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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시민신문

경상북도 북서부에 자리한 예천군은 인구 5만이 조금 넘는 도시다. 지인에게 예천에 대해 물었다. "궁도로 유명한 고장?"하고 되묻는다. 수도권과 대도시 일부를 제외하곤 '지방소멸'이라는 끔찍한 용어를 쓸 정도로 인구감소에 따른 위기감이 심각한 수준인데 예천군 또한 예외가 아니다. 1960년에는 15만 명이었다니 70%가 줄어든 셈이다. 이런 곳에도 국내에서 자랑할 만한 공립박물관이 있다. 예천박물관이다.

그 모태는 2010년 지어진 예천충효관이다. 2015년 예천박물관으로 승격하고, 4년 간 공사 끝에 상설전시실, 세미나실, 기획전시실, 수장고, 어린이체험실 등을 갖추고 2021년 2월 재개관했다. 그리곤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국내 박물관 가운데 가장 많은 보물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기록을 올렸다. 아직도 2만 여점의 관내 반출 유물이 전시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예천박물관을 찾았다.

예천충효테마공원, 박물관을 품다
 
예천박물관 전경
 예천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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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먹는 하마' '애물단지 전락' 투입된 예산 대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언론에서 주로 붙이는 기사제목이다. 경북 예천군을 대표하는 '예천충효테마공원' 역시 이런 비판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해당되는 얘기다.

지금은 공립박물관을 그 중심에 품으면서 올 2월 재개관 이후 1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찾는 이들이 늘면서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참여를 높이면서 명품 공립박물관으로서 그 위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애물단지가 보물단지가 된 셈이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충효의 고장'이라는 지역의 상징성과 이미지를 구현하고 충효정신을 계승하는 교육장소로 충효를 테마로 한 충효테마공원을 야심차게 추진한 것은 2000년이다.

예천군 감천면 포리 일원 21만241㎡(6만4천 평) 부지에 총 사업비 208억원을 투입해 충효관 및 각종 부대시설을 건립하는 계획이었다. '충'이란 테마는 '이순신을 구한 약포 정탁(1526~1605)' 등 예천 출신 충신들에서 찾았으며 '효'는 향토 전래담인 '호랑이 타고 6월에 얻어온 홍시 이야기'를 삼았다.

이 사업은 민자를 유치한 유스호스텔 등 휴양문화시설, 다목적운동장, 야외수영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종합 체험 위락단지를 포함했다. 2005년 준공 이후 2010년엔 6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2140㎡의 충효관을 건립해 개관을 마쳤다.  

그러나 인프라 부족에 관람객들의 외면을 받으며 평일에는 하루 50여명, 주말에는 100여명 정도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것으로 집계됐다. 당연히 예산 낭비의 전형적 사례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더구나 수익은 없으면서 운영비로 매년 1억 8000여만원이 소요되고 있어 재정에 어려움이 뒤따랐다.  

# 애물단지에서 보물단지로 
 
예천청단놀음 지연광대춤에 사용한 탈
 예천청단놀음 지연광대춤에 사용한 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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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마련에 나선 예천군은 충효관을 '예천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박물관 등록을 마쳤다. 동기는 이랬다.

"충효관이 흉물로 전략했다는 질타가 지역사회에서 많았어요. 군 의회도 활성화 방안과 대책을 매번 요구했구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죠." 이재완 학예연구사의 회고다.

이때 새로운 길을 터 준 것은 행정 최고책임자인 김학동 군수다. "군수님이 묻더군요. 외부로 반출돼 있는 예천의 유물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해 보라는 지시였어요." 파악해 보니 관외로 반출된 지역 유물이 2만여 점에 달했다. 그것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박물관 건립밖에는 없었다.

곧바로 새로운 계획이 추진됐다. 충효관을 박물관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미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충효관팀에는 기능직 1명만이 남아 지키고 있었다. 박물관 전환이 구체화되면서 관련 전문가인 학예연구사를 비롯해 박물관팀 인원을 대폭 보강했다.

또 하나는 공직자들을 비롯한 군민들에게 박물관의 가치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군수님이 직접 나서 기회 있을 때마다 '향토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은 인물과 유물자산이다'라고 강조하고 공직자 교육도 병행하니 박물관 필요성에 대한 의식이 확연히 달라졌죠." 역시 이재완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지역 전통과 장점 그리고 특성에 기반한 테마를 발굴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선례라 할 수 있다.    

# 기증‧기탁운동에 문중 소장 비지정문화재 쏟아져
 
예천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기증유물 및 유품
 예천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기증유물 및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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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등록과 지정은 엄격하고 까다로운 조건을 두루 갖추어야 중앙정부에 의해 승인된다. 그런만큼 박물관 건립에 앞서 선행사업이 많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소장유물 확보였다.

예천은 지역 특성상 재지사족(在地士族) 즉, 지역에 기반한 문중들의 영향력이 강했다. 이재완 학예연구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문중 대표와 영향력 있는 개인들을 만나 꾸준히 관계망을 형성하는 한편 사전 소장물 조사를 병행했다.

그런 다음 박물관 건립시, 소장 유물을 예천박물관에 기증하겠다는 사전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렇게 해서 참여한 주요 소장처는 8곳이나 됐다. 유물 숫자로 환산하면 무려 1만 411점에 달했다. 

주요 소장처와 문중 등이 흔쾌히 참여한 것은 실제 박물관이 가사화되면서 보관공간을 확인했고 충분한 동기부여를 했기 때문이었다. "안전하게 보관되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문중의 자랑거리가 전시된다는 것은 충분히 긍지를 갖게 했던 것이죠." 줄줄이 자발적인 기증‧기탁이 이뤄졌다.  

이렇게 해서 박물관 개관준비 중 관내의 많은 문중 소장유물을 기증 또는 기탁 받았는데 박물관을 개관하기도 전에 수장고가 이미 유물로 가득찼을 정도였다. 기증‧기탁이 이뤄진 유물은 보물 46점, 도지정 24점 등 70점의 지정문화재를 비롯한 '동국통지(東國通志)', '유엽배(柳葉盃)' 등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유물 대다수를 포함 하고 있다.

관내 유물 기증과 기탁운동을 벌여 지정문화재 최다 보유 사례로 꼽힌다. 이같은 성과는 국비 지원으로 '2020년 재개관 박물관'이 가능했으며 특히 박물관 사전평가에 필요한 유물 확보의 성공적인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예천박물관 연혁
 예천박물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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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역적 특성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충효관을 박물관으로 전환하면서 5년에 걸친 꾸준한 주민접촉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신뢰가 가장 커다란 장점이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보통 인류학 등 학문분야에서뿐만 아니라 프로파일러 등에게 중요시되는 게 라포(rapport) 형성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상호 이해와 공감을 통해 형성되는 신뢰관계와 유대감을 통해 심리적 신뢰감을 쌓는 것을 말한다.

대개 라포가 형성된 후에는 보다 장기적인 신뢰관계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예천박물관을 추진하는 데 있어 충효관이 박물관으로 성공적인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라포형성도 크게 작용했다.

"군청 소속 학예연구사들이 문중의 소장 비지정문화재를 지정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역할을 하거나 자료 정리 등을 돕기도 했어요.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됐죠." 이재완 학예연구사가 이렇게 해서 도움을 준 경우만 해도 30건이 넘는다. 

한편으론 기증‧기탁에 대비한 '소장 유물 무료 소독서비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보관상태가 엉망이거나 그 가치를 정확히 알아보고 싶어하는 소장자들은 적극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소장처와 유물자료실태 등은 자연스럽게 데이터로 축적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해서 추가로 박물관으로 들어올 관외 유물과 문중 등 소장 유물‧유품은 2만여 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 예천의 충효 DNA 박물관에서 확인
 
충효테마공원에 설치돼 있는 현수교
 충효테마공원에 설치돼 있는 현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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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테마공원 안에 중심을 이루는 예천박물관은 크게 4곳의 주요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는 상설전시실이다.

'예천, 맑은 역사의 땅'이란 주제로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예천의 주요 유적 및 출토된 유물들을 토대로 예천을 터전으로 일궈낸 고대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공간이다. 두 번째는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한 공간이다.

주제는 '여기 사람이 살았네'로 예천의 불교문화와 조선왕실의 장태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전시실이다. 예천은 사람살기 좋은 고장이자 태실지로도 훌륭한 명당이었음을 소개하고 있다.

예로부터 태(胎)는 태아에게 생명을 준 것이라 해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했는데 특히 특히 조선 왕실은 국운과 관련이 있다 해 전국 명당에 고루 보관했으며 태실도감이란 전문관리기관을 설치하기도 했다.

예천엔 문종대왕 태실이 있으며 박물관에는 문종대왕 태외 항아리가 보존돼 있다. 예천에는 조선왕조 태실이 4개나 있는데 연산군 어머니 폐비윤씨 제헌왕후의 태실과 사도세자의 태실, 정조의 큰아들이었으나 요절한 문효세자의 태실 등이다.

가히 소백산의 훌륭한 지세로 왕실의 태실을 품은 길지의 땅이 아닐 수 없으며 난세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 고장답다.

상설전시실 세 번째 주제는 예천의 유교문화를 중심으로 문집, 하사품, 일기 등의 자료와 예천의 수많은 역사인물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네 번째는 예천인들의 삶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예천에 있던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전시실로 민속품, 민속놀이, 지역의 변화상과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예천을 이야기하고 있다.
 
충효테마공원 안내도
 충효테마공원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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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120명의 많은 과거급제자를 배출하며 국위를 선양했고, 유학의 실천이념으로 충신과 효자효부가 많아 우리나라 문화사에서도 전통의 맥을 충실히 이어온 곳이 예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시실이 좁은 것만이 문제가 될 듯하다.

특히 전시물 가운데 예천청단놀음에 쓰인 지연광대 탈이 눈에 띈다. 초여름이나 팔월 한가위 때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에서 행해진 대사나 사설이 없는 가면묵극(假面默劇) 형태의 민속놀이로 알려져 있다. 지연광대 탈은 전통문화 연희 속에서 지역적 특색을 확연히 드러내는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     

# 더 큰 꿈을 키워가는 예천박물관 

흔히 말한다. 박물관은 입지장소와 위치가 중요하다고. "인정하죠.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 관광지와 같이 연계 코스가 있는 곳, 관공서나 기타 시설이 밀집된 장소면 더 낫다는 건 다들 인정해요. 그러나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어내는 지혜와 아이디어 이에 더해 열정과 예산이죠. 결국 이 모든 것은 사람입니다." 이재완 학예연구사의 귀결은 결국 사람이다. 

예천박물관은 매년 14억원의 예산을 쓰는데 내년엔 20억원 규모로 늘릴 예정이다. 인원은 학예연구사 4명, 연구직 7명, 행정직 2명, 관리요원 및 공익 3명 등 16명에 달하지만 앞으로의 비전을 생각하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용인시박물관은 행정 2명, 학예(계약직) 2명, 연구 공무직 3명 외 안내직과 관리직 정도이다. 예천군 5만명 인구 대비 용인시는 110만 명에 달한다는 걸 감안하면 비교자체가 민망할 따름이다. 예천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박물관을 전담하는 사업소를 별도로 둔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

전국에서 제일 많은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만큼 공간도 추가로 확장할 예정이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문화 플랫폼 '박물관'을 통해 새로운 비상을 꿈꾸는 경북 예천. '박물관도시'하면 예천군이 떠오를 것 같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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