고가 나서 사람이 다치거나 지붕이 부서지거나 하면 그들의 책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찍은 피해현장. 정면에 보이는 나무가 그 문제의 나무이다.
 아침에 찍은 피해현장. 정면에 보이는 나무가 그 문제의 나무이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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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에서 사진을 찍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나뭇가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데크 난간을 모두 덮은 것으로도 부족하여, 땅에 길게 드리운 나뭇가지를 보는 순간, "운이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본 나뭇가지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밑에 내려와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커서 아래층까지 길게 늘어져있었다
 위에서 본 나뭇가지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밑에 내려와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커서 아래층까지 길게 늘어져있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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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은 참 이상하다. 전날 밤에 난간이 부서진 것을 보면서는 "운이 나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엄청난 나뭇가지인 것을 확인하고 나니, 피해가 그 정도에 그친 것이 너무 감사했다. 

결국 이 나무는 며칠 후, 전문가들이 와서 베어냈다. 워낙 큰 나무여서 자르는데만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고, 줄타기 곡예를 해야 했다. 위쪽에서부터 조금씩 잘라내어 떨어진 나무 조각들은 잔디밭을 여기저기 깊게 파이게 했지만, 그래도 집이나 텃밭에는 손상을 주지 않았다.
 
곡예하듯이 나무를 자르는 중
 곡예하듯이 나무를 자르는 중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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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베어나고 나고 그루터기만 남았다. 그리고 베어낸 나무들이 떨어져서 땅이 패인 자국도 큼직하게 보인다
 나무를 베어나고 나고 그루터기만 남았다. 그리고 베어낸 나무들이 떨어져서 땅이 패인 자국도 큼직하게 보인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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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내고 나니 시야가 훌쩍 넓어졌다. 유독 이 나무 한 그루만 우리 마당 안으로 들어와서 우뚝 솟아 있었는데, 이제 그루터기만 남았다.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왔다. 작년엔 콩을 심어 나무를 타고 올라갔고, 올해는 나팔꽃을 심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루터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중심에서 살짝 비켜난 곳이 썩어 있었다. 결국은 죽게 될 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편안하게 보내준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저녁때 퇴근해서 온 남편과 함께 와인을 따라서 나무의 주변에 뿌려주었다.

술을 뿌리는 것이 남편에겐 생소한 일이었지만, 캐나다에 살아도 한국식으로 인사를 하고 싶었다. 남편도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했다. 물론 자르기 전에 해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갑작스레 나무 자른다고 들이닥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함께 해서 즐거웠다고, 편히 잠들라고 말해주면서 남편의 눈가에도 눈물이 비쳤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lachouette/ 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자연과함께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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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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