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던 관부연락선 곤론마루호 모습으로 1943년 10월 5일 새벽 1시 15분 일본 후쿠오카시 무나카타 오키노 섬 10해리 지점에서 미군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를 맞고 격침되었다.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던 관부연락선 곤론마루호 모습으로 1943년 10월 5일 새벽 1시 15분 일본 후쿠오카시 무나카타 오키노 섬 10해리 지점에서 미군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를 맞고 격침되었다.
ⓒ 김문길 교수 소장자료

관련사진보기

곤론마루호가 1943년 10월 5일 새벽 1시 15분 일본 후쿠오카시 무나카타 오키노 섬 10해리 지점에서 미군 잠수함에 의해 피격된  지점을 나타낸 지도로 격침된 장소는 시모노세키와 대마도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곤론마루호가 1943년 10월 5일 새벽 1시 15분 일본 후쿠오카시 무나카타 오키노 섬 10해리 지점에서 미군 잠수함에 의해 피격된 지점을 나타낸 지도로 격침된 장소는 시모노세키와 대마도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 김문길 교수 소장자료

관련사진보기

 
78년 전인 1943년 10월 5일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왕래하던 관부연락선 '곤론마루 격침사건'을 보도 금지한 새로운 문서가 발견됐다.

'곤론마루'는 7500톤급 배로 일제강점기 시절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왕래하던 관부연락선이다. 당시 민간인을 태우고 다녔던 여객선이었지만 전쟁 시에는 군수품을 싣기도 하고 강제징용자와 위안부 피해자 등도 태웠던 배였다. 때문에 조선인에겐 한 맺힌 배이기도 하다. 

곤론마루는 1943년 10월 4일 오전 11시 5분에 시모노세키를 출항해 5일 새벽 1시 15분 일본 후쿠오카시 무나카타 오키노 섬 10해리 지점에서 미군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를 맞고 격침됐다.

당시 곤론마루는 일본군 2000여 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동경에서 출발한 일본군들이 탄 열차가 도중에 고장이 나 곤론마루에 승선할 수 없게 되자 민간인 655명(기관승무원 포함)만 태우고 출발했다.

일본군들이 승선한 것으로 판단한 미 잠수함은 어뢰를 발사해 곤론마루를 격침시켰다. 72명만 살아남았다. 2016년부터 이 사건을 추적하던 김문길 부산외국어대학 명예교수(한일문화연구소장)는 사망명부를 당시 일본 산요철도 운송회사(현 일본국철인 JR)에서 겨우 입수했다. 어려움도 있었다. 당시 승선인들은 창씨개명 한 사람들만 태웠으니 전부 일본식 이름뿐이었기 때문이다.
 
김문길 교수가 발견한 새로운 문서
총독부 "황군 사기 꺾지 않도록 모든 내용 함구하라"

 
곤론마루호가 격침된 지 21일째 되던 날 총독부가 경남 통영군내 각 면장 앞으로 보낸 '계발선전' 문서로 사건에 관해 논하는자는 엄벌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곤론마루호가 격침된 지 21일째 되던 날 총독부가 경남 통영군내 각 면장 앞으로 보낸 "계발선전" 문서로 사건에 관해 논하는자는 엄벌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 김문길 교수 소장자료

관련사진보기

 
2016년부터 곤론마루 사건이 보도 금지된 연유를 추적하던 김문길 교수는 2021년 10월이 돼서야 자세한 전말을 파악했다. 사건을 알고 있는 단 한 명의 유족이 제공한 자료(1943.10. 26. 경남 통영군 발행)를 보면 사고 수습보다 사고 자체를 숨기고 유족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유족 입을 막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다음은 사고난 지 21일째 되던 날(1943년 10월 26일) 각 면장 앞으로 보낸 '계발선전(啓發宣傳)' 문서다. 이 문서는 조선총독부의 지시 문건이다. 문서내용은 '이 사건은 국위를 선양해야 할 사건, 즉 전쟁에 해가 되지 않고 황군의 사기를 꺾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군사 작전에 관하여 비판을 더하는 것이 없도록 할 것
▲우리 국토에 불안전한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할 것
▲앞으로 불요 불급한 여행을 자숙하도록 할 것
▲특히 이번 사고에 관하여 크게 논하는 자는 엄하게 다스리겠다


전쟁이 끝나고 희생된 일본인들은 보상을 받았지만 조선인들은 보상은커녕 희생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당시 곤론마루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김영자씨(85, 통영 본적)는 2018년 655명 대표로 추모제를 지냈고 김문길 교수와 함께 사고 현장을 답사했었다.

곤론마루 사건에 대해 일본학자 히로세 유이치(나고야 박물관 연구교수)는 "조선인들은 너무 억울하다. 코로나가 있어도 추모제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사고를 숨겼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영자씨 부친은 당시 경남 통영에서 큰 사업을 하면서 중국 상해와 일본을 왕래했기 때문에 곤론마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어려움을 당한 김영자씨는 85년을 눈물로 세상을 보내고 있다.

오는 10월 5일, 곤론마루 사건 78주기를 맞은 부산 온천천 세병교 인근에서는 김문길 교수와 유족,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가한 가운데 위령제가 열릴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곤론마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