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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란히 앉아 함께 감상한 아름다운 구시포의 일몰
▲ 고창 구시포해수욕장 엄마와 나란히 앉아 함께 감상한 아름다운 구시포의 일몰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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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해가 넘어가려는 바다는 눈부신 광채를 내며 빛났다. 태양은 피를 토하듯 붉은빛을 바다에 쏟아내고 검푸른 바닷물 속으로 자맥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사위는 고요했다. 철 지난 해변가에서 장난질을 치던 아이들도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나들이객들도 해변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해가 사라진 바닷가에는 금세 어둠이 밀려들었다.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동생과 내가 그늘막과 씨름하느라 잠시 엄마에게서 눈을 뗀 순간 일은 일어나고 말았다.

"쿵. 아이쿠."
"엄마!!!"


나와 동생은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엄마에게 달려갔다. 바닷바람이 춥다며 덮고 있던 무릎 담요를 든 채 나가 떨어진 엄마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엄마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고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 다행히 뼈를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한 달 깁스 이후 몸이 달라진 엄마

근래 들어 엄마가 자주 넘어진다. 1년 전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져 새끼발가락 골절로 한 달간 깁스를 하고 지냈다. 새끼발가락이든 발목이든 깁스를 하고 다리를 쓰지 못하는 것은 똑같았다. 엄마는 한쪽 발에 깁스를 하고 에누리 없이 꼬박 한 달간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해야만 했다. 깁스를 풀던 날 엄마가 내뱉은 첫 마디는 "아유, 이제 살 것 같다" 였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그때 이후부터 몸이 확실히 달라… 다리가 내 다리 같지가 않고 힘이 안 들어 가"라고 하셨다. 한참 운동을 하지 못해서라고 엄마를 안심시켜 드렸지만 깁스를 풀고 난 이후에도 엄마 다리는 늘 퉁퉁 부어 있었다. 꼭 소 다리의 도가니처럼.

그 부위를 살짝만 눌러도 푹푹 들어가는 것 같았다. 꼭 밀가루 반죽을 찌르는 것처럼. 병원에서도 더 이상 해 줄 것은 없다며 시간이 좀 지나야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말뿐이었다. 그 후로 엄마는 쉽게 피곤해 했고 기력이 예전만 못해 보였다.

우리 형제들은 엄마의 낙상에 대해 민감하다. 외할아버지가 겨울철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신 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욕실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아 드리고 다닐 때도 늘 손을 잡고 다니는데 이런 데서 넘어지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부모가 잠깐 한눈 파는 사이 아이가 사고를 당하는 것처럼 엄마도 그 짧은 순간에 사달이 난 것이다.
 
엄마는 활짝 핀 꽃무릇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일도 거절했다.
▲ 선운사 꽃무릇 엄마는 활짝 핀 꽃무릇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일도 거절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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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에 다녀온 선운사에서 엄마는 입구에서부터 '이 절도 한참 걸어야 하는데…' 하며 걱정을 했다. 차를 타고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외부 차량은 출입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걷게 되었다. 마침 선운사에는 꽃무릇이 온 산사를 붉게 물들여 놓고 있었다.

"엄마 우리 여기서 사진 한 장 찍어요."
"됐다. 안 찍어. 이 얼굴로 무슨 사진을 찍니? 니들이나 찍어."
"그래도 기념사진은 있어야지."


동생과 나는 화단 턱에 주저앉은 엄마를 가운데 두고 어정쩡하게 포즈를 취하고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사람들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이 화사했건만 엄마 얼굴은 한없이 이그러져 있었다. 한 장만 더 찍자고 해도 한사코 거절했다. 그리고 다시 힘들게 일어나 무거운 돌덩이를 끌고 가는 고행자처럼 선운사로 향했다.

그러나 오래 걷지 못했다. 10m 정도 가서는 무릎에 손을 받치고 구부정하게 서서 숨을 골랐다. 다시 다섯 걸음을 걷다가 앉을 만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이 너무 애처로웠다. 꽃을 보면 늘 먼저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어 달라던 엄마였는데. 오늘은 보기 흉한 얼굴로 사진에 찍히는 것이 싫다며 그 고운 꽃밭에서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았다.
 
선운사 일대에 피어난 꽃무릇
▲ 선운사 꽃무릇 선운사 일대에 피어난 꽃무릇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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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만 가자. 선운사는 여러 번 왔잖아. 잠깐 바람 쐬었으면 됐지 뭐."
"아냐 천천히 쉬엄쉬엄 가면 갈 수 있어."


엄마는 동생 손을 의지해 천천히 산길을 올랐다. 며칠 전에는 철원 은하수교 언덕까지도 거뜬하게 올라갔었는데 며칠 사이에 이렇게 기력이 떨어질 수도 있는 건가. 고령의 노인들은 '밤새 안녕'이라고 한다더니 엄마가 딱 그랬다.
 
2021.9
▲ 선운사  2021.9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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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렇게 다리를 끌듯하면서 선운사 긴 들머리 길을 완주(!)하여 천왕문에 당도했다. 사천왕 앞에서 숨을 고르고 몇 차례나 합장을 했다. 그러고는 또 힘이 드시는지 이번엔 천왕문 벽에 기대어 한참을 서 계셨다. 나는 극락교 위에서 그런 엄마를 지켜보고 서 있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 흐르는 도솔천이 레테의 강처럼 멀게 느껴졌다.

잠시 뒤 동생이 엄마 손을 잡아 주는 것을 보고 난 따로 사진을 찍느라 도솔천 주변에 머물렀다. 나중에 동생에게 들으니 엄마는 대웅보전에 올라가서 불전을 놓고 삼배까지 올렸다고 했다. 늘 해왔던 것처럼. 그러고는 다시 한참을 걸어 내려와 차를 타고 구시포 해수욕장에 온 것이다.

"어디서 잠깐이라도 허리 좀 피고 누웠으면 좋겠다." 저런 말을 할 엄마가 아닌데... 마침 차에 어디선가 사은품으로 받은 그늘막이 실려 있었다. 해변의 콘크리트 계단 턱에 그늘막을 펴고 돗자리와 담요를 깔았다. '엄마 여기 잠깐 누워 봐' 할 사이도 없이 엄마는 그늘막에 벌렁 드러누웠다. "아휴, 이제 살 것 같다." 그 우스꽝스러운 그늘막 안에서 엄마와 함께 일몰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이 일이 생겼다. 당신의 다리가 그렇게 무겁더란다. 결국 그 무거운 다리가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 걸리면서 힘없이 나뒹군 것이다. 그 순간 내 기분은, 조금 과장을 섞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보았다, 엄마의 애처로운 얼굴

엄마의 힘없고 늙은 육체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울음보가 터질 것 같은 엄마의 애처로운 얼굴을 보았다. 그 참담함이라니. 그 찰나는 엄마가 삶을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쇠약해져 가고 있음을 너무도 명징하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슬픔이 밀려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를 일으켜 세워 드리고 몸 상태를 확인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엄마 어디에 걸린 거야?"
"오늘은 다리가 이렇게 무겁다."
"엄마 추석 쇠고 좀 쉬었어야 했는데 꽃 진다고 너무 무리하게 왔나 봐. 엄마 미안."
"엄마도 오늘 좋았어. 바다도 보고, 꽃도 보고."


선운사 앞 점심을 먹었던 식당 여주인이 우리를 보더니 "엄마 모시고 여행 많이 못 다닌 것이 제일 후회가 돼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4년이 지났는데 자주 못 모시고 나간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되더라면서. 딸들이 엄마 모시고 다니는 거 보면 그렇게 부럽고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단다. 어머니 다리에 아직 힘이 있을 때 좋은 데 구경 많이 시켜 드리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엄마, 다리에 힘 없으면 우리가 휠체어 태워서라도 바깥 구경 시켜줄게" 했더니 싫단다. 그렇게는 안 다니고 싶다면서. 
엄마의 말대로 엄마가 당신의 두 다리로 오래도록 세상 구경하셨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휠체어를 태워서라도 엄마랑 같이 여행을 다닐 거다. 그러니 엄마, 걱정마.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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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준회원, NGPA회원 저서: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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