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9일 충남 노동권익센터에서는 '일제강점기 충남지역 강제징용 노동자 피해 현황과 노동자 투쟁'을 주제로한 포럼이 열렸다.
 9일 충남 노동권익센터에서는 "일제강점기 충남지역 강제징용 노동자 피해 현황과 노동자 투쟁"을 주제로한 포럼이 열렸다.
ⓒ 이재환

관련사진보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거부투쟁과 노동쟁의 등을 항일민족운동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한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충남에서만 9000여 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국가 총동원체제로 개편하고 조선에서 강제수탈과 징용을 본격화했다.

8일 충남 내포신도시 충남노동권익센터 대회의실에서는 '일제 강점기 충남지역 강제 징용 노동자 피해현황과 노동자 투쟁'을 주제로 한 공개 발표 및 토론이 진행됐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노영종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노 연구관)은 "충남지역은 곡창지대로서 일찍이 강제모집 단계부터 조선인 인력동원이 시작됐다"며 국가 기록원에 소장된 강제 동원 명부 등을 인용해 '충남지역의 강제동원 현황'을 발표했다.

실제로 충남은 예당평야와 같은 곡창지대가 많아 일제의 '강제노동 동원'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노 연구관에 따르면, 일제가 동원한 조선인은 780만4376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 충남은 9823명이 '강제노동(징용)'에 동원된 것으로 집계됐다. 공주 1225명, 서산 966명, 부여 934명, 당진 815명, 아산 834명, 논산 685명, 천안 663명, 대전 629명, 연기 626명, 홍성 520명 순이다.

노 연구관은 "조선인들이 일제의 강제 동원에 순순히 응한 것은 아니었다. 강제동원 과정이나 동원된 이후, 꾸준히 탈출을 감행하고, 비밀결사를 조직해 징용 거부 투쟁을 벌였다"며 "노동쟁의를 벌여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는 한편, 민족주의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때문에 강제 동원 거부투쟁은 항일민족운동으로 평가돼ㅗ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 연구관에 따르면, 1940년 4월부터 1941년 12월 사이 대략 20개월 동안 장제동원 조선인의 노동쟁의는 364건이다. 쟁의 일수는 439일, 참여인원은 21324명에 달했다.

1941년 일본 시스오카현 다가타군 도이쵸 소재 도이 광업소에 동원된 충남 출신 강제 동원자 176명은 일본인에게 구타당한 동료를 위해 사무실로 쳐들어가 항의하고 기물을 부순 사례가 있다.

이외에도 강제동원 조선인들은 일제가 제공한 식사량에 대한 항의, 임금 문제 등으로 징용 기간 쟁의와 투쟁을 이어갔다. 노 연구관은 무엇보다도 '반일 감정'에 의한 노동자들의 쟁의와 투쟁이 유독 많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노 연구관은 "노동쟁의 3건 중 1건은 '언어·감정'이 이유였다. 그 다음으로 '대우의 불만'이었다"며 "이는 노동조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전체 노동쟁의의 59. 41%가 민족 차별에 따른 반일감정에 의해 폭발됐다"고 지적했다.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노동쟁의가 항일운동 성격을 띄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강제동원 조선인들은 일제에 순응하지 않고 끊임없이 목숨 건 탈출을 감행했다. 이에 대해 노 연구관은 "강제동원자들은 동원되는 과정이나 동원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다"며 "탈출은 죽음을 각오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태그:#강제동원 , #노동쟁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