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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에 <오징어 게임> 열풍이 불고 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상영 두 달 만에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대박을 친 드라마답게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 그리고 BTS와 함께 한국을 세계에 알린 K-콘텐츠 반열에 올라섰다.

말랑말랑한 제목과 달리 <오징어 게임>은 유년 시절 놀이를 소재로 한 잔혹한 생존 게임이다. 감독은 삶의 밑바닥에 떨어진 이들이 더는 갈데없는 막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섬뜩하게 풀어냈다.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관점에서 생존 게임을 해석하고 있다. 대부분은 살아남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제거하는 살벌한 '각자도생'을 주목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기댈 곳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못한 약자에게 손을 내미는 연대를 확인한다.

필자는 후자에 주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과 대사 역시 연대와 관련됐다. 드라마 속에서 주최 측은 구슬 게임에 앞서 두 명씩 짝 짓도록 지시한다. 참가자들은 앞선 게임을 통해 강자와 짝을 짓는 게 유리하다는 걸 안다. 당연히 노인과 여성은 외면 받았고,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오일남은 외톨이로 남는다. 이때 기훈은 구석에 있는 일남에게 다가가 "영감님, 저와 함께 하시죠"라며 손을 내민다.

고려장을 연상케 하는 상황에서 감동적이다. 한데 반전이 뒤따른다. 두 사람이 편이 되어 다른 상대를 이기는 게 아니라 자기 짝을 이겨야하는 게임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종종 직면한다. 가깝다고 믿었던 이들로부터 배신과 상처를 입는 게 현실이고 인생이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네 것 내 것 없이 같은 편을 먹는다"는 '깐부'라는 말은 이때 나온다. 일남은 기훈에게 "우리는 깐부"라며 동질감을 확인시킨다. 또 마지막 구슬을 기훈에게 주면서도 '깐부'를 입에 올린다. 게임 규칙에 따르면 구슬을 모두 잃은 일남은 죽게 된다. 거짓으로 구슬을 딴 기훈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울먹이지만 일남은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니꺼 내꺼가 없는 게야. 그동안 고마웠네. 다 괜찮을 거야"하며 어깨를 다독인다.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한 연대는 숭고하다. 불리한 줄 알면서도 외톨이가 된 일남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 기훈이나, 자신이 속임을 당한 걸 알면서도 마지막 구슬을 건네며 "우리는 깐부잖아"라며 다독이는 일남이나 모두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상대를 껴안았다.

드라마 속에서는 또 다른 연대와 희생이 나온다. 탈북자 출신 새벽과 아버지를 살해해 교도소에 있다 나온 지영이다. 지영은 누구도 믿지 않고 마음 주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 속에서 지영은 철저히 혼자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받은 지영에게 처음 손을 내민 사람은 새벽이다. 새벽 또한 자본주의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은 서로 처지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연민을 느낀다.

마지막 순간 지영은 게임에서 일부러 져준다. 화를 내는 새벽에게 지영은 담담하게 말한다. "넌 여기에서 나갈 이유가 있지만 나는 없어. 이유가 있는 사람이 나가는 게 맞잖아. 넌 꼭 살아서 나가. 그래서 엄마도 만나고, 동생도 찾고, 제주도도 가고. 강새벽! 고마워. 나랑 같이해줘서." 자기욕심만 챙기는 각자도생 사회에서 지영의 희생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지영의 슬픈 눈빛이 오래 오래 잊히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현실에서 일남과 지영이 보여준 희생은 흔하지 않기에 값지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이 마무리됐다. 예상대로 이재명 경기지사가 선출됐다. 하지만 대장동 택지개발 특혜 의혹 때문에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기엔 불안한 승리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이재명 지사 최측근으로 알려진 유동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이 배임과 뇌물죄로 구속되면서 수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재명 지사는 최대 치적이라고 자랑했지만 국민들은 사회적 통념을 넘어선 과도한 이익에 분노하고 있다. 초과 이익을 예상하면서도 이익을 몰아준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수상한 자금 흐름에다 또 법조 고위직들이 연루된 현실은 씁쓸하다. 이들을 연결하는 '천화동인(天火同人)'이란 법인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일을 도모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함께 일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깐부'와 '천화동인'은 뜻이 비슷하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 정신과 대장동 택지개발 의혹에서 드러난 '천화동인' 담합 비리는 판이하게 다르다. '깐부'는 숭고한 자기희생인 반면 '천화동인'은 끼리끼리 나눠먹는 추악한 이익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들은 '천화동인'이 끼리끼리 비정상적인 돈을 모아 큰일을 도모하려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 가담한 대장동 택지개발 의혹은 우리사회를 마비시키는 악취임은 분명해 보인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좋은 지도자를 선출하는 게 아닌 덜 나쁜 사람을 뽑는 선거로 전락한 현실을 목도하는 국민들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사정기관의 수사의지를 촉구할 수밖에 없다. 대장동 택지개발 의혹에서 비롯된 무력감을 그나마 해소하는 방법은 철저한 수사뿐이다. 국민들은 여당이 됐듯 야당이 됐든 관련된 인사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만이 무너진 공정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검찰과 경찰, 공수처, 감사원은 모든 의혹을 낱낱이 밝혀야할 의무가 있다.

국민들은 "화천대유는 누구겁니까"라고 묻고 있다. 우리사회는 "BBK는 누구겁니까"를 깔아뭉갠 결과 정의는 실종됐고 국민들은 뒤늦게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부끄러움을 경험한 바 있다. 이번에도 어물쩍 넘긴다면 사정기관 또한 '천화동인'이라는 추악한 밥그릇 공동체임 일원임을 분명히 해둔다. 일남이 말했듯 "다 괜찮을 거야"도 정의가 바로 설 때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을 계획입니다.


태그:#오징어 게임, #깐부 , #천화동인, #자기희생, #K-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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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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