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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회는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일터와 삶터를 살아가며 평등과 존중에 대해 고민하는 수많은 후원회원, 지지자들과 함께 길을 만들어왔습니다. 오는 10월 13일 후원의 밤을 맞이하여, 여성노동자회는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왔고, 연결되기 위해 노력해왔는지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여성노동자회는 더 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202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자 가구주가 약 22%를 차지하는 등, 우리 사회는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65세 이상 고령자의 절반 이하(48.6%)만이 본인의 노후를 준비하고 있거나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 중 특히 여성 노인(39.3%)은 남성 노인(60.9%)에 비해 노후 준비가 더욱 취약한 상태이다. 

특히 임금 면에서 여성 노인의 연 평균 총 소득은 792만 원으로 남성(1,697만 원) 대비 46.7%에 불과하며, 여성 노인의 근로 소득, 사업 소득, 재산 소득, 공적 이전 소득은 동 나이대 남성에 비해 매우 적은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 50대 페미 노동자가 있다.노년의 삶이 임박한 50대 활동가, 자경은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기 위해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 노동자 소민을 만나 당사자의 목소리로 노년 페미노동자의 현실을 듣는다.


인터뷰어 : 자경
마창여노의 활동가 자경. 혼자서 아이를 기르며 페미노동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나이가 50을 넘어가고 있지만, 가진 경제적 자본은 없다. 노년 페미노동자의 노후, 경제, 정서 모두가 앞으로 나에게 닥칠 문제로 여겨지는 시점이다. 앞으로의 삶을 어찌할지 고민만 하고 답을 찾지 못하는 중, 노년 페미노동자의 삶에 대해 듣고자 소민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다.

인터뷰이 : 소민
비혼의 노년 페미노동자 소민. 여성단체 활동이 보호막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하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러 여성 단체에서 활동하다 마창여노 부설 사업단에 자리 잡았고, 오랜 활동 끝에 정년을 마쳤다. 퇴직한 지금도 여전히 마창여노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살고 있는 아파트의 주민들과 소통하고 나눔하며 정서적 연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노년의 페미노동자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매일 한 발짝씩 내딛고 있다.

#1. 언니의 생계

소민 언니의 집에 가자마자 보인 것은 책상 위의 약 봉투였다.

언니는 "관절염 약 한 알만 먹어도 되는 것에 감사하다"고 한다. 기존에 고지혈증은 있었지만 유지 관리를 잘했는데, 올해는 걷다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푹 주저앉는 경험을 했다고. 그 뒤 언니는 병원을 찾아 약물 치료와 통증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병든 몸이 남의 일이 더 이상 아니게 된 언니에게, 노후를 살아갈 생계비라고는 그동안 모아둔 돈, 조금의 연금과 임금 노동 수입이 전부다. 원 가족의 도움 없이 살아야 한다는 불안과 부담은 늘 언니와 함께한다. 65세부터 지급하는 노년기초생활연금은 올해 25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조금 올랐지만, 노년의 여성 홀로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국민 연금은 조기 수령하여 61세부터 받았지만, 월 27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언니는 노년의 여성 혼자 살아가기에 필요한 최소 금액이 한 달에 100만원 정도라고 답했다. 문화생활비, 의료비, 인간관계에 사용되는 비용 등을 최소화해서 잡은 금액이다. 그러나 많은 노년의 여성노동자들에게 월 100만원은 마련하기에 결코 쉬운 금액이 아니다. 언니는 다행히 아직 임금노동을 하고 있어 연금 소득 등을 합쳐 도합 월 120~130만원 정도의 수입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금액으로는 문화생활 등은 사실상 엄두도 내기 힘들다고 한다. 건강이 좋지 않아 요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파트 주변 주민센터에서 배우는 요가 수업조차도 듣기가 쉽지 않다고. 

#2. 언니의 노동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돈은 연금 만으로는 턱이 없다. 

60세로 정년을 마친 언니도 계속 생계를 유지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할 수 있는 마음과 체력이 있었지만, 마땅한 노인 일자리가 없었다고. 결국 언니는 주변 지인들의 도움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생활해야 했다.

그래도 언니는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최선을 다해 일해왔다. 작은 단체나 사회적 기업들을 전전하다 그만두고 난 뒤 겨우 찾은 일자리는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문화재 관리 일이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땡볕 아래에서 풀을 뽑는 일은 손가락 변형이 올만큼 고된 일이었지만, 다른 선택지도 마땅하지 않았다.

무료 급식소에서 일할 때도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높이의 솥에 갓 한 뜨거운 음식들을 들어 옮기고 배식하는 일이었다. 자칫하면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하고 고된 근무 환경이었다. 언니는 지금도 대부분의 노인 일자리가 풀 뽑기, 청소하기, 밥 하기 등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노인 일자리로 제공되는 일의 종류도 문제지만, 노동 환경과 조건도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언니는 노인 일자리로 파견된 노동자들이 한 달에 한 번, 만근시 사용할 수 있는 연차조차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언니는 지역의 모니터링 사업단에 소속되어, 인터넷 상에서 유해 정보를 감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 3시간, 주 5일을 일하며 6~70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일하면서 30분마다 눈 운동을 해주지 않으면 "눈알이 빠질 것 같고, 허리가 뒤틀릴 것 같아" 일을 하기 무척 힘들다고 한다. 3시간을 내리 앉아있기가 굉장히 고되다고. 저번 급식소 일에 비해 육체적 강도는 낮지만, 이것도 만만찮게 고된 일이라고 말한다.

비혼의 여성노동자가 늙어감에 따라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하는 공공 영역의 복지 제도는 무척 미비한 상황에서, 지역에서 운영되는 일자리는 그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일의 내용 역시 노년 여성노동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저임금 고강도 불안정 노동이 대부분이다. 이런 조건에서 노년 여성노동자 당사자들이 일을 하며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기는 무척 힘이 든다.

언니가 지금 하고 있는 모니터링 일 또한 인터넷 검색 기능과 문서 작업이 가능한 여성 노인들만 할 수 있는 일자리라는 문제가 있다. 언니는 여성 노인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일자리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과 더불어, 노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직업 교육이 이뤄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언니는 노년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건강과 경제력이라고 이야기한다. 문화 생활이나 사회적 관계망은 그 두 가지가 충족되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그러나 현실에서 노년 여성노동자들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최소한의 기본 욕구마저 충족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3. 언니의 삶

소민 언니의 어린 시절은 부유했다고 한다. 

언니는 마산 촌에서 서울로 유학을 간 엘리트 여성이었다. 졸업 후에는 의령의 한 학교에서 선생으로 취업을 했다. 당시에는 돈을 주고 빽으로 학교 선생 자리를 구하던 시절이었지만, 언니는 당당하게 면접을 보고 들어간 자리였다고. 하지만 학교 내에는 권력 파벌, 장학사의 언어 폭력 등 숱한 문제가 있었고, 문제제기를 한 언니는 "시건방지게 장학사보고 사과하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학부모에 의한 성추행도 견디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담임선생님이던 언니는 가정방문을 다녀야 했는데, 선생을 선생이 아닌 여자로 보는 학부모들의 태도는 언니에게 환멸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학부모가 담임인 언니를 데리고 노래방을 가서 수작을 부리는데, 놀란 마음으로 나와 바로 택시타고 집에 간 적도 있다고. 

부모님은 미혼인 여성에게 자취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었고, 언니는 마산에서 학교가 있는 의령까지 7년을 새벽 밥 먹고 첫 차 타가며 출근해서 다녀야 했다. 차라도 한 대 사지 그랬냐는 물음에 언니는 "당시는 여자가 운전하는 것도 용납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고 답했다. 학교를 그만둔 해에 운전면허 연습을 하면서는 "집구석에서 밥이나 하지 나와서 저런다"고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모른다고. 

비혼의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언니는 눈에 차는 남자가 없어 그렇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시절 여성은 결혼을 해야지만 호적에서 나갈 수 있었는데, 비혼 세대주이자 독립 생계부양자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사유서까지 작성해야만 했다고. 당시만 해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기에 혼자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언니는 일하던 직장에서 휴직신청을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마창여노에 상담전화를 한 것을 계기로 마창여노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여성단체에서 피해자들을 대면하는 일을 하면서는 이가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비혼의 여성에게 여성단체 활동은 사회적인 안전망이 되어주기도 했다고. 희노애락을 오가며 오래 몸담았던 여성단체 활동은 언니에게는 아직도 여러 이야기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대상이다.

#4. 언니의 꿈

100세 시대라는데, 남은 30여 년의 삶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언니에게 물어봤다.

소민 언니에게서 단박에 나온 답은 일단 "즐겁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싶은 것은 맘 뿐이고, 요즘은 해지고 나면 두려워 놀러 다니기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어둑어둑한 밤에 돌부리라도 걸려 넘어져 누가 발견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에 저녁에는 잘 다니기가 힘들어졌다고.

그래도 "맘 맞는 친구들 만나서 떠들고, 한 달에 1~2번 바깥 구경도 하고, 일상의 나눔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언니는, 책 읽는 모임이나 문화 생활도 즐기며 지역사회와 교류하며 사는 삶을 꿈꾼다. 지금 언니는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밥 먹고,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를 나눔하며 서로 돌봄하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10년 전부터는 친구들과 함께 노년을 보내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시골의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공동 부엌, 세탁실, 작업 공간을 만들고, 서로 음식을 만들며 함께 노동하고 교감을 나누며 즐거운 일상을 지내고 싶다고.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에게 제안도 해 보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뭔가를 하기가 너무 힘들어" 쉽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지금은 일단 아파트 주민들과의 소통으로 만족하고 있다고.

#5. 마창여노에게 바라는 점은?

마창여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를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노년의 고민들을 함께 나눌 소모임 등, 다양한 세대 별 만남의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함께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자산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언니는 노인 세대들이 정체되어가지 않도록 다른 세대 사람들과도 소통의 기회가 많아지고, 계속 순환되며 연결되는 공동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언니는 당사자 운동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마창여노에서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일자리는 곧 생존이다"라는 표현처럼, 노인의 일자리 참여는 경제적 안정 뿐 아니라 교류의 장으로서도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언니는 이를 위한 당사자 운동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다.

소민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꿈꾸는 공동체로서의 노년의 삶을 상상하고 고민해본다.

노년의 여성노동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습대로 살며, 그렇게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풍요롭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 것일까? 고민이 계속 이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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