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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성수동 오매갤러리에서 열리는 <자수살롱>展은 조금 특별한 전시다. 2019년 <자수신세계>展으로 <자수공간> <자수잔치> 그리고 외전격인 <안녕! 바다 씨!>까지 네 번에 걸쳐 꾸준히 변화하고 성장해 현재 2021년 <자수살롱>展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살롱에 참여한 열 명의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기자말]
달항아리 자수에 복을 기원하는 꽃을 올렸다. 길상이 바탕일 때 비로소 복은 합당하다.
▲ 자수살롱전 작품 앞에 앉은 한승희 작가 달항아리 자수에 복을 기원하는 꽃을 올렸다. 길상이 바탕일 때 비로소 복은 합당하다.
ⓒ 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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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희 작가는 달항아리를 자수로 수놓았다. 물론 그 항아리는 천위에 천으로 기운 것이므로 물을 담을 수는 없다. 대신에 작가는 이 달항아리에 복을 담을 수 있음을, 혹은 이 달항아리에 복이 가득 담겨있다고 말한다.

달항아리를 보는 것으로, 달항아리를 가져가 집에 모시는 것으로 복이 절로 따라간다는 이야기. 한승희의 작품명은 <복이 차 오른다(복항아리)>이다. 이것은 오랜 동안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서, 혹은 민화에서 말하는 길상(吉祥)과 관련이 있다.  

   
바탕 달항아리의 길상에 복을 얹다

길상과 복은 작은 차이가 있다. 복은 건강하고 수명이 길고 돈을 많이 벌고 자식이 많고 승진 출세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건강이나 돈 그 자체는 길하다거나 상서롭지는 않다.

길상은 복을 예정하고 있지만,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같은 덕성과 결합된 개념이다. 겸손함과 담백함과 인자함과 신의를 귀하게 여기고 돈이거나 권력이거나 남들보다 위에 서는 명예에 초연할 수 있는 있는 발랄한 힘. 거기 길상이 있다. 달항아리는 깨끗한 바탕에 핵심이 있고, 그것이야말로 복 혹은 희망을 그리는 전제 길상일 것이다. 

2021년 자수살롱 전시에서 한승희 작가가 달항아리에 새긴 것은 모란과 여름연잎, 국화꽃과 대나무, 매화꽃바람이었다. 백성의 그림 민화가 담고있는 소망의 도상들이었다.

작가가 달항아리에 무엇인가를 처음 새겼던 때는 2020년 PCAF(Paintings Calligraphic Art Festival) 전이었다. 그는 봉황과 이를 좌와 우로 감싼 모란을 새겼다. 달항아리는 청화문처럼 새긴 그 도상도 안착시켜주었다. 달항아리는 넉넉한 품이고 바탕이었다. 그 달항아리를 한승희 작가는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빚고 있나?


"달항아리를 보면 둥근 형태잖아요. 저도 좋아하지만 다른 분들도 많이들 좋아하시죠. 둥근 형태를 바라보면서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편하게 느껴지니까. 달항아리를 볼 때마다 늘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던 거 같아요.

그러다 박물관에서 활옷 흉배 작품을 보면서 그 메인 앞쪽에 자수한 봉황을 달항아리랑 매치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제가 봉황을 달항아리에 자수한 계기가 됐죠. 전통 자수본에 그대로 활용하지 말고, 전통적 모티브 가져오지만, 제가 모던하고 현대적으로 도안을 해 봤어요."


달항아리 만들면서 비로소 나를 찾아가다
 
바늘의 점이 뚫은 자리를 따라 실은 선을 이루고 면을 채워간다. 한땀 한땀의 예술이 자수다
▲ 한승희 작가의 달항아리 자수 바늘의 점이 뚫은 자리를 따라 실은 선을 이루고 면을 채워간다. 한땀 한땀의 예술이 자수다
ⓒ 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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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작업을 할 때, 너무 큰 기물은 상단과 하단을 따로 만들어 붙여요. 그걸 합친 다음 다시 물레로 돌리는 작업을 하는데. 그러면 둥굴게 손자국이 남죠. 자연스럽게 흐르는 그 둥근 라인을 자수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그걸 음영 처리도 하고 실제처럼 볼록한 느낌이 들도록 작업했죠.

자수는 선으로 이어지지만, 면을 형성하는 게 중요했어요. 재료로는 명주와 명주사를 썼어요. 명주가 누에고치 천연재료이기 때문에 다루기 힘들 거든요. 그래도 이 실을 고집한 이유는, 소프트한 자수지만 글로시한 광택을 얻기 위해서예요. 금사 은사로 마무리 작업들을 했죠. 빛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실크사의 매력이 있어요." 
     
회화는 큰 작업을 할 때, 벽에 걸기도 하고 혹은 바닥에 캔버스를 깔기도 한다. 작가는 맞춤 제작된 바퀴 작업대에 배를 깔고 옮겨가며 작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수는 들어간 바늘을 받아줄 저쪽 손이 있어야 한다. 천은 팽팽히 당겨놓은 상태로만 작업해야 하는 한계가 있으므로 큰 작업을 할 때 겪는 어려움은 달항아리 작업과도 닮았다. 그런데 많고 많은 오브제 중에 왜 꼭 달항아리였을까? 

주호민은 만화 <신과 함께>를 그리면서 이야기 했었다. "냉장고에 재료가 한 가득인데, 그걸 요리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아깝잖아요." 전통은 오랜 동안 우리의 땅과 문화에서 자라나 풍성한 결실들을 맺어두고 있다.

주호민의 냉장고 재료는 우리 설화와 민담과 전설 등이었다. 한승희가 본 세계는 궁중의 문화와 민속의 유산들이었다. 사람을 정말 사람답게 만들고, 우리를 더욱 우리답게 만드는 문화적 유전자 밈이 거기 가득하다면 왜 그걸 그대로 둘 것인가?
  

"전통의 문양과 도안에 매력을 느꼈던 첫 아이템은 박쥐 문양을 입혔던 가락지였어요. 인사동서 구했었죠. 1995년 제1회 태평양 디자인 화장품 공모전에 '인간과 환경 그리고 우리의 미를 살린 화장품용기'로 출품해 특선을 했었어요. 소고를 반으로 잘랐었죠. 산업디자인 학과에선 그런 공모전이 중요한 이력이 되니까, 당연히 연례행사처럼 나갔죠. 생각해보니 그 때마다 제 아이디어의 원천이 대개는 전통이었던 거예요. 패키지 디자인 공모전에서는 한지를 사용했고, 전통공예상품 공모전에도 천연염색 면을 이용한 조각배자를 만들었으니까."

'다시 찾은 전통'은 이전과는 다르리
 
달항아리는 발견된 한국의 전통이다. 그 전승과 창조적 재발견이 우리 시대 작가들 소명의 일부다.
▲ 자수작업을 하고 있는 한승희 작가 달항아리는 발견된 한국의 전통이다. 그 전승과 창조적 재발견이 우리 시대 작가들 소명의 일부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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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희는 졸업후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한다. 웹을 통한 네트워크 사업이 폭발적으로 확산하던 시대는 대략 1998년 이후였는데, 그 최전선의 제품 디자인과 웹설계 등을 닥치는 대로 해내는 것이 승희의 맡은 바 일이었다.

여러 대기업의 사이트와 UI 디자인에 참여했지만, 한승희라는 개인의 이름은 화면 뒤편 먼 곳에만 잠시 머물다 사라질 뿐이다. 그래서 독립. 수공예 전통장신구 맞춤제작 쇼핑몰을 차린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였다. 그리고 10여년. 

장사도 좀 됐고, 드라마와 영화에도 숱한 장식품이 협찬됐지만 그래서 그게 뭐. 그건 그저 일이었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뛰어다니는 그 일이 어느새 한계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책들 중에는 <제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하는 책도 있는데, 그런 일이 한승희에게도 일어났다. 이전의 승희에게는 두 손 가득 진짜 보물들이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남아있는 건 가짜 플라스틱 보석들만 같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함경도 분들이셨어요. 함흥서 흥남으로, 흥남서 거제로 그렇게 내려와 삶을 다시 시작한 분들이었대요. 감자부침개도 잘 해주셨는데, 전분을 박스로 맞춰 놓고 내내 먹었거든요. 생면으로도 먹고. 할머니를 도와 타래실감기를 하던 기억이 났어요. 할머니가 '뜨개질 할머니'였거든요. 자식들거 손주들거 그런 걸 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곤 했어요. 그런 기억들이 절 다시 자수로 불렀던 거 같아요. 다시 시작하는 거죠."      
   
전통은 같은 전통이지만 한승희 작가는 이제 같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한 한승희다. 그렇게 전통은 새 사람에 의해 자양분을 얻고 새로운 길을 간다. 거기에 우리 시대의 길상이 있다. 

[관련기사 : 천 위에 펼쳐진 무한한 세계... 이런 자수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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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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