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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인도 사람들.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인도 사람들.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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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두 가지 질문. 가난 속을 살면서도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다는 듯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어딜까?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없음에도 남을 돕는 걸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이들은 어디에 주로 살까?

30여 개 나라를 여행한 경험에 한정시켜 말하자면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인도, 두 번째 질문에는 이란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도의 거리에선 찌푸린 사람을 보기 어렵다. 좌판을 펼치고 채소나 과일을 파는 상인들은 물론, 심지어 걸인까지도 미소와 멀어지지 않고 산다. 현세는 잠시잠깐이고 내세에 보다 나은 삶을 얻어낼 수 있다는 종교적 믿음 때문일까?

이란에선 영어로 소통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페르시아 말을 하지 못하는 여행자들도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크고 작은 도움이 필요할 때면 피붙이처럼 다가와 자기 일처럼 도와주려는 이란 사람들을 어느 도시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기에 그렇다.

선량하고 순수한 사람이 많은 인도와 이란은 많은 이들에게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왜냐? 여행이란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이기도 하기에.

확진자 증가에도 바이러스와의 공존 모색하는 국가 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는 여행자들의 길을 막아선 게 벌써 2년째다. 인도와 이란을 향하는 관광객들은 거의 제로(0)에 가깝게 대폭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나라의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어느 곳보다 심각한 상황을 거치고 있다. 흉악한 역병은 착한 사람들을 피해가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야기한 인도와 이란의 피해는 컸다.

현재 인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3400만 명에 이른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사망자 역시 45만 명에 가까운 숫자. 안타까운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태우는 화장터 사진과 아내의 시신을 자전거에 싣고 가다가 통곡하는 남편을 찍은 사진을 본 많은 이들이 인도로 눈길을 돌렸고, 연민의 마음을 전했다. 이제는 전력난까지 겪고 있다니 인도의 상황은 앞으로도 전망하기가 어렵다.

이란 역시 56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그중 12만 명은 죽음을 맞았다. 다소 폐쇄된 형태를 가진 국가라 피해 관련 뉴스가 많이 전해지진 않지만, 아직도 하루 확진자가 1만 명 이상씩 나오고 있어 사태가 안정화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그러나, 변화의 기미는 조금씩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지 21개월째. 많은 국가들이 정책 방향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무조건적인 바이러스 배척이 아닌 함께 공존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는 것.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인도로는 코로나19 백신 지원이 이어지고 있고, 이란은 19개월 만에 관광 목적의 비자 발급을 다시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두 나라로 가는 하늘길이 열리고, 예전처럼 인도와 이란의 넉넉한 인심과 환한 웃음을 보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며 과거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인도 타지마할에 모여든 관광객들.
 코로나19 사태 이전 인도 타지마할에 모여든 관광객들.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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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아픔 딛고 인도 특유의 천진한 미소 되찾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지배하기 한참 전 경험한 '28일간의 인도 여행'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꾸미지 않고 사심 없이 웃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난처한 상황에서도 인도 사람들은 "No problem(아무 문제 없어요)"이라며 크게 웃었다. 손을 내밀며 적선을 요구하는 이들까지도 "지금 내가 당신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해주고 있고, 그로 인해 당신은 다음 생에 부자로 태어날 것"이라고 미소 섞어 말했다.

그런 그들이 밉지 않았다. 국적과 결혼 여부, 여기에 아버지 이름과 월급까지 궁금해 하는 수많은 인도인들의 질문이 처음엔 곤혹스러웠으나 여행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웃으며 답해주는 여유가 생겼다.

태어난 곳에서 70년을 살며 마을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인도 할머니는 "여기서 먹고 사는 게 다 해결되는데 뭐 하러 다른 마을에 가느냐"며 천진하게 웃었다. 작은 거짓도 섞이지 않은 순정한 그 말에 마땅한 답변을 찾기가 어려웠다. 인도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그게 옳다 그르다를 판별하는 건 기자의 능력 밖에 있는 일.

1857년 무굴제국이 멸망한 후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인도는 1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영국의 정치·경제적 지배를 받았다. 독립된 건 1947년.

파키스탄, 중국, 네팔, 방글라데시 등과 국경을 마주한 인도는 많은 국민들이 사망하는 심각한 국경·종교 관련 분쟁을 숱하게 겪었다. 그럼에도 울음보다는 웃음에 익숙한 게 어떤 측면에선 놀랍기도 했다.

불교가 생겨난 인도는 국토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넓고, 인구도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이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

수도인 델리와 경제 발전이 눈부신 뭄바이는 인도의 대표적인 거대 도시이자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지역이다. 10명 중 8명의 국민이 힌두교도이기에 생사관(生死觀)이 한국인들과는 많이 다르다.

낯설지만 매력적인 여행지 인도에선 힌두사원과 이슬람교당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석굴 사원과 고대 문명의 흔적도 뚜렷하다. 이런 이유로 유럽과 북미 관광객들은 '아름답고 신비한 나라'로 인도를 인식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귀한 인도의 관광자원은 순박하고 세파에 찌들지 않은 사람들의 미소다. 그 웃음과 만날 날을 기다리는 여행자들이 적지 않다.

이란, 친절과 타자 향한 배려로 역병 이겨내길

이란과 터키 국경에 자리한 환상적 분위기의 고성(古城).
 이란과 터키 국경에 자리한 환상적 분위기의 고성(古城).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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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란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당당히 맞서 공동체의 자존을 지키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2500년 전 페르시아는 지구의 1/3을 지배한 대제국이었다.

이란 사람들은 강한 자존심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친절을 지니고 살아간다. 나는 그 친절을 직접 몸으로 겪었다.

출근길은 한국이나 이란이나 몹시 바쁘다. 페르시아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여행자가 내민 쪽지. 거기엔 찾아갈 숙소 이름과 주소가 삐뚤빼뚤 적혀 있었다. 그걸 받아든 테헤란의 직장인 한 명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숙소 앞까지 나를 데려다줬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베푼 조건 없는 친절.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둘은 1시간 넘게 동행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상대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을 뿐. 말로 전하지 못하는 고마움을 악수로 대신하며 서로의 이름을 알려줬던 이란 여행 첫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거칠고 교조적"이라는 선입견과 오해 속에서 살아가는 이란의 이슬람교도들. 그러나, 기자가 거기서 본 것은 폭력적인 편견이 아닌 다른 나라에선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였다. 아마도 그건 종교와는 무관한 인간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었을까?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이란은 큰 혼란과 수난을 겪었다. 확진자 수도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많다. 하지만, 수난 이후에도 이웃과 타자를 대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이타심(利他心)은 이란인을 특정 짓는 단어 중 하나이기에.
 
아름다운 푸른색 지붕이 인상적인 이란의 모스크.
 아름다운 푸른색 지붕이 인상적인 이란의 모스크.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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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터키, 이라크, 아제르바이잔과 인접한 이란은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서 동양과 서양을 잇는 문명의 다리 역할을 해왔다. 이슬람 시아파(이슬람교 2대 종파의 하나로 마호메트의 사위인 알리가 후계자가 되어 세운 교파)의 주도국인 이란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유국이다.

고전적인 아름다움 가득한 궁전과 단아한 사원이 여행자를 놀라게 하는 이스파한과 영화 <300>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황제의 별궁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이 내세우는 관광지다.

수백 년 전 흙벽돌로 만들어진 독특한 건물이 가득한 사막 도시 야즈드와 지구에서 가장 큰 호수 카스피해에서 즐기는 낭만과 맛있는 생선 요리 또한 빼놓으면 아쉬운 이란 여행의 즐거움.

저녁 무렵 조그만 시장 거리에서 갓 구운 따끈한 빵을 먹어보라며 내밀던 이란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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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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