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전교 1등의 성적을 유지하면서도 한 가수의 열성적인 팬으로 활동하던 때가 있었다. 부산에서 살지만 서울 공연을 밥 먹듯 찾아간 건 물론이고, 팬미팅이 있을 때마다 한복을 입고 등장해 결국 그 스타의 눈길을 받았던 한 학생은 훗날 자신의 과거에 분노하며 영화 하나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초청된 <성덕>은 그간 봐왔던 다큐멘터리와는 다소 결을 달리 한다. 감독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점에서 자전적 다큐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진지하고 무겁거나 때로 사회적 고발에 이르렀던 여러 다큐와 달리 분위기가 경쾌하면서 발랄하다.

말 그대로 '성공한 팬'을 뜻하는 영화 제목처럼 오세연 감독은 한때 같은 팬들의 부러움을 사던 존재였다. 좋아하던 스타가 그의 존재를 알고 눈길을 줬고, 함께 사진까지 찍었으며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하게 되기도 했다. 밤잠 설치며 혹은 그 스타의 노래를 들으며 그에게 편지를 쓰던 감독은 자신의 과거를 '흑역사'라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스타가 바로 성폭행 혐의로 대법원까지 가서 징역 판결을 확정받은 가수 정준영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의 우상이던 그는 그 사랑과 믿음을 저버리고 범죄자가 됐다. 남겨진 팬들의 심정은 어떨까. 영화는 그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해서 자신과 자신 주변 팬들에게 묻기 시작한다. 대체 왜 화가 나는 것이고, 왜 부끄러움은 팬들의 몫이어야 하는지 말이다. 

시작부터 영화와 전혀 상관 없지만 제목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사찰인 성덕사가 등장한다. 정준영의 팬, 승리의 팬, 강인의 팬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스타들의 팬을 하나하나 만나다가 혐의가 범죄로 확정이 됐음에도 팬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해 보려 하기도 한다. <성덕>은 그간 우리가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했던 팬덤의 생리를 아주 가까이에서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나아가 감독은 정준영의 성폭행 사실을 처음 보도한 기자까지 만나 출연시키기에 이른다. 스포츠서울 박효실 기자는 그 보도로 인해 숱한 팬덤의 공공연한 공격을 받아야 했다. 해당 보도 직후 30분 만에 혐의가 없다는 식의 보도와 해명 자료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보도는 사실이었고, 다른 팬과 마찬가지로 해당 기자를 저주했던 오세연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직접 기자를 출연시켜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 

감독의 모친이 직접 출연해 조민기의 팬임을 밝히는 대목에선 뭉클한 감정마저 든다. 앞서 물의를 일으킨 스타처럼 조민기 또한 큰 범죄를 저지른 혐의였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독의 모친은 "그게 가장 나쁜 짓"이라며 "죄 값을 받지 않고 자신이 선을 정해놓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며 분노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성덕>은 우선 점점 거대해지고 하나의 사회적 흐름으로 굳어져 가는 팬덤 문화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고 그 주체가 직접 위로를 건넨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확보한다. 한 출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 스타가 날 배신했어도, 팬이라는 존재는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존재라는 걸 알아달라"고 말이다. 그래서 또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라고 말이다.

여전히 범죄자들의 팬으로 남아 있는 팬들의 심정을 이해해 보고자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태극기 집회까지 찾아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태극기를 목에 두른 채 어르신들 틈에서 눈을 굴리던 감독과 촬영팀의 모습은 폭소를 자아내지만 동시에 팬덤의 또다른 속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막힌 은유로 다가온다.

구성이 투박하고 일부 화면이나 사운드가 고르진 않지만 기술적 약점을 차치하고서 적어도 <성덕>은 기성세대와 단절된 것처럼 보였던 새로운 세대가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문제작'임에는 틀림 없다.
성덕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정준영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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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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