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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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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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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생 한 명이, 한국인들은 '미안합니다'를 '비안합니다'로, '누구세요'를 '두구세요'로, '네'를 '데'라고 발음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 나는 평생 '비안합니다' '두구세요' '데'라고 발음한 적이 맹세코 없다고! 버럭 외쳤더니 학생이 자기만 그렇게 듣는 게 아니라 유튜브에 비슷한 질문이 많이 올라와 있다고 했다. 긴가민가 검색해봤더니 많은 유럽 사람들이 한국인의 발음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시험삼아 '비안합니다'의 시작을 유성음 b처럼 발음해보았다. 한국어에서는 어두의 ㅂ가 무성음이기 때문에 신경써서 영어 b처럼 발음해야 한다. 그랬더니 진짜 내 귀에도 '미안합니다'와 별 차이가 없었다. 또 '두구세요' 어두 역시 유성음 d처럼 발음해 보았더니, '누구세요'처럼 들렸다. 학생의 말은 정말이었다.

외국인들이 공을 콩으로 듣고 부산을 푸산으로 듣는 건 알고 있었지만, ㅁ->ㅂ, ㄴ->ㄷ은 몰랐다. 그래서 이 현상의 원인을 찾아나섰다. 탐정 출동!

1705년 암스테르담의 시장이었던 니콜라스 비츤(Nicolaas Witsen)은 당대의 러시아 북부와 아시아에 대해 모을 수 있는 자료들을 전부 수집, 편찬하여 130개의 삽화가 들어간 1천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의 북동타타르지(Noord en Oost Tartaryen)라는 해설서를 출간하여 표트르 대제에게 헌정한다.

이 책에 한반도의 언어를 채록한 대목도 있는데, '네(4)'를 'Deuye', 넉 사(四)의 '넉'을 'Doc', '눈'을 'Doen'이라고 받아 적고 있다. 당시 네덜란드인의 귀에도 한국인이 '네'라고 말하면 '데' 비슷하게 들린 것이었다. 한편, '남(南)'은 'Nam', '나무'는 'Nammo', '나물'은 'Nammer'로 받아 적었다.

이로부터 1세기 남짓이 지난 뒤인 1816년(순조 16년)에 충청도에 기상 악화로 표류하였다며 정박하게 해달라는 영국의 배가 나타났다. 사실 이 배는 단순한 표류 선박이 아니라 조선 서해안을 탐사하고 측량하러 온 것이었다.

영국 해군 장교 바실 홀(Basil Hall)은 약 열흘 정도 조선에 머물면서 꼼꼼한 기록을 남겨 1818년 '조선 서해안 탐사기(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조선의 서해안 주민들에게 전해들은 단어들'도 채록하였는데 '물'을 'Bool'로, '머리'를 'Bodee'로, '눈'을 'Doon'으로 받아적었다. 19세기 영국인의 귀에도 ㅁ은 B처럼, ㄴ은 D처럼 들린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300년 전부터 유럽인들의 귀에는 한국인들의 '미안'이 'Bian'으로, '네'가 'De'로 들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탈비음화? 그게 뭔데?

감기에 걸려서 코가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언니' '엄마'를 발음하면 '얻디' '업바'처럼 발음된다. 비강으로 나가야 할 공기 흐름이 막히면 비음(콧소리가 나는 ㄴ, ㅁ, ㅇ)을 낼 수 없고 입 안에서만 소리가 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대체로 단어 처음의 초성에 나오는 ㄴ, ㅁ은 콧소리를 매우 약하게 낸다. 초성에서는 늘 코막힌 소리를 내는 셈이다. ㅇ은 아예 초성으로 오지도 않는다. 반면 종성의 ㄴ, ㅁ, ㅇ은 콧소리를 명확히 낸다. '난'에서 초성의 ㄴ과 종성의 ㄴ을 다르게 발음하고 '맘'에서도 초성의 ㅁ과 종성의 ㅁ도 다르게 발음하는 것이다.

이렇게 ㄴ, ㅁ의 콧소리가 매우 약해진 결과 ㄴ은 ㄷ과 비슷해지고 ㅁ은 ㅂ과 비슷해진다. 이 현상을 탈비음화(脫鼻音化, denasalization)이라고 한다. 유튜버 유럽인들이 했던 질문의 답이 이미 학술 용어로 존재했다. 흥미롭게도 한국인들은 자기들이 초성의 ㄴ, ㅁ을 비음으로 제대로 발음한다고 착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1975년에 외국인 언어학자에 의해 발표되었다. 내가 학생에게 버럭 했던 것마저 역사와 전통이 유구했고 이미 학술적으로 연구도 되어 있었다!

지역별 차이도 있어서, 경상도 지역은 경기도 지역에 비해 ㄴ, ㅁ의 콧소리를 더 명확히 발음한다. 또 입이 많이 열려 콧소리도 나가기 쉬운 '아' '어'에서는 콧소리가 명확하게 나는 반면, 입을 좁게 벌려 연구개가 하강, 개방되지 않는 '우' '으' '이'에서는 탈비음화가 심해진다. 300년 전 유럽인의 귀에 '남'은 Nam이라고 비음이 제대로 들린 반면 '눈'은 Doen, Doon으로 탈비음화되어 들린 이유가 여기 있었다.

요새 화제인 SNL의 '인턴기자' 캐릭터가 묘사하는 말투도 변별적인 자음과 모음들을 잘 구분하지 않고 발음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연구개를 열고 입안 공간을 확장시켜야 명확하게 발음할 수 있는데 입안 공간을 납작하게 유지시켜 답답한 발성이 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발성은 탈비음화의 '종특'이기도 하다. '인턴기자'의 발음은 한국인 발음의 특징을 좀 더 극대화시켜서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한국어의 자음은 유무성 대립이 없고 얼마나 세게 발음하는지로 구분된다. 초성은 좀더 '센' 자음으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한국인이 '부산'이라고 말하면 외국인은 '푸산'이라고 받아적고 '동대구'라고 말하면 '통대구'라고 받아적고 '공'이라고 말하면 '콩'이라고 받아적는다. 탈비음화도 이런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탈비음화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편하게 발음하려는 습관이라고 할 수 있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탈비음화 발음을 서로 잘 알아듣는다. 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선명한 발음을 하려면 ㄴ, ㅁ의 콧소리를 정확히 내주는 게 좋다. 아나운서들이나 성우들의 발음을 유심히 살펴보자. 이들의 비음 발음은 콧소리가 제대로 난다. 외국인들에게, 그리고 이왕이면 한국인들에게도 또렷하게 들리게 하려면 ㄴ, ㅁ의 비음을 잘 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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