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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3명이 모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주민 참여의 문턱을 낮춘 마을공동체 지원정책이 내년이면 10년을 맞는다. 뜻이 맞는 주민들이 지역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해결해 가며, 조금 더 행복해진 이야기들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화. 그 10년의 이야기를 몇 차례에 나눠 싣는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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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활동을 하다 보면 동네에서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동네에도 청년이 있다. 동네에서 청년의 위치를 설명할 수 있는 정체성은 여럿 있겠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선주민인가 아니면 이주민(세입자)인가?'이다. 사실 '선주민'이란 표현보다 오래 동네에 머물 토박이인지, 아니면 곧 떠날 뜨내기인지를 묻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물론 청년이 마을에서 활동하기 위해 꼭 토박이일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청년이라는 세대적 특성상 아주 오랜 기간 동네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해온 기성 시대에 비해 소위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2년 주기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고 더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를 찾아 떠돌 수밖에 없는 청년에게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자본이란 먼 나라 이야기다.

그러나 청년이라고 하나의 모습은 아니다. 오랫동안 마을에 거주한 토박이 청년이라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많은 조건이 충족된다. 그래서 청년들에게도 마을에서의 경험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왜 지역에는 청년이 없을까?'란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지방의 청년들이 일자리부터 교육과 학습, 생활 SOC, 문화 인프라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지역에 머물지 못한다면, 도시에서의 청년은 직주 분리의 생활환경, 지역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가혹한 구직 환경과 노동 조건, 부모의 소득과 자산 등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열악한 환경 조건을 바꾸지 않고 지역에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고 의문을 품는 것은 출발점을 잘못 잡은 것이다.

다른 삶의 경로 선택한 청년들
  
노원구 월계3동 김초희 주민자치위원
 노원구 월계3동 김초희 주민자치위원
ⓒ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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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무관심했는데 세월호 사건이 계기였어요.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가 정당활동까지 참여하게 됐어요. 몇 년 동안 활동을 해보니까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의사결정 구조에 반영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주민자치회에 참여하게 됐어요." (노원구 월계3동 김초희 주민자치위원)
  
강서구 등촌2동 주민자치회 정배필 간사
 강서구 등촌2동 주민자치회 정배필 간사
ⓒ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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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활동도 하고 자치구 협치 회의에도 참여해 봤어요. 주민자치회 위원을 모집한다길래 참여했는데,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간사를 맡겠다고 했죠." (강서구 등촌2동 정배필 간사)
  
금천구 가산동 박새솜 주민자치위원
 금천구 가산동 박새솜 주민자치위원
ⓒ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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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마을기자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사실 처음에는 취재거리를 얻어보자고 참여했죠. 그런데 활동을 해보니까 내 삶과 동떨어진 환경과 구조에 대한 불만이 의욕으로 바뀌더라고요. 처음에는 단지 청년이라는 이유 때문에 자치회에서 엄청 환영받았는데 솔직히 일하면서 자치회 활동까지 병행하기는 쉽지 않아요." (금천구 가산동 박새솜 주민자치위원)
  
노원구 상계2동 이남수 교육운영분과위원장
 노원구 상계2동 이남수 교육운영분과위원장
ⓒ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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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로 일했을 때 동네 청소년들과 함께했던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주민 총회나 여러 동네 행사 하는 걸 지켜보니까 내가 내 동네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노원구 상계2동 이남수 자치회관운영·교육분과장)

얼마 전 강서·금천·노원·성북의 주민자치회에서 활동하는 40세 미만 자치위원들이 '주민자치회와 청년'을 주제로 나눈 이야기의 한토막이다. 지역에서의 삶을 고민하고 자치활동에 참여하는 청년이 아직까지 한국 사회의 주류는 아니지만, 대기업·정규직, 수도권 거주·생활 등과 같은 삶의 경로를 모두 따라가야 할 보편적 지향점으로 여기는 것도 아니다.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안정된 일자리' 모델은 이제 거의 신화나 전설처럼 존재할 뿐, 대다수 청년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앞에서 들어본 이야기처럼 새로운 삶의 경로를 모색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닐까?

주민자치회에 참여해 평위원이나 분과위원장, 실무를 총괄하는 간사 또는 임원 역할을 맡아 지역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정당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고된 노동에도 여가 시간을 쥐어짜거나, 그 자체를 자신의 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는 이런 청년이 엄연히 존재한다.

청년 없이 지역의 미래 없다

물론 일자리가 필요한 다수의 청년 시민들은 여전히 신화에 매달려 있다. 그래서 여전히 동네에서는 청년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는 사이 동네는 고령화되고 있다. 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새마을운동지도자협의회·새마을부녀회·새마을문고, 통장협의회, 통합방위협의회 등 법정 단체나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단체들의 앞날도 밝지 않다. 예산이 있어도 사람이 없는 단체가 많아질 것이다.

주민자치회는 서울시와 각 자치구의 적극적인 홍보와 정책 기조, 지역을 대표하는 주민자치기구라는 상징성 덕분에 적게나마 의지 있는 청년 시민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지만 제도적 뒷받침은 지역의 다른 법정단체나 직능단체와 큰 차이가 없다. 

"자치회 활동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많아요. 체계를 간소하게 만들고, 청년이라고 해서 특별히 뭘 더 해주길 기대하기보단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환대해 주면 안 될까요? 무엇보다 자치회 활동이 즐거워야 더 많이 참여도 하지 않을까요?" (정배필 간사)

"자치활동 참여를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면 좋겠어요. 주민자치회 회의나 활동에 참여할 경우 공가 처리를 해주면 일하는 분들도 많이 참여할 것 같아요. 회의 한번 하려면 최소한 근무 때문에 어렵다, 허락받아야 한다는 말은 안 나오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뒷받침해 줘야 진정한 주민 자치가 가능해요." (박새솜 자치위원)

  
강서, 금천, 노원, 성북의 주민자치회에서 활동하는 자치위원들이 ‘주민자치회와 청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서, 금천, 노원, 성북의 주민자치회에서 활동하는 자치위원들이 ‘주민자치회와 청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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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지역의 자치활동에 많이 참여하도록 주민자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교육,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구조, 일과 이후 회의 개최 또는 공가 처리와 같은 직장인의 참여 여건 조성, 참여 수당 현실화, 안정적 주거 기반 확충 등 다양한 방안들이 제안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치회 안의 다양한 세대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인 듯하다. 청년들이 동네를 쉽게 떠난다고 거리를 두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과 청년의 불안정한 삶을 이해해 주는 게 먼저다.

청년들에게도 지역은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지역에, 동네에 청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선배 세대로부터 환영받고 적극적인 후원도 받으며 마을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저출생·고령화 및 인구감소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 기후변화 등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환의 시점이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함께 이 전환적 기회를 어떻게 맞이하는가에 따라 마을과 우리 미래의 모습은 바뀔 것이다.

태그:#마을,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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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일터가 가까운 직주일체형 삶을 지향합니다. 성북동 주민자치회 간사(2019.10.~현)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편집위원(2015~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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