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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영원한 현재의 싸움터이다.
거기에서는 과거와 미래가 끝없이 싸우고 있다.
- 로망 롤랑/인생은 전장(戰場) 
  
대선 정국을 맞이해서 참으로 말들이 많다. 매일 매시간이 '말의 전쟁'이다. 사실과 팩트가 도외시된 가짜뉴스와 흑색선전, 인신공격이 난무한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은 '정치의 퇴행'을 불러올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마저 느끼게 한다. 

각 정당과 캠프의 선거 전략, 득표 전술은 오로지 '말싸움'만을 연구하는 모양이다.
'고발사주(告發使嗾)', '화천대유(火天大有)', '천화동인(天火同人)' 등 무협지나 주역(周易) 책에서나 나올 듯한 말들이 난무한다.

이렇게 '말의 전쟁'이 벌어지는 진짜 이유는 뭘까? SNS에 길들여진 대중들의 확증편향 경향이 심화되어 갈라치기와 선동에 능한 정치인들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고사를 통해서 '말싸움'이 아닌 믿음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길을 살펴보자.
  
세 사람이 만들어낸 호랑이

삼인성호(三人成虎). 전국책 위책(魏策)에는 위나라 혜왕과 그의 대신 방총이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전국 시대, 위나라 혜왕 때의 일이다.

태자와 중신 방총이 불모로서 조나라의 도읍 한단으로 가게 되었다.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방총이 자기가 없는 사이에 자신을 중상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위 혜왕에게 몇 마디 아뢰게 된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전하께서는 믿으시겠나이까?"
"누가 그런 말을 믿겠소."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어찌하시겠나이까?"
"그땐 아무래도 반신반의 하게 되겠지."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그땐 믿으시겠나이까?"
"그렇게 되면 믿지 않을 수가 없겠지."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三人言而成虎). 한단은 저잣거리보다 몇 만 배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신이 떠난 뒤 신에 대해서 참언(讒言)을 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이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시오소서."
그러자 왕은 자신 있게 말했다.
"염려 마시오. 누가 무슨 말을 하던 과인은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방총이 한단으로 떠나자마자 혜왕에게 방총을 모함하는 자가 있었다. 수년 후, 볼모에서 풀려난 태자는 귀국했지만 혜왕에게 의심을 받은 방총은 끝내 귀국할 수 없었다.
  
굳은 신념도 세론에는 흔들리기 싶다

전국책에는 또 다른 유명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공자의 제자 중에 안회와 더불어 가장 총애 받던 제자 증삼(曾參: 훗날의 증자 曾子)은 알아주는 효자로 품행과 덕이 아주 높았다. 그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동명이인의 한 사나이가 살인사건을 일으켰다. 그것을 잘못 알고 증삼의 어머니에게 알리러 온 자가 있었다. 그때 증삼의 어머니는 베를 짜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남을 해칠 아이가 아닙니다."
어머니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얼마 후,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태연하게 베를 짜기만 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증삼이가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다.
세 사람이 연달아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 고 하자 어머니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베틀 북을 내던지고 밖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훗날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증삼의 어짐으로 그 어머니의 믿음이 깊었으나, 세 사람이 의심하자 어머니도 믿지 못했다."

그래서 아닌 거짓말을 퍼뜨려 남을 모해하는 것을 두고 증삼살인(曾參殺人)이라고 하는 말이 생겨났다. 예로부터 '입이 여럿이면 쇠도 녹인다'는 말이 있듯이 유언비어는 실로 무서운 것이다.

지난날의 맹서를 잊으셨단 말입니까?

전국시대 진나라 혜왕은 감무(甘茂)에게 한나라를 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감무는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는 천리 멀리 떨어져 있어 저로서는 그런 무거운 임무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혜왕은 지금까지 용감하게 잘 싸워온 감무가 왜 주저하는 것인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그에게 솔직히 말해보라고 했다. 그때 감무는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 다음 그는 말했다.

"신은 증삼만큼 잘나지 못했고, 왕께서도 증삼 어머니만큼 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을 의심하는 자들이 어찌 세 사람뿐이겠습니까? 신은 왕께서 베틀 북을 내던질까 두렵습니다."

그러자 혜왕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절대 다른 자의 참언을 믿지 않을 것을 그대에게 맹서라도 하겠소."

그리하여 두 사람은 믿음으로 맹서했다.

감무가 선양을 공격하고 있을 때, 병력 부족으로 5개월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몇몇 대신들이 혜왕에게 감무를 헐뜯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감무가 딴 생각을 품고 있다고 헐뜯는 자도 있었다.

혜왕은 소인배들의 말에 혹해서 약속을 잊어버리고 감무를 소환했다. 감무는 즉시 회군하지 않고 혜왕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지난날의 맹서를 잊으셨단 말입니까?"

편지에는 이렇게 한 줄만 적혀 있었다. 편지를 받아본 혜왕은 즉시 정신을 차리고 대대적인 구원병을 보냈고, 선양성은 이내 함락되었다.
  
도장을 내던진 현령

사람의 말이 능히 쇠를 녹인다면, 그 말이란 요즘 말로는 여론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 녹임의 대상이 되는 쇠붙이는 필경 어떤 잘못을 저지르거나 부정한 짓거리를 한 죄인일 것이다.

군주나 나랏일을 보는 관리는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을 제대로 다스리는 것인 본연의 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왕왕 그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한비자 내저설좌하(外儲說左下)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시대 위나라 문후 시절, 업이라는 현에 서문표(西門豹)라는 현령이 있었다. 그는 청렴결백하고, 사리사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위 문후의 측근들에게 뇌물을 갖다 바치지 않았고, 아부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위 문후가 서문표에 관해 듣는 이야기라곤 한결같이 나쁜 이야기뿐이었다.

1년 뒤, 서문표가 도성으로 올라와 업무 보고를 할 때 문후는 그의 관인을 거두어 버렸다. 그 까닭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서문표는 위 문후에게 다시 1년만 더 일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위 문후는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다시 업 지방으로 돌아온 서문표는 갖가지 명목으로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등 백성들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을 위 문후의 측근들에게 잽싸게 갖다 바쳤다.

이렇게 하길 1년, 서문표가 다시 도성으로 올라와 업무 보고를 하자 위 문후는 몸소 자리에서 내려와 아주 다정스럽게 그를 맞이했다. 서문표는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위 문후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날 신은 폐하를 위해 업을 다스렸는데 폐하는 신의 도장을 빼앗아갔습니다. 지금 신이 폐하의 좌우 측근들을 위해 업을 다스렸더니 폐하는 신에게 절을 합니다. 이러니 신을 어떻게 백성을 다스리겠습니까?"

그러면서 서문표는 도장을 내던졌다. 아무리 말려도 그는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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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문학과 창작 소설 당선 2017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아님슈타인의 시>, <모르는 곳으로>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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