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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주거권 보장과 주거 불평등 완화를 위해 활동하는 청년 당사자 연대, 민달팽이유니온이 2021년 10주년을 맞이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으로부터 야기된 각종 사회문제로부터 이행기의 청년들이 홀로 방치되던 현장을 드러내고 당사자들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 및 사회적 실험을 실천해왔다.

오랫동안 케케묵은 한국의 불평등 문제가 현 청년세대의 주거문제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정치와 행정은 좀처럼 변화하질 않았다. 그럼에도 민달팽이유니온을 비롯한 청년들은 현 청년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불평등과 차별적 현장을 드러내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청년주거운동 10년을 맞이한 2021년, 올해의 10월은 좀 더 특별하다. 매년 10월이 되면 전 세계 사람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세계 주거의 날을 기념한다. UN이 제정한 세계 주거의 날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캠페인이 열렸다. 2018년에는 광화문 일대에서 달팽이의 행진을 함께 하기도 했고, 2021년 올해에는 코로나 시국인 것을 감안해 거리두기 1인 시위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10월을 시작으로, 청년주거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속 발행하고 있다. LH전세임대 및 청년여성이 겪는 주거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눈 지난 회차에 이어, 이번에는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지수씨가 한 대학교 인근에서 자취하고 있는 1인 가구 이선우씨를 만났다. 1인 가구로 독립한 지 7년, 한 대학가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선우씨와 함께 독립할 때 고려했던 우선순위를 살펴보며, 그 과정에서 청년 개인이 직면한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주거 문제를 곱씹어봤다.
 
선우씨의 집구할 때 우선순위
1) "면적" - 움직일 수 있는가, 작업할 수 있는가
2) "단열" - 추위, 더위로부터 날 보호해주는 집? 그게 참 당연하지 않더라
3) "방음" - 옆 집 사람의 플레이리스트를 알고 싶지 않아
4) "채광" - 우선순위에서 밀린 체크리스트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원룸을 선택할 때 첫 번째로 '면적'을 고려했다. 그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실제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아주 길기 때문에 "어느 정도 평수가 있는 집"을 원했다. 그의 진로/직업 특성상, 그의 집은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기능할 수 있어야 했다. 누군가와 같이 살면 더 넓어질 순 있지만, 개인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조금 좁더라도 개인적인 공간에서 편하게 움직이고 작업하길 희망했다.

두 번째로는 "단열"을 확인했다. 선우씨의 '첫 독립'의 경험에서 비롯된 순위다. 그가 처음 독립하여 1인 가구로써 살았던 집은 단열이 거의 되지 않는 곳이었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집. 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집이었다. 비슷한 여건의 집에 거주해본 적 있는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또한 동질감을 느꼈다.

여름에는 집이 더 덥고, 선풍기를 틀어도 더운 바람이 순환하는 수준이어서 큰 효과도 없었던 위반건축물 3층집을 떠올렸다. 겨울에는 창문을 꽉 닫고 커튼을 달아두어도 벽으로부터 스며들어온 바람에 커튼이 살랑거리던 공간이었다. 선우씨에게도 단열이 되지 않는 집에서 살았던 것이 힘들었던 경험으로 남아 있었다.

세 번째로 고려하는 요소는 "방음"이었다. 집을 구할 때 방음이 잘 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몹시 어렵다. 하지만 정작 사는 동안 내내 거주자를 괴롭히는 것은 주택임대차계약 전에 제대로 확인조차 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층간·벽간 소음 문제인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선우씨는 방음이야말로 "사는 데에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면서 원룸, 오피스텔 등 1인 가구들이 주로 거주하게 되는 도시 내 주거공간들의 특징을 짚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건물은 각 집들이 복도형으로 놓여 있고 그 사이로 소음들이 오간다. 만약 방 쪼개기 위반건축물로 구획된 집이라면 더욱 방음에 취약해진다. 취약한 방음은 저층주거지, 특히 저렴한 1인용 주거공간이 밀집한 대학가일수록 더욱 흔한 일이 된다.

아침마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옆 집 사람 때문에 괴로운 사람, 게임할 때 마다 소리 지르는 옆 집 사람 때문에 시시때때로 짜증이 나는 사람, 숨소리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 어이없는 사람, 누가 몇 시에 몇 분 동안 성관계를 하는지 패턴을 알게 되는 것이 웃픈 사람 등 방음문제에 대한 해학적 썰풀기는 이미 흔한 대화가 된 지 오래다.

그는 면적, 단열, 방음 그리고 대출이 가능한 여건을 고려하여 지금 사는 집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포기한 것이 있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집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가 내려놓은 주거환경 조건은 "채광"이었다. 저층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옆 건물과의 간격이 충분하지 못해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알고 선택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충분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셈이다.

최저주거기준에선 찾아볼 수 없는 선우씨의 집구하기 체크리스트

선우씨는 앞으로도 집구하기 체크리스트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선우씨는 언제까지고 면적, 단열, 방음과 같은 요소들을 홀로 우선시 하고 매번 집을 구할 때마다 홀로 검토해야 하는 걸까? 선우씨와 비슷한 사람이 같은 하늘 아래 수없이 많을 텐데, 이 모든 것이 개인이 노력해서 단련할 일인가? 집다운 집을 사회가 함께 정의하고, 최소한의 여건을 보장하도록 강제할 수 없는가?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최저주거기준이 일정 정도 그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은 LH조차도 지을 수 없다. 하지만 그 기준이 몹시 협소한 것이 문제다. 아직까지 집에 대한 최저주거기준에는 협소한 면적을 다룰 뿐, 구조·안전·위생 등에 대한 기준은 전무하다. 따라서 선우씨의 우선순위 중 면적은 그나마 고려 대상이 되나, 단열과 방음은 최저주거기준 항목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최저주거기준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1명의 사람에게 부엌, 침실, 화장실 등을 모두 합쳐 최소한 14제곱미터는 주거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실제로 이를 지침으로 삼아 행복주택마저 14제곱미터를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지어진다. 공공임대 중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만큼 품질을 더 높이겠다고 장담하던 행복주택마저 사업성을 핑계로 최저주거기준을 적정주거기준처럼 활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2015년에 제정된 주거기본법에서는 최저주거기준을 넘어 유도주거기준을 만들도록 하고 있으나 해당 기준은 제정 이후로 단 한 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다.

더 넓은 면적, 더 쾌적한 주거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SNS에서도 1인이 소수의 반려동물과 함께 쾌적하게 살아가려면 10평 중후반대, 투룸 이상의 주거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쉽게 접한다. 동시에 그런 삶을 위해선 대단한 야망을 가져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자조적인 모습도 이어진다.
  
집다운 집, 우리만 이렇게 절실한가

적절한 주거기준에 대한 욕구가 보다 분명해지고 있는 가운데,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며 인구가 밀집된 도시를 중심으로 비주택 등 비적정 주거공간이 점차 늘어나고만 있다. 국가가 주택과 토지에 대한 투기를 근절시키지 못한 채로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지 오래,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며 다양한 형태의 규제 완화가 이루어져왔다.

민달팽이유니온이 설립되기 전인 2010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비거주용 건물 내 주택, 주택이외의 거처의 비율은 총 2.3% 였으나, 가장 최근 집계된 비율은 2019년 6.2%에 달한다. 주택으로 취급되지 않는 오피스텔 공급이 대폭 증가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집다운 집이 늘어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하다. 고시원과 같은 비주택에 대한 최저주거기준 적용 및 관리감독 역할이 부재하다는 점도 주거취약계층의 일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

다양한 측면에서 '공급'을 명분으로 한 다양한 규제 완화가 이어져 왔고, 부적절한 주거환경들이 방치되어 온 지 오래다. 필연적으로 더 좁고, 더 불안정한 주거공간들이 증가해왔던 사회적 배경을 두고 청년 개인이 더 나은 주거공간을 찾아다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선우씨와 같은 사람들이 개인의 노력으로 더 나은 집을 찾기 이전에, 충분히 집다운 집들이 주택임대차시장 안에 널리 펼쳐져 있어야 한다.

주택임대차시장은 일반적인 시장과 다르다. 시장 질서에만 모든 것을 맡겨 둔다면, 소위 닭장방이라 불리는 공간이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고, 존재 자체만으로 인권 침해를 행하는 집들이 양성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최저주거기준의 항목을 대폭 확장하고, 날로 다양해지고 있는 주거 유형들을 고려해 고시원 등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준도 마련해야 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P.S.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집구하기 체크리스트

제도 개선은 느리고, 우리의 일상은 빠르게 흘러간다. 우리의 주거권은 일상적으로 쉽게 침해받는다. 여기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민달팽이유니온이 움직인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청년 당사자와 함께 꾸준히 집구하기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왔다.

지난 2020년 대한민국 최초로 생긴 청년주거상담센터(서울시 청년주거상담센터. SH중앙주거복지센터의 사업 중 하나로, 2021년 12월까지 진행되는 사업으로 예정)를 용역사업으로 운영하면서 보다 널리 알릴 수 있는 집구하기 안내서 & 집구하기 체크리스트를 제작했다. 서울시청년주거상담센터 또는 민달팽이유니온을 통해 조회 및 다운로드 가능하며, 관련 1:1 상담 또한 신청 가능하다.

태그:#주거권, #청년주거, #집구하기, #체크리스트, #최저주거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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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을 외치며 청년 세입자 대상의 교육, 상담, 현장대응 그리고 제도개선을 위한 실천행동을 함께 합니다. 무법지대와 다름없는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세입자 청년들이 겪는 부당한 관행에 2013년부터 함께 대응해왔고, 보증금 먹튀 대응 센터 운영 및 법안 발의 등 세입자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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