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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김 의원은 조성은씨와의 통화 내용이 공개된 데 대해 "계속 얘기했듯이 처음부터 그런 (통화) 사실 자체에 대해 부인한 게 아니"라며 "기억을 못한다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김 의원은 조성은씨와의 통화 내용이 공개된 데 대해 "계속 얘기했듯이 처음부터 그런 (통화) 사실 자체에 대해 부인한 게 아니"라며 "기억을 못한다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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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통화했던 내역 자체도 기억이 잘 안 나기 때문에, 저도 가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 조성은씨간 통화내용을 복구했지만, 김 의원 여전히 "기억이 안 난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거짓인지 사실인지 본인 외에 알 길은 없다. 다만 이 통화는 불과 약 1년 6월 전에 이뤄졌다. 여당이 김 의원의 주장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다. 

고발사주 의혹과 대장동 의혹이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 버티고 서 있다. 대선 정국을 이끄는 것이 두 유력 주자가 아니라 두 의혹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렬한 무게감을 선보이고 있다. 

국민적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런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기 쉬운 인물 캐릭터가 있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반복하는 유형이다. '안 했다'고 하지 않고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이런 인물들은 결국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끝까지 "기억 안난다"던 노태우, 결국 징역행 

좀 전에 있었던 일도 금세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의 기억력이지만, 아주 오래 전의 일인데도 선명히 떠올릴 때가 있는 것 역시 인간의 기억력이다.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렸거나 비중이 높은 인물과 관련됐거나 자연재해로 인한 일일 경우에는, 일부러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선명히 기억될 때가 있다. 일부러 '엔터키'를 치지 않아도 자동으로 엔터키가 눌러져 머릿속에 저절로 저장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처럼 중요한 사안이라 기억나는 게 마땅한데도 '기억이 안 난다'로 일관하는 캐릭터가 대형 의혹 사건에 곧잘 등장한다. 퇴임 2년 뒤인 1995년 10월 19일 민주당 박계동 의원의 대정부 질의로 인해 비자금 4천억의 존재가 드러난 노태우 전 대통령도 그런 유형의 인물이었다.

근 30년 전의 화폐 가치로 4천억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느끼는 이 비자금의 규모는 오늘날보다 훨씬 대단했다. 지금의 국가정보원장인 박지원(당시 만 53세) 국민회의 대변인의 논평에서 그 시절 느낌을 짐작할 수 있다.
 
"박지원 국민회의 대변인은 24일 논평을 내고 '국민은 이미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박탈했다'며 소환 조사를 촉구한 뒤 '4천억 원은 단군할아버지가 지금까지 살면서 매년 1억 원씩을 저축해야 하는 돈'이라고 강조."-1995년 10월 25일자 <경향신문> '1억씩 4천년 모을 돈.'
 
단군할아버지도 모으기 힘든 돈을 단 몇 년 새에 모았다. 그것도, 전문적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통령직을 지낸 사람이었다. 돈을 모으기 힘든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만한 돈을 모았다면, 웬만한 수준 이상의 집중력을 투입했으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전두환과 달리, 노태우는 불법자금을 측근들과 덜 공유했다. 그처럼 애착이 남달랐으므로, 집중력도 높았으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들이었다.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재벌 기업들과의 유착 의혹을 받게 된 노태우는 11월 1일 대검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게 됐다. 11층 특수조사실에 포진한 수사진이 50대 그룹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돈을 줬습니까?'라고 물을 때마다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일이 답변했다. 중소기업도 아니고 50대 그룹이 비자금을 줬는지 안 줬는지는 명확히 기억할 수 있는 일인데도 그는 그렇게 답변했던 것이다. 그해 11월 3일자 <한겨레> '노씨 80분 걸쳐 조서 확인'은 이렇게 보도했다.
 
"수사진이 50대 재벌의 명단을 내밀며 '○○ 기업이 돈을 주었습니까', '○○ 기업이 돈을 주었습니까'라며 순차적으로 50번을 물어나가자, 노씨는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수사진은 함께 식사하는 시간에도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거짓말을 해서야 되겠습니까?"라며 설득 작업을 계속했다. 노태우는 이때는 '기억이 안 난다'고 답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식사만 할 뿐이었다.

식사 뒤에 수사진이 새로운 자료를 들이대며 계속해서 추궁했지만, 노태우의 태도는 일관성을 유지했다. 화가 난 수사진이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하지 않고 이따금 고함을 치는 단계에 이르게 되자, 노태우의 태도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위 기사는 수사진이 고성을 치면 노태우가 "현기증이 난다"며 어지럼증을 호소했다고 보도한다.

시간이 흘러 밤 12시가 지나자, 중앙수사부장인 안강민 검사가 11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왜 말씀을 안 하십니까?"라며 답답함을 털어놨다. 그러자 노태우의 입에서 새로운 답변이 나왔다. "기업을 생각해서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이었다. 기업들을 생각해서 '기억이 안 난다'라고 답변했다는 것이었다.

위 기사는 "그렇게 기업을 생각하시는 분이 기업들로부터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고 검찰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결국 노태우는 11월 16일 구속되고 12월 5일 뇌물죄로 기소된 뒤, 대법원 재판에서 징역형과 함께 추징금 2688억 원을 선고받았다.

정태수의 선택적 기억력

1995년에 노태우의 '기억이 안 난다' 때문에 분통을 터뜨렸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2년 뒤에 한 술 더 뜨는 인물의 등장을 접하게 된다. '건국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IMF 사태가 터진 그해에, 국민들은 '한보 사태'의 주인공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을 만나게 된다.

한국인들이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건국 이후 최대'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단군 고조선 건국 이후를 가리킬 때도 많다. 그런 이중적 의미를 갖는 '건국 이후 최대 국난'이 발생한 1997년에, '건국 이후'라는 타이틀이 붙은 또 다른 사건이 바로 한보 사태다.

한보그룹 부도 사태는 '건국 이후 최대 금융 스캔들'(1997.2.15 매일경제 5면), '건국 이후 최대의 부도 사태'(동년 10.21 매일경제 7면), '건국 이후 최대 비리 사건'(동년 3.24 경향신문 1면) 등으로 불린 메가톤급 사건이었다.

권력형 금융부정과 특혜 대출비리로 빚어진 이 사건의 부실대출 규모는 24년 전 화폐 가치로 5조7000억여 원이었다. 거명된 정계 인사들도 웬만한 사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임기 말년에 접어든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및 김종필 자민련 총재도 거론되고,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나 김덕룡·김상현·김용환 같은 거물급 정치인들도 거명됐다. 이 외에 금융계나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정태수 리스트'가 유행어가 되고 국회 한보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까지 등장하게 만든 이 사건의 파장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보철강 제철소가 있었던 충청남도 당진시(당시에는 당진군)에서는 부도의 여파로 인해 171개의 업체나 거래처가 타격을 받았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한국의 대외신용도를 떨어트리고 IMF 사태를 초래하는 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이래서 국민적 분노가 클 수밖에 없는 이 사건에서 국민들을 한층 더 들끓게 만든 것은 정태수 회장의 답변 태도였다. 그 정도 큰일을 벌이려면 집중력을 많이 투입했을 텐데도 그는 '기억이 안 난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 부도로부터 일주일 뒤에 있었던 검찰 수사 풍경을 그해 2월 1일자 <조선일보> 3면은 이렇게 묘사했다.
 
"신문을 맡은 수사팀이 그동안의 수사 결과나 정보를 근거로 로비 의혹에 대해 추궁해 나가자 그는 아예 눈을 감았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가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간단히 말할 뿐이었다는 것. 검찰 쪽이 자료를 들이대며 언성이 높아질라치면 '그럼 수사해서 밝히면 될 거 아뇨'라고 맞받기도 했다고 한다."
 
김대중·김영삼·김종필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고 답변하면, 그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시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정태수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불똥이 튈 게 뻔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철저하게 '그런 일 없다', '그렇지 않다'고 명확히 답변했다. '3김'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철벽 부인'을 했던 것이다.

그가 '기억이 안 난다'고 답변하는 경우는 3김보다 위상이 낮은 인물들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그해 4월 9일자 <조선일보> 기사 '정태수의 5가지 부인법'은 3김과 관련된 위와 같은 답변 태도를 설명한 뒤 "반면, 김덕룡·김상현·김용환 의원 등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고 몇 번 버티다가는 시인했다가 또다시 부인했다"고 말한다.

김영삼 최측근 김덕룡, 김대중 최측근 김상현, 김종필 최측근 김용환과 관련해서는 '아니다', '없다'고 하지 않고, '기억이 안 난다'고 답변했던 것이다.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었던 셈이다.

3김 정치가 본격화된 1987년 이후에 3김의 최측근들이 가졌을 정치적 비중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 거물급들에게 돈을 줬는지 안 줬는지는 당연히 기억이 나야 마땅한 일이다. 재계 14위의 한보그룹을 이끄는 인물이 그런 거물들에게 돈을 줬는지 안 줬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이었다. 초대형 사고를 친 기업 총수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그런 답변 태도로 일관했으니,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들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태수도 결국에는 벽에 부딪혔다. 시인하지 않고는 배기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득이 답변을 바꿔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선보였다. 그해 4월 8일자 <동아일보> '정가 정태수 리스트 태풍경보'는 전날의 국회 청문회를 이렇게 보도했다.
 
"정태수씨는 이날 신한국당 맹형규 의원의 신문에서 신한국당 김덕룡, 국민회의 김상현, 자민련 김용환 의원의 이름을 대며 '정치자금을 제공했는지'를 캐묻자 '회사 직원이 준 것으로 알고 있지만,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이어 정씨는 이들 정치인들에게 준 돈의 성격을 묻자 '정치인에게 줬으니 정치자금 아니냐'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정태수 리스트에 올라 있는 주요 정치인들의 이름이 돈을 준 장본인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정치자금 제공을 시인하는 그 순간에도 '직원이 준 것으로 알고 있지만, 기억이 안 난다'는 앞뒤 안 맞는 답변을 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정태수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6년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가 또 다른 재판을 받던 도중에 해외로 도피했다. 검찰은 그가 2018년 12월 페루 북쪽 에콰도르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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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 제15회 임종국상.. 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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