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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10시 명성황후 시해 사건 126주년을 맞아  '한일문화교류센터 구마모토'에서 개최한 '명성황후 추모기념식'에서 카이 도시오(92)씨가 강연을 하고 있다.
 8일 오전 10시 명성황후 시해 사건 126주년을 맞아 "한일문화교류센터 구마모토"에서 개최한 "명성황후 추모기념식"에서 카이 도시오(92)씨가 강연을 하고 있다.
ⓒ 주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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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남은 생 동안 명성황후 시해범을 추적할 겁니다."

일본 구마모토현 아소군 자택에서 만난 카이 도시오씨가 처음 만나 한 말이다. 지난 2004년 5월 일로 카이씨는 당시 75세였다(관련기사: "명성황후 시해범, 죽는 날까지 추적할 것").

그 때로부터 17년이 흘렀다. 그의 나이도 92세가 됐다. 종일 앞서 걸으며 기자에게 현장을 안내하던 그는 이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도 힘이 빠졌다. 눈이 나빠져 책과 자료를 보는 게 힘들다.

하지만 그는 17년 전 약속을 지켜왔고 지키고 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시해범을 찾는 일에 노년을 바쳤다.

일본에서 열린 명성황후 시해 126주년 추모식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해 활동해 온 카이 도시오씨의 모습. 모임을 발족한 2005년(왼쪽)과 2021년 10월(오른쪽) 모습.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해 활동해 온 카이 도시오씨의 모습. 모임을 발족한 2005년(왼쪽)과 2021년 10월(오른쪽) 모습.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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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126주년인 8일 오전 10시 일본 쿠마모토현의 '한일문화교류센터 구마모토'에서 열린 명성황후 추모기념식에 참석, 참배한 후 마지막 강연을 했다. 이날 기념식과 강연은 그가 주도해 만든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과 '재일 대한민국 민단 구마모토현 지방본부'(단장 김태문)가 공동주최했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카이 도시오씨는 1980년대 어느 날 아소산 국립공원에서 한 한국인 소녀를 만났다.

"그 한국인 소녀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어요. 역사 교사인데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 듣는 얘기였으니까요."

 이 일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 나라의 국모를 잔혹하게 살해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죠. 특히 시해에 가담한 대부분이 구마모토현 출신이라는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죠."

실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48명의 일본인 중 21명이 구마모토현 출신이다. 카이씨는 이때부터 수십 권의 책과 논문을 찾아 읽었다. 교사 퇴직 후에는 문장 하나하나를 자신이 직접 재조사하듯 확인하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직후인 2004년 11월에는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발족했다.

카이씨가 주로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시해범들의 행적이다.

"시해 사건 가담자들이 어떻게 참가하게 됐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사건 이후 일본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았는지, 어떻게 살았고 언제 죽었는지,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그 후손들은 무엇을 하는지 등을 조사했습니다."

이같은 조사 결과를 큰 종이에 직접 썼다. 이를 들고 다니며 일본 시민들에게 알렸다.

"당시 히로시마 재판부의 기록에 의하면 미우라 고로(일본을 대표하는 조선국 주차공사) 공사가 외무성의 기밀비를 사용해 낭인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일본 정부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 공사에게 기밀비 형태로 시해에 필요한 막대한 돈을 제공한 것만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당시 한성신보사(일본인 아다치 겐조가 일본의 한국 침략을 위한 선전 기관지로 1895년에 창간한 신문. 일본외무성의 기밀보조금으로 창간됐다-기자주) 사장 아다치가 구마모토 출신이었는데 이 사람이 미우라 공사의 의뢰에 따라 구마모토 낭인들을 동원했고 때문에 구마모토 출신자들이 많았습니다.

이후 48명 모두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방면됐습니다. 일부는 일본 고위직을 지내기도 했죠. 지금도 명성황후 시해를 치적으로 새겨 자랑까지 하는 일이 있습니다."


명성황후 생각하는 모임 만들고 16차례 홍릉 참배   
 
8일 오전 10시 명성황후 시해 사건 126주년을 맞아 '한일문화교류센터 구마모토'에서 '명성황후 추모기념식'이 개최됐다.
 8일 오전 10시 명성황후 시해 사건 126주년을 맞아 "한일문화교류센터 구마모토"에서 "명성황후 추모기념식"이 개최됐다.
ⓒ 주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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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기념식 참석자들이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이날 추모기념식 참석자들이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 주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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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소산 국립공원에 세워진 한 기념비에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것을 치적으로 기록한 인물을 찾아내 기념비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문제의 인물은 마츠무라 다츠키(1868~1937)로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구마모토시의회 의원, 구마모토현 기성회 상임이사를 역임하는 등 주요 요직을 거쳤다. 그는 아소산 일대를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시켜 구마모토현 근대문화공로자로 선정되기도 했다(관련기사 : 명성황후 시해 가담한 게 '치적'이라고?).

그는 시해에 가담한 이들이 일반 일본 낭인이라는 주장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군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일반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할 수 있었을까요?"

한편 그는 명성황후를 추모하는 일에도 매달렸다. 2005년을 시작으로 지난 2019년까지 매년 10여 명의 회원을 이끌고 명성황후가 묻힌 경기도 홍릉을 찾아 참배했다. 방한 때마다 한국독립기념관도 꼭 들렀다. 방문 횟수만도 16번에 이른다. 특히 지난 2005년에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후손을 찾아 설득해 함께 참배하기도 했다. 당시 이 일은 한일 언론에 각각 '11년 만의 참회'라는 제목으로 크게 다뤄졌다(관련기사: "더 사죄하기 위해 오래 살고 싶다").

마지막 강연의 마지막 당부 "한일 과거사 알고 직관해야" 
 
이날 행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주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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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홍릉 참배가 처음으로 중단됐다. 그런데도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의 추모 행사는 계속됐고 카이씨도 함께했다. 지금도 그는 일본 시민에게 "한국에 가면 명성황후 묘소를 참배하거나 서대문형무소·독립기념관 등을 꼭 둘러보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안내한다.

이날 강연의 말미에서 카이 도시오씨는 이렇게 밝혔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은 일본이 어떻게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한국인, 조선인을  어떻게 차별하는지를 생각하는 단체입니다. 일본 권력은 자꾸 역사를 숨기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국민은 역사를 더 잘 알아야 합니다. 과거 역사를 배우고 직시하며 한일이 우호해야 일본에 진정한 평화와 발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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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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