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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상대의 장점을 시인하고 들어가면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 괴테
 
  
3000여 명이 넘는 식객들

전국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고 걸출했던 사람으로, 흔히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 초나라의 춘신군(春申君)을 전국 4공자라 부른다.

그 중에 제나라 왕족인 맹상군은 선정을 베푸는 한편, 널리 인재를 모음으로써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전영이 재상을 지낼 때부터 모은 많은 재산을 털어 재주 있는 식객들을 모아놓고 대접했다. 식객들이 3000천여 명이나 되었지만 귀천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후대했다.

그는 식객들 중에 뛰어난 자를 발탁하여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고 그들을 위해 재산을 아끼지 않아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이다.

그는 손님과 대화할 때면 사람을 시켜 병풍 뒤에서 대화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친척집 주소까지 기록해 두었다가 손님이 작별인사도 하기 전에 사람을 보내 친척들에게 선물을 주는 주도면밀한 '사람관리'로 그의 집에는 항상 식객들로 들끓었다.

맹상군은 계명구도(鷄鳴狗盜), 교토삼굴(狡兎三窟)등의 고사를 만들어 낸 인물로 유명하며, 그를 소재로 한 연극이 지금도 중국에서 연중 무대에 올려지고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도 인기가 높은 인물이다.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이 무렵 맹상군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맹상군의 식객들은 모두 말렸다.

"진나라로 가면 안 됩니다. 가지 마십시오."
"그래도 저쪽에서 초청한 건데 아니 갈 수가 없질 않소?"

맹상군은 제나라의 입장을 생각해서 진나라로 가려고 했다. 그때 소진의 아우인 소대가 다음과 같은 '우화'를 예로 들어 말했다.

"오늘 아침,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나무로 만든 인형과 흙으로 만든 인형이 싸우는 걸 보았습니다. 나무인형이 흙인형에게 '하늘에서 비가 오면 네 몸은 허물어지고 말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흙인형이 '나는 흙에서 출생했으니 허물어지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너는 비가 오면 정처 없이 떠내려가서 다신 돌아오지 못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나운 나라입니다. 그런 곳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흙인형에게 비웃음을 당한 나무인형 꼴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맹상군은 진나라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몇 년 후, 진나라는 경양군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면서 맹상군을 다시 초청했다. 맹상군은 어쩔 수 없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도착하여 소양왕을 알현하고 값비싼 호백구를 예물로 진상했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을 보자 마음에 들어서 곧 자기 나라의 재상으로 기용하려 했다. 그러자 소양왕의 신하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전하, 제나라의 왕족을 재상으로 중용하심은 진나라를 위한 일이 아닌 줄로 아옵니다. 그는 우리 진나라에게는 위험인물입니다. 이 기회에 그를 잡아 가두고 죄를 물어 죽이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번에 그를 놓아 보낸다면 크게 후회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은 깨졌다. 원한을 품고 복수를 꾀할 것이기에 소양왕은 맹상군을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맹상군은 곧 바로 연금되어 숙소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맹상군과 함께 간 식객들은 진나라에서 벗어나 무사히 제나라로 돌아갈 방책을 논의했다. 식객 중에 진나라 소왕의 애첩 총희와 잘 통하는 사람이 있었다.

"염려 마십시오. 소왕이 총애하는 애첩으로 하여금 승상을 석방하게 해달라고 부탁해 보겠습니다."

그 식객은 곧 총희를 만나 부탁했다.

"맹상군은 흰여우 가죽으로 만든 '호백구'라는 귀한 옷을 갖고 있다 들었소. 그것을 주면 힘써보지요."

식객은 이와 같은 총희의 말을 맹상군에게 와서 전했다.

"허어, 큰일이군. 하나밖에 없는 그 옷은 이미 소왕에게 바쳤는데."

호백구라는 그 옷은 값이 천금이나 나가는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었다.

"염려 마십시오. 그 호백구를 제가 훔쳐오겠습니다."

한 볼품없이 생긴 식객 하나가 선뜻 나섰다.

"그대가 어떻게?"
"저는 전직이 도둑이었습니다."

밤에 나간 그 식객은 새벽녘이 되자 진나라 보물 창고 깊숙이 숨겨져 있던 호백구를 훔쳐가지고 돌아왔다.

맹상군에게서 호백구를 선물 받은 총희는 곧 소왕을 만나 간곡하게 부탁했다. 애첩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는 소왕은 곧 맹상군을 연금 상태에서 풀어주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맹상군 일행은 몰래 진나라 궁궐을 빠져나와 국경인 함곡관(函谷關)까지 왔다. 그런데 관문이 꼭 잠겨 있었다. 당시에는 첫닭이 울어야 관문을 열게 되어 있었다. 야반도주를 한 맹상군 일행은 진나라 관군이 추격해 올까봐 새벽까지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한편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 일행이 몰래 궁궐을 빠져나간 것을 알고 크게 노했다.

"맹상군을 풀어준 것은 과인의 실수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맹상군이 아직 함곡관을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차피 새벽이 되어야 관문이 열릴 것이니 서둘러 추격하라."

소왕은 추격병을 함곡관으로 출동시켰다. 맹상군 일행은 함곡관 관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식객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말했다.

"제가 관문을 열어 보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맹상군은 반색을 했다.

"앉아서 구경만 하십시오."

그 식객은 입을 오므려 닭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인근의 닭들이 모두 그 소리를 흉내내어 울었다. 함곡관을 지키던 문지기들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니 벌써 새벽인가?"


문지기들이 관문을 열자, 맹상군 일행은 미리 가짜로 만들어두었던 통행증을 제시하고 무사히 함곡관을 벗어나 제나라로 돌아왔다. 추격병이 관문에 닿은 것은 그 직후였다고 한다.

그래서 계명구도(鷄鳴狗盜)란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볼품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 가지 재주는 타고 나므로 반드시 쓰일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일화다. 평소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람은 위기가 닥쳤을 때 도움을 받는다.
  
전국 4공자와 여불위

전국 시대 말엽, 전국 4공자인 제나라 맹상군, 조나라 평원군, 초나라 춘신군, 위나라 신릉군이 저마다 유능한 식객이 많음을 자랑하고 있을 때, 이들에게 질세라 식객을 모아들인 사람이 있었다.

일개 상인 출신으로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상국(相國)이 되어, 어린 왕 정(政:훗날의 시황제)으로부터 중부(仲父)라 불리며 위세를 떨친 문신후(文信侯) 여불위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정의 아버지인 장양왕(莊襄王) 자초(子楚)가 태자가 되기 전 인질로 조나라에 있을 때 '기화가거(奇貨可居)'라며 천금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그를 왕으로 만들어 낸 여불위였다. 그는 막대한 사제를 풀어 3000여 명의 식객을 불러 모았다. 이 무렵은 춘추전국 시대의 말기로서 제자백가 사상이 아주 무르익었을 때임으로 각국에서는 많은 책을 펴내고 있었다.

여불위는 순자가 수만 단어나 되는 서적을 펴냈다는 소식을 듣자, 당장 식객들 중에 학문이 깊은 자들을 시켜 30여만 단어에 이르는 대작을 만들었다. 이 책은 천지만물, 고금(古今)의 일이 모두 적혀 있는 오늘날의 백과사전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대작은 나 말고 누가 감히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의기양양해진 여불위는 이 책에 자기의 이름을 붙여서 '여씨춘추(呂氏春秋)'라 이름 붙였다. 이는 공자의 '춘추'를 의식한 때문이었다. 여불위는 여씨춘추를 도읍인 함양(咸陽)의 성문 앞에 진열시킨 다음 이렇게 써 붙였다.

"누구든지 이 책에서 한 자라도 더 빼는 사람에게는 천금의 상금을 주리라."

이것은 장사꾼으로 뛰어났던 여불위가 우수한 인재를 끌어 모으려는 방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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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문학과 창작 소설 당선 2017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아님슈타인의 시>, <모르는 곳으로>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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