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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즐겼던 온천 때문이었을까? 평소 같으면 여독으로 피폐해졌을 몸이 웬일로 개운하다. 이번엔 조금 더 난이도를 높여서 이천을 대표하는 명산 설봉산을 오르면서 알아가 보기로 한다. 그전에 전날 미처 방문하지 못한 시내 한복판에 숨겨져 있는 문화재 하나를 찾아간다. 이천의 중리동 행정복지센터 한복판에 자리한 중리삼층석탑이 바로 그것이다.

원래 이천의 야산에 무너진 채로 흩어져 있던 것을 19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욺겨 복원했다고 한다. 국보나 보물급의 탑처럼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백제와 신라의 양식을 섞어 만든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당당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재를 중리동 주민들은 늘 곁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이 동네의 역사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천 중리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자리하고 있는 중리동 3층석탑은 백제와 신라의 양식이 합쳐진 고려초기의 석탑이다.
▲ 중리동 3층석탑 이천 중리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자리하고 있는 중리동 3층석탑은 백제와 신라의 양식이 합쳐진 고려초기의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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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리동 행정복지센터 맞은 편 로터리에는 서희의 동상이 늠름한 자태로 서 있었다. 이천에서 서희의 존재감이 꽤 큰 것 같았다. 이천에서 가장 유명한 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설봉산은 도심에서 멀지 않아 많은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설봉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설봉저수지와 조각공원, 박물관, 미술관 등이 모여 있어 굳이 산행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하루를 보낼만한 명소들이 널려있는 장소다.

하지만 설봉산을 오르지 않는다면 그 산이 담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살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한번 힘을 내어 400미터에 가까운 산을 한번 올라가 보기로 한다. 설봉산은 이천에서도 가장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이천으로 가는 중요한 요충지면서 이천평야를 얻을 수 있게 되는 주요 지점이었다. 
 
설봉산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설봉산성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치열한 영역다툼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유적이다.
▲ 설봉산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설봉산성 설봉산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설봉산성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치열한 영역다툼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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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삼국시대부터 치열한 전장의 흔적이 산으로 가는 곳곳에 남아있었다. 특히 산 능선에 자리한 설봉산성은 예전 그때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유적이다. 꽤 힘든 등산길을 40분 정도 오르다 보면 예전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설봉산성의 성벽을 만날 수 있다. 설봉산성은 관고리성지 또는 무안산성이라고 불리며, 북쪽과 남쪽은 물론 주변지역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예전 단국대학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백제 토기가 다수 출토되어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백제 석성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통일신라시대의 기와, 토기, 철기류 등 수많은 유물이 끊임없이 발굴되었다. 9세기 중엽까지는 성의 기능을 유지했다고 하니 계속해서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짐작케 해준다.
  
이천의 진산이자 대표하는 명산인 설봉산은 각 봉우리와 계곡마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 이천의 진산 설봉산 정상 이천의 진산이자 대표하는 명산인 설봉산은 각 봉우리와 계곡마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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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산은 능선길로 이어진다. 설봉산은 수많은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므로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야 해서 마냥 쉬운 산은 아니다. 첫 봉우리인 성화봉에서는 그 당시 봉화를 올렸던 봉화대도 만날 수 있고, 사직단과 산성에서 장수가 지휘를 했었던 남장대지터까지 만날 수 있어 설봉산은 이천을 대표하는 산이라 할만하다.

이제 연자봉, 서희봉을 거쳐 어느새 설봉산 정상인 희망봉까지 다다랐다. 생각보다 시야가 확 트여있지 않았지만 정상에 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뿌듯함이 가슴속에서 밀려오는 듯하다. 이제 설봉산을 내려가면서 다른 이천의 문화재들을 찾아볼 시간이다. 설봉산 중턱에 자리 잡은 영월암에는 이천의 보물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설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오래된 고찰인 영월암은 대웅전 뒷편에 보물로 지정된 마애여래불상이 있다.
▲ 설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오래된 고찰 영월암 설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오래된 고찰인 영월암은 대웅전 뒷편에 보물로 지정된 마애여래불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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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규모의 영월암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고, 고려시대 나옹대사가 거쳐갔던 절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수령이 600년이 넘은 은행나무는 나옹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설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천의 대표적인 고찰로 자리잡은 영월암도 1907년 이천에서 의병이 크게 일어났을 때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대웅전 뒤편 계단을 오르다 보면 고려시대 지방 호족이 조성했다고 하는 보물 822호 마애여래입상을 만나게 된다.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라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피기 어려웠지만 고려시대 특유의 개성 넘치고 호방한 자태를 엿볼 수 있었다.

그밖에도 설봉산 기슭에는 화가 월전 장우성을 기리는 월전미술관, 설봉서원, 관고리 오층석탑, 이천 시립미술관까지 수많은 문화재와 문화시설을 만날 수 있으니 시간을 널널하게 잡고 돌아봐야 할 곳이다. 아름다운 설봉저수지 호숫가에서 가벼운 발걸음을 마지막으로 이천시내를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이천의 남부 장호원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꽤 넓은 논밭 한가운데 자채방아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지금이야 평범한 농촌 마을에 불과하지만 예전에 양년대군이 이천 유배 생활 당시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자채쌀은 이천을 중심으로 인접해 있는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었던 양질의 올벼라는 뜻으로 맛과 품질이 뛰어나 양녕대군이 세종에게 진상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천쌀이 진상미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설도 있을 정도다.

여기는 양녕대군의 유적지로 유추되는 무우정, 양샘, 군들 등이 있다. 현재는 마을 한복판에 양녕대군 기념관도 있지만 찾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마을 뒤편 언덕에 솟아있는 무우정에 올라가 넓게 펼쳐진 이천의 들판을 바라본다. 푸른색 들판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호방한 기운이 솟아오른다.

세자의 위치해서 쫓겨나 원 없이 자기 인생을 즐기며 살았던 양녕대군의 진정한 마음은 어떠했을까? 분위기를 바꿔 요즘 이천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한 시몬스 테라스로 마지막 발걸음을 이어가 본다. 
 
이천에 있는 가구공장을 이용해서 만든 시몬스 테라스는 이천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 이천의 새로운 명소 시몬스 테라스 이천에 있는 가구공장을 이용해서 만든 시몬스 테라스는 이천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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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은 영동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교차점에 있다. 덕분에 그 길을 따라 거대한 물류창고들을 심상치 않게 마주하게 된다. 자연스레 물류가 중요한 가구공장들이 이천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중 하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시몬스 침대 공장이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브랜드지만 굳이 공장을 왜 소개하나 의문을 표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물건을 생산하는 옛 공장을 카페와 박물관 쇼룸으로 개조하고, 현재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공장을 잔디밭 뒤로 펼쳐 놓게 함으로서 사진이 잘 받는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시몬스 테라스를 마지막으로 이천의 단락이 마무리 되었다. 우리가 그동안 이천쌀로만 알고 있던 이천이지만 정작 쌀의 매력보단 도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어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그런 도시였다. 다음 경기도의 고장에는 어떤 장소가 우리를 기다릴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모르는경기도 : 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절찬리 판매중입니다. 다음 브런치,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했고, 사진자료 등을 더욱 추가해서 한번에 보기 편해졌습니다. 경기도 여행은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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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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