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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
 잃어버린 영혼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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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을 아주 많이, 빨리 하는 사람이었지요. (중략) 어느 날, 출장길의 호텔 방에서 한밤 중에 잠이 깬 남자는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올가 토카르축이 글을 쓴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은 이렇게 말문을 엽니다.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기분', 아니 정말 숨이 막힙니다. 마흔 즈음인 거 같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익숙한 병명인 '공황 장애'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전입니다. 늦여름 저녁 무렵 집 천장이 나를 내리누르는 것같더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당연히 그런 증상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던 저는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대다가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심전도 검사를 하고는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장 숨이 막혀 죽을 거 같은데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숨을 못쉬겠다고 호소하니 산소 마스크를 씌워줬는데 그게 더 힘들었습니다. 몇 년인가 더 시간이 흐르고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고백하는 걸 보며 당시 저의 증상이 '공황 장애'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몸 속에 어떤 사람도 없는 것같은 느낌이었지요.'

<잃어버린 영혼>의 주인공은 심지어 자신이 누군인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안제이인가? 마리안인가? 드렁크 바닥에서 여권을 찾아내서야 자신의 이름이 '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름을 잃어버린 남자

이렇게 숨이 막히는 '공황 장애'에서부터 그림책 속 얀처럼 자신의 '존재'마저 놓쳐버리는 것을 '신체화' 증상이라고 합니다. '심리적 갈등이 감각기관이나 근육계의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그런 얀에 대해 <잃어버린 영혼>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혼은 어딘가 멀리 두고 온 지 오래였습니다. 오히려 잘 살 수 있었습니다. ...... 다만 가끔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평평한 듯한 기분이 들기는 했습니다. 마치 수학 공책의 가지런한 모눈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현실이 녹록치 않을 때 내 마음은 '신호'를 보냅니다.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는 거죠.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보내는 신호가 '불안'해서, 그 마음의 신호를 '억누릅니다.' 얀처럼 말이죠. 모눈 종이 눈금 위를 움직이는 좌표처럼 살아갑니다. 세상이 정해준 공식처럼 살아가는 삶은 편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억눌렀던 마음은 어디 가지 않습니다. 결국 '억압'당한 마음이 '관리'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르면 내가 현실과 맺었던 '끈'을 놓게 됩니다. 얀처럼 숨을 못쉴 거 같다거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잊어버릴 지경에 이르게 되기도 합니다. 

하필이면 얀은 왜 자신의 이름조차 잊었을까요? 아니 혹시 모눈종이 위의 삶이 버거웠던 얀은 자신이 누군인지 잊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요즘으로 치면 '번아웃'(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에너지가 방전 된 것처럼 무기력해지는 증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얀은 현명하고 나이든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 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 영혼은 머리를 잃고, 사람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거죠. 

영혼을 잃었다네요. 아주 먼 옛날, 우주 대폭발 직후에 생겨난 영혼, 우주가 빨리 돌아가지 않았을 때는 거울을 통해 볼 수도 있었다는 영혼을 얀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어떤 장소로 가서 영혼을 기다려야 한다고 의사는 말합니다.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영혼 
 
잃어버린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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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말대로 오랜 시간을 걸려 얀이 만난 영혼은 지치고, 더럽고, 할퀴어져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 나타난 '잃어버린 영혼'은 무엇일까요? 

<용비어천가>에 등장한 '어린 백성이'에서 '어린'은 '나이가 어린'이 아니라 '미숙하다'란 의미입니다. 미숙하다란 뜻이 후에 '나이가 어린'이란 의미로 '확장'되어 사용됩니다. '미숙하다'는 건 이성의 잣대로 컨트롤되기 이전의 상황이 아닐까요. 이성적인 '자아', 그 이전의 영역  프로이트는 이를 '무의식'이라 명명합니다. 

프로이트는 드러난 '나'라는 수면 아래 엄청난 빙산 덩어리와 같은 '무의식(id)'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프로이트 시대 '무의식'은 주로 성적이거나 자기 파괴적인 본능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보다 복잡해지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인정 욕구나, 그 반대의 질투의 감정들도 '무의식'의 영역이 되었습니다(<프로이트의 의자> 중에서).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내 안의 '어린 아이'와 같은 '욕망'을 짖누르고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에 맞추려고 애씁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지만 <잃어버린 영혼> 속 얀과 얀의 잃어버린 영혼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이드(id)'와, 그런 이드를 억누르고 사회적 가치관과 도덕을 앞세우는 '초자아(superego)'가 우리 안에서 다툼을 벌입니다. '이드'와 '초자아'가 서로 자기 주장을 하는 가운데, '자아'(ego)가 중재를 하려 애를 쓰는 게 바로 우리가 '갈등'하고 '번민'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은 자아가 일방적으로 '초자아'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이드'가 집을 나가버린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까짓 집나간 이드 냅둬버리고 살아가면 어때? 하면 결국 얀처럼 되곤 하지요. 얀은 집나간 이드, 영혼을 기다립니다. 머리가 길게 자라고 수염이 허리에 닿을 때까지.
 
잃어버린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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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린 그림 한 장, 한 장은 그 자체로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는' 과정입니다. 모눈종이 위 눈금 같은 삶에서 '자유'로워 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용히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림책은 말합니다. 

벗어서 묻은 시계에서는 종 모양의 식물이 자라고, 트렁크에서는 커다란 호박이 열렸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시계'의 발명과 함께 '시간' 속에 인간을 가두었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모눈 종이 위의 좌표 같은 현대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지요. 

<잃어버린 영혼>은 톱니바퀴 같은 '시간'에서 놓여나, 지나온 시간 그 어디선가 손을 놓아버린 '어린 영혼'과 같은 이드에 귀기울이라 말합니다. 당신 내면의 무의식이 당신에게 전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지금 당신의 영혼은 어디쯤 있나요? 여전히 제 '어린 영혼'은 손이 닿을락 말락 제 주변을 맴도는 거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게재됩니다.


잃어버린 영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은이),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긴이), 사계절(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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