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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을 맞은 첫날, 실로 오랜만에 계룡산 갑사에 다녀왔다. 

단풍철은 아직 일렀다. 새마음 새 각오를 다지자고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티끌만큼의 불심이라도 있느냐? 그건 더더욱 아니다. 산사행(行)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삼라만상처럼 온통 가을 빛깔로 물든 내 마음이 동했던 때문이리라.

흔히들 '춘마곡 추갑사'라 칭하며 봄에는 태화산의 마곡사(麻谷寺)를, 가을에는 계룡산의 갑사(甲寺)'를 최고의 비경을 지닌 산사로 꼽는다. 그러나 봄에 갑사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갑사 오리(五里) 숲길 양옆에 조성한 황매화 군락지가 얼마나 눈이 부신지. 계절에 상관없이 내킬 때 언제든 찾아도 좋을 곳이다.

1. 황매화마을에서 만난 군밤 장수 할머님

갈 때마다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방문자로 들이차던 이곳도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던가 보다. 인적 드문 가을 산사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후드득후드득!' 그나마 빠른 박자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도토리, 상수리 열매들이 환영 인사를 대신했다.
 
갑사 가는 길의 한 식당 앞 분수대 너머로 붉은색 조끼를 입은 주인장 할머님이 알밤을 굽고 있다.
 갑사 가는 길의 한 식당 앞 분수대 너머로 붉은색 조끼를 입은 주인장 할머님이 알밤을 굽고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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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에서 뿜어대는 물줄기에 눈길을 주며 식당가를 지날 때였다. 할머님 한 분이 한 봉지에 3000원 하는 알밤을 굽고 계셨다. 가을 단풍만큼이나 고운 붉은 상의를 걸치고 계셨다. 인사말 대신 뻔한 답이 돌아올 질문을 실없이 던져 봤다.

"요새는 손님이 너무 없지요?"
"내가 여기서 밥장사로 30년, 군밤 장사로 10년인데, 이렇게 손님 없는 건 처음이요."
"길어질 것 같은데, 걱정이시겠어요?"
"어쩔 수 없잖아요. 빨리 예전처럼 돌아가기를 기다릴밖에...."


할머님은 누군가를 성토하며 울분을 삭이는 대신 순리에 맡긴다며 우문에 현답을 내놓으셨다. 

주차장 인근에서 사진 소품으로 쓸 요량으로 도토리와 상수리 네댓 개를 주워들었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직접 쑨 도토리묵 5000원'이라고 적힌 가격표 옆에 손에 쥔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갑사 입구를 향해 다시 걸었다.

2. 갑사 매표소에서 생긴 일
 
계룡산 갑사 매표소에서 카드를 내고 입장료를 지불했다.
 계룡산 갑사 매표소에서 카드를 내고 입장료를 지불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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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보 걸음을 더 옮겨 매표소에 당도했다. 몇 해 전 들렀을 때와 달라진 건 말끔해진 일주문만이 아니었다. 현금 외에 카드 결제도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카드를 건네니 창구 안에서 입장권을 내주신다. 무심코 카드를 창구로 들이밀 때처럼 한 손으로 입장권을 받아들려다 잠시 주춤했다. 입장권과 카드, 그리고 카드 영수증을 가지런히 모아 건네는 공손한 두 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평소 흔히 접하던 광경은 아니었다. 그러니 찰나의 단순한 동작이 필터링 됐을 게다. 개인적으로 연륜이라는 게 쌓이고, 사회적으로 한 손으로 물품을 주고받는 행위가 암묵적으로 통용되다 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다. 두 손으로 물건을 건네는 경건한 행위와 그 속에 담긴 전하는 이의 상대방에 대한 공경과 배려심을.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으로 가는 길, 갑사 경내에 채 다다르기도 전에 괜스레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지고,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는 생면부지 낯선 이의 질문에도 성심을 다하게 됐다.

3. 관음전 앞에서 재회한 노부부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가을 단풍과 어우러진 갑사 관음전 앞에서 노부부가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가을 단풍과 어우러진 갑사 관음전 앞에서 노부부가 기도를 드리고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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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을 지나 관음전으로 오르는 길에 돌탑 몇 개를 카메라에 담고 있을 때다. 파란색 점퍼를 입은 할아버님 한 분이 뷰파인더 속으로 들어왔다. 월인석보판목보장각 귀퉁이에서 들려오는 노랫가락의 임자였다.

'아무리 사람이 적다고 해도... 경내에서 노래를 다 하시네...'

연세 지긋한 어르신은 같은 장소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노래를 계속 부르셨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갓 물들기 시작한 관음전 앞 단풍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다시 한번 파란색 상의의 할아버님이 뷰파인더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셨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노마님과 관음전 앞에 서서 나란히 재배를 드리는 중이었다. 불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리를 뜨는 두 분을 보며 그제야 생각이 미쳤다.

'할아버님의 노래는 뒤따라오는 마나님께 바치는 사랑가였구나!'

4. 갑사에서 내려오는 길

목적이나 욕심 없이 오른 산사행(行)이었다. 갑사에서 돌아오는 길, 갈 때처럼 두 손에는 아무것도 쥔 것이 없었다. 그저 다른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창고만이 그득 차 있을 뿐이었다. 누가 알까 조심스러웠다. 뿌린 것 없이 거둔 것이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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