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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2021년 8월 올림픽이 끝나면서, 8월 말 2만을 웃돌던 신규확진자수가 10월3일 오전 기준 1246명으로 줄어들었다. 

8월말 전국적으로 이동에 대한 자숙요청이 계속되던 가운데, 나고야 중부공항에서 출발하는 오전 7시45분 후쿠오카행 비행기는 좌석을 3분의 1정도 채우고 이륙했다. 이렇게라도 승객을 태울 수 있었던 것은 편수를 줄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2부에서는 우선 쇼카 손주쿠(松下村塾)에 대한 기사를 보낼 예정인데, 이와 관련한 장소를 둘러보기 위해 야마구치현 하기시를 방문했다. 쇼카 손주쿠에 대한 기획기사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과 그의 제자들의 사고와 행동이 과거와 오늘의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서다. 
 
필자가 다녀온 하기시. 하천으로 둘러싸인 지역이 하기시 증심부다
 필자가 다녀온 하기시. 하천으로 둘러싸인 지역이 하기시 증심부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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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기를 중심으로 조슈번에서 성장한 이들이 메이지유신을 전후로 하여 오늘날까지 150여년을 아우르는 기간 동안 한반도에 미친 영향을 되돌아 보려고 한다. 조슈번에서 성장하여 메이지유신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들은 오늘날 일본에서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과 대립이 숨겨져 있다고 본다. 하기시는 조슈번의 본거지로 야마구찌현에 속해 있는데, 산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동해를 바라보는 인구 4만 3천의 작은 도시다. 

조카마치(城下町)는 에도기가 시작하기 전후로, 일본에서 전개되는 도시 형태다. 도꾸가와 막부이후, 전투가 줄어들어 성을 중심으로 한 방위보다는 성아래 까지 행정, 상업시설이 들어서는데, 주로 무사계급이 거주하며 방위를 한다는 구상이었다.

여기에 조슈번의 중심이었던 하기는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델타지대로 하천으로 둘러싸여 자연적으로 방위가 수월한 지역이다. 앞으로 소개할 기사의 주인공들은 거의 하기의 조카마치를 중심으로 태어나 성장한 조슈번의 무사계급 집안 출신이다. 1863년 번청을 하기성에서 야마구치성(현, 야마구치시)으로 옮겼고, 메이지유신후, 1874년 폐성령(廃城令)에 의해 하기성을 허물었다.
 
하기의 조우카마치(城下町), 기도의 옛집
 하기의 조우카마치(城下町), 기도의 옛집
ⓒ 김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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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시 조카마치에 있는 하기시박물관은 역사전시실을 개설하고 있어 상시 관람이 가능한데, 코로나19 때문이라며 홈페이지에는 다른 현에서 오는 관람객은 입장을 자제하여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또 8월말부터는 다른 시에서 오는 관람객도 입장을 자제해 달라는 협조문으로 자숙을 더욱 강조했다. 하지만 관람자가 신상정보를 기입해 제출하면, 입장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물관에 입장하여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1839~1867) 전시실을 둘러볼 수 있었다. 다카스기의 편지 등 서류와 함께 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1840~1864)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구사카는 요시다 쇼인의 매제가 되는데, 다카스기와 구사카는 요시다의 문하생이다. 하기시박물관의 전시물만 보더라도, 요시다 쇼인과 쇼카 손주쿠가 하기시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시다 쇼인이 손주쿠에서 가르친 시기는 2년 4개월이었고, 생을 마감한 것은 만으로 30년이 안되는 짧은 세월이었지만, 제자들의 의해 그의 꿈이 계승되면서 메이지유신을 전후로 하여, 일본의 변혁기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손주쿠(村塾)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번교(藩校)가 아니라 사학(私学)이라는 뜻인데, 손(村)이라고 붙인 것은 공교육 중심기관인 번교와 구별하기 위함이다. 

손주쿠로 이동하니, 자숙기간 중인데도 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이 손주쿠로 입장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교육적인 의미가 큰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쇼카 손주쿠, 요시다 쇼인이 실제로 가르치던 교실 모습이다.
 쇼카 손주쿠, 요시다 쇼인이 실제로 가르치던 교실 모습이다.
ⓒ 김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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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카 손주쿠는 우리나라 서당과 비슷한 곳으로 일본식 초가집에서 가르치던 곳을 보존하여 기념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을 교육의 화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가 꿈꾸고 있던 일본은 외세, 특히 미국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막부와 조슈번에 저항하여 끝내 죽임을 당하는데, 이후 제자들이 그를 대신하여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다른 매체에 게재한 적이 없습니다.


태그:#혐한 , #지한,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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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외형적인 성장과 함께 그 내면에 자리잡은 성숙도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고민하면서 관찰하고 있는 일본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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