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무슨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특별한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무조건 맞는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엄마의 레시피는 나에게 오로지 하나뿐인 레시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일흔 살 밥상을 차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음식과 음식 이야기를 기록한다.[기자말]
황태가 맛있는 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 긴장과 이완, 차가움과 따뜻함 속에서 황태 속살은 더욱 꾸덕꾸덕 맛있게 숙성됐으리라. 옛사람들은 어떻게 명태를 바닷바람을 쏘이며 얼렸다 녹일 생각을 했을까. 어쨌거나 명태 입장에서는 잡힌 것만도 서러운데, 겨울 바람에 제 몸을 다 드러내며 얼었다 녹는 것도 못할 짓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황탯국의 기억은 늘 뜨끈한 기억을 불러온다. 아빠의 술국으로 엄마가 자주 끓였던 황탯국. 봄이나 여름보다는 선득한 바람이 불어올 때, 황탯국은 반가운 허기를 유발하곤 했다. 특히나 요즘은 가을이 맛있을 계절. 가을 무를 썰어넣고 황태를 넣어 끓인 황탯국은 그 외에 더 특별한 식재료를 넣지 않고도 깊고 시원한 맛을 낼 수 있는 서민 음식이다.

아빠는 젊은 시절 술을 좋아하셨고, 거의 매일 술을 드시곤 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밥상의 국은 대개 아빠의 술 해장을 위한 음식으로 준비되곤 했다. 내 기억으로는 가장 많이 올라온 국은 칼칼한 콩나물국이었고, 시래깃국, 오징어무국 어쩌다 한 번씩 황탯국도 올라왔다.

평야 지대에서 자란 엄마는 어려서 황태를 자주 접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엄마가 황태를 직접 본 것은 결혼하고도 한참 후인 96년,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을 맞아 떠난 강원도 여행길, 황태덕장에서였다. 황태가 술해장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엄마는 황탯국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결대로, 순리대로 찢기
 
황태를 결대로 찢는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결대로, 찢으면 되는데 그 '결'을 찾기기 쉽지 않다. 우리도 몇번이나 녹았다 얼어야 그 '결'을 찾을 수 있을까.
 황태를 결대로 찢는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결대로, 찢으면 되는데 그 "결"을 찾기기 쉽지 않다. 우리도 몇번이나 녹았다 얼어야 그 "결"을 찾을 수 있을까.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일단 황태를 손으로 북북 찢는다. 요즘은 결대로 잘 찢겨 나온 제품들이 많이 있긴한데, 역시 손으로 뜯는 맛과 비교할 수 없다. 나도 황태를 몇 번 손으로 뜯어보긴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가시가 사나워 자칫 손을 다치기도 하고 생각보다 억세서 마음대로 그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

잘 뜯을 수 있는 방법은 '결대로' 뜯는 것. 순리대로. 하지만 이게 말이 쉽지, '결대로'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많이 뜯어보고 손도 다쳐보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그 '결'을 알 수 있다.

잘 뜯은 황태에 양념을 할 차례. 이때 황태가 너무 말라 있다 싶으면 물을 살짝 뿌려서 키친타올이나 천으로 잘 감싸준다. 습기가 안에 스며들어 황태가 촉촉해진다. 황태가 너무 말라 있으면 양념이 잘 스미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히 촉촉해진 황태와 네모나게 자른 가을 무와 참기름을 넣고 비빈다. 황태와 무의 즙이 지나치게 새어나가게 막는 코팅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참기름으로 비빈 황태와 무를 달궈진 냄비에 넣고 살짝 볶는다. 이들 재료에 쌀뜨물을 붓고 한소끔 끓인 다음, 팔팔 끓어오르면 물을 줄인 뒤 20~30분간 뭉근히 끓인다. 이때 다진 마늘, 자른 두부를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간은 새우젓으로 하는데, 그래야 너무 짜지 않고 감칠맛이 있기 때문이다.

식성에 따라 홍고추를 넣어 칼칼하게 맛을 낼 수도 있다. 제일 마지막에 잘 저어준 달걀을 넣어준다. 이때 달걀을 넣고 휘젓지 않을 것. 달걀을 심하게 흔들면 국물이 뿌얘져 황태와 무가 빚어내는 맑고 개운한 맛의 콜라보를 자칫 망가뜨릴 수 있다.

누구나 가슴속에 황태 한 마리를 품고 산다
 
황탯국이 있는 밥상. 황탯국 요리를 구실삼아 오랜만에 엄마아빠와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황탯국이 있는 밥상. 황탯국 요리를 구실삼아 오랜만에 엄마아빠와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아침마다 당신도 출근하느라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에, 엄마는 분주한 손길로 아빠의 해장국을 끓이시느라 바쁘셨다. 내가 워킹맘이 되어 보고서야 느끼는 엄마의 지난 시절 아침.

가족들 아침식사 준비하랴, 아이들 도시락 싸랴, 당신 출근 준비하랴...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늘 발을 동동거리며 부엌 앞을 오갔던 엄마를 떠올리면 가슴이 저민다.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던 그 시절의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다.

자식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만들면서 한번 기쁘기도 했겠지만, 또 여러 가지 말 못할 속상한 일들로 엄마의 속도 황태처럼 녹았다 풀어졌다 했겠지. 생각해 보면 누군들 그렇지 않으리. 누구나 다 가슴속엔 황태 한 마리를 품고 산다. 그래서 이 뜨끈한 황탯국이 한편 만만하면서도 그렇게 반갑고 고마운지도 모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