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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두 곳과 고등학교 두 곳, 장애인이 다니는 특수학교 한 곳이 밀집되어 있는 등굣길에 도배하다시피 차별금지법 반대 현수막을 내걸어두었다.
 중학교 두 곳과 고등학교 두 곳, 장애인이 다니는 특수학교 한 곳이 밀집되어 있는 등굣길에 도배하다시피 차별금지법 반대 현수막을 내걸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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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기사 학교 앞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현수막... 이게 말이 됩니까?에서 이어집니다)

의지만 있다면 그리 번거로운 일도 아닐 텐데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교육청과 지자체에 신고했는데도 등굣길 현수막은 열흘도 넘게 그대로 내걸려 있다. 현수막 철거를 담당하는 지자체 시설 관리팀은 전가의 보도처럼 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만 댔다.

심지어 해당 공무원은 답변 대신 엉뚱한 질문을 했다. 등굣길 아이들에게 혐오를 조장하는 현수막을 철거해달라고 했더니, 대뜸 걸려 있는 곳이 사유지 아니냐고 물었다. 사유지일 경우 임의 철거가 어렵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시선이 사유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일까.

그들에겐 아이들이 등하교 때마다 접할 혐오 표현보다 철거 관련 규정이 더 중요하다. 그들에게 '불법 현수막'이란 내용의 불법성보다 게시대가 아닌 곳에 걸려 있거나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신고된 걸 의미할 뿐이다. 특별 단속 기간이 아니면, 신고 없이 철거 없다.

현수막을 내건 곳이 대형 교회라는 사실이 그들을 멈칫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언제부턴가 종교 관련 시설은 지자체는커녕 중앙 정부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이 됐다. 코로나 와중에서 정부의 강력한 권고에도 상당수의 교회에서는 대면 예배와 집회를 강행했다.

유력 정치인들조차 교회의 심기를 건드릴까 노심초사하는데, 하물며 일개 지자체 앞에선 '갑'이라 해도 무방하다. 등록된 신자 수가 많을수록 위세가 커지고, 지역에서는 여론을 주도하는 힘을 갖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가 된 현수막들은 대형 교회 주변에 주로 내걸렸다.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개신교단의 사립학교도 막강하긴 마찬가지다. 국공립학교와는 달리 사립학교는 교육청의 지시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콧방귀를 뀌는 일이 다반사다. 사립학교법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말할 것도 없고 초중등교육법시행령도 무력화시키는 '절대 반지'다.

이태 전 교육과정의 파행적 운영과 성적 조작 의혹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한 사립학교의 사례를 통해 다시금 사립학교법의 위력을 실감했다. 사건에 연루된 교사들은 교육청의 징계에도 버젓이 교장과 교감직을 수행하고 있다. 인사권이 학교법인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감의 승인이 나지 않아 법적으로는 교장 대리와 교감 대리다.

교회와 학교는 대체 뭐가 문제냐는 식이고, 교육청과 지자체는 별다른 의지가 없어 보인다. 차일피일 미뤄지다 보면, 아이들은 현수막에 적힌 내용을 가랑비에 옷 젖듯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혐오는 인권의 가치를 짓밟는다.

보다못해 직접 나섰다
 
'남자 며느리와 여자 사위'는 개신교단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반대 논리이자 대표적인 혐오 표현이다.
 "남자 며느리와 여자 사위"는 개신교단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반대 논리이자 대표적인 혐오 표현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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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다급해졌다. 아이들의 가슴에 혐오를 심어줄 수는 없는 법, 서둘러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우선, 수업 시간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의 내용과 회기 때마다 폐기된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개신교에서 왜 그토록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인권이 존중받는 정의로운 사회라면 굳이 차별금지법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 온갖 이유로 차별하는 풍토가 만연돼있는 탓이다. 특히 성 소수자의 경우, 커밍아웃이 금기시되고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할 만큼 고통과 차별이 심각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바다.

한때 교실에선 '게이'라는 게 조롱을 넘어 욕설처럼 쓰이기도 했다. 옷차림이 바뀌고, 변성기에 목소리가 변하고, 심지어 머리모양이 조금만 달라져도 무람없이 "게이냐"고 놀려댔다. 지금도 '게이'로 놀림 받으면 누구든 순간 발끈할 정도로 아이들 사이에 성소수자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커밍아웃은커녕 스스로 성소수자임을 원망하고 자학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학교마다 성소수자인 아이는 '당연히' 있다. 친구들 앞에서 선선히 드러내지는 않지만, 상담실이나 신뢰하는 교사를 찾아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가 드물지만 존재한다.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곳이라면 더는 학교라고 할 수 없다.

하도 자주 걸어선지 담당자의 전화번호가 머리에 박혀버렸다. 오늘도 지자체에 철거를 요청했더니 다시 또 인원 부족 타령이다. 조만간 현장에 가보겠다면서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들은 마치 자동응답기처럼 말했고, 나 역시 자동응답기처럼 주소를 읊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인가 싶어 화가 치밀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자구책을 마련했다. 등굣길에 도배되다시피 한 현수막 옆에 그 내용을 반박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로 마음먹었다. 이튿날 아침 부리나케 업체에 전화를 걸어 제작을 의뢰했다. 개인적인 대응인 만큼 자비를 들였고 내 이름도 밝히기로 했다.

현수막을 설치하러 갔더니 문제의 현수막 몇 개가 보이지 않았다.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가 한 가족' 등의 혐오 표현을 적은 것들만 슬며시 철거한 것이다. 분명 지자체에서 손 쓴 것도 아니고, 교육청이 개입한 것도 아니다. 짐작하건대, 며칠 전에 작성한 내 기사를 본 교회 측에서 조치한 듯하다.

몇 가지 혐오 표현을 지웠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게 아니다. 성 소수자 아이들을 마치 죄인인 양 내몰고 동성애를 질병으로 여기는 왜곡된 인식은 여전히 강고하다. 학교 입구의 현수막엔 지금도 '동성애 독재법'이나 '동성애 옹호 교육 의무화' 따위의 황당한 내용이 버젓하다.

'혐오 반대' 현수막 걸며 들은 말
 
교회가 마주 보이는 도로변에 성소수자 혐오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설치하는 동안 여러 사람이 다가와 험담을 쏟아냈다.
 교회가 마주 보이는 도로변에 성소수자 혐오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설치하는 동안 여러 사람이 다가와 험담을 쏟아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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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수자로 태어난 게 죄입니까? 교회는 혐오를 조장하지 마십시오. 성 소수자도 우리의 형제, 자매, 이웃입니다."

저들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을 그대로 적었다. 그리고 해당 교회가 마주 보이는 등굣길 도로변에 내걸었다. 현수막의 크기는 비록 작아도, 등하굣길 아이들과 교회를 드나드는 신자들이 보게 될 것이다. 움츠린 성 소수자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주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홀로 끙끙대며 끈을 묶고 있는데, 몇몇 행인들이 다가와 한마디씩 건넸다. 지지나 응원은 없고, 욕설에 가까운 험담 일색이었다.

"당신 '호모'예요?"
"참 이상한 아저씨네."
"교회에 허락을 받고 설치하는 겁니까?"
"순진한 아이들 부추기지 마세요."
"정상적으로 생각하세요."


혼잣말처럼 던지는 말에 일일이 대꾸할 수는 없었다. 설령 응대한다 해도 그들과 대화가 될 리 만무했다. 괜히 대꾸했다가 다툼으로 번질 수도 있다. 자신의 말이 혐오 발언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을 바라는 건 연목구어일지도 모른다.

오로지 교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교회법을 사회 규범보다 우위에 두는 그들에게 나는 '비정상'이고 '병자'이며 '나쁜' 교사다. 그들이 즐겨 쓰는 용어로는 '사탄'인 셈이다. 교회든 학교든 그렇게 여기는 이들에게 배우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러운 건 나만의 기우일까.

사족. 현수막을 의뢰하기 직전에 고 변희수 하사를 강제 전역시킨 국방부의 처분이 불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시지탄이라도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생각에 부러 현수막에 덧붙였다. 그런데, 그 판결을 두고 이렇게 단언하는 이도 있었다. 화가 나기보다 슬펐다.

"법원에까지 동성애자가 판치고 있으니 말세야 말세. 차별금지법까지 통과되면 난리가 나겠지. 그나저나 군대를 저렇게 만들어놓고서 북한이 쳐들어오면 과연 막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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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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