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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70점 인생
 
젊은 시절의 나는 삶의 정답을 맞추기 위해 애썼다.
 젊은 시절의 나는 삶의 정답을 맞추기 위해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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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70점만 노력해도 100점이 되는데, 왜 나는 100점을 노력해도 70점 밖에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막 30대 중반을 넘어선 A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젊은 시절의 기억을 소환했다. 젊은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어딘가 숨어서 숨죽여 우는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눈물이 많은 타입이었다.

상사한테 깨져서, 일이 힘들어서, 동료와 싸워서 울었다. 동료와 독하게 싸워놓고 화장실에 가서 몰래 우는 타입이었다. 외로워서 울었고, 애써 모아놓은 돈을 누군가 가져가서 울었다. 울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다고 타인 앞에서 울기는 싫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오기가 있었다.

남몰래 숨어서 우는 장소는 회사 1층 화장실이나 백화점 화장실이었다. 칸이 많은 넓은 화장실에 들어가야 다음 사람이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실컷 울 수 있으니까. 실컷 울고 나면 신기하게도 다시 살아갈 힘을 조금 얻곤 했다. 벌개지고 퉁퉁 부은 눈을 얻긴 했지만.

자신의 인생이 100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젊은 시절의 나는 분명 100점짜리 인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100점이 되고자 했던 분야는 돈이었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었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지만, 가난으로 인해 불행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돈에 대해 더욱 절실한 법이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나는 줄기차게 돈 버는 방법을 궁리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 식당 서빙, 주유소, 카페, 패스트푸드점 직원, 과외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장학금을 타야 다음 학기 학업을 유지할 수 있었으므로 공부도 열심히 했다. 졸업 후 취업할 때는 월급이 밀리지 않을 정도의 규모인지가 가장 중요했다.

간신히 대기업에 취업을 했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든 회사는 나를 버릴 수 있고, 내 근로소득이 끝나는 날, 나는 다시 가난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회사 말고 다른 일로도 돈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에는 길거리에서 옷을 팔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화장품을 팔기도 했다.

주식과 부동산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자기계발서를 수십 권 읽었다. 그대로만 따라하면 나도 곧 그들처럼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상상했다. 새벽기상을 하고, 1년에 100권의 책을 읽으며, 매해, 매달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려 애썼다. 비전보드도 만들어 벽에 붙여놓고, 잡지에서 성공한 사람의 사진을 잘라서 지갑에 넣고 다녔다. 사주팔자도 열심히 보러 다녔다. 나에게 재물운이 있는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나는, 내 삶이 이해되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나는, 내 삶이 이해되지 않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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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직장일 이외에 벌였던 대부분의 일들은 실패였다. 길거리에서 팔던 옷은 재고가 넘쳐나서 손해를 보고 접었고, 남은 옷들은 친구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거나 기증했다. 화장품 쇼핑몰은 제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헐값에 넘겼다.

주식은 망하는 사람이 대부분 그러하듯 사면 내려갔고, 팔면 올라갔다. 부동산은 투자할 돈이 없었다. 부동산 투자는 고사하고 내 몸 하나 누울 방 하나가 시급했던 시절이었다. 결혼 후에도 가난한 건 마찬가지여서, 20대, 30대를 생계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될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30대를 지나면서 비전보드와 성공한 사람의 사진은 버려졌다. 세상이 날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했고, 나의 어리석음에 절망했다. 나는 안 되는 걸까? 끈기, 노력, 어느 것 하나 따라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왜 나는 성공한 그들처럼 되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머리가 나쁜가? 운이 없나? 전생에 나라를 세 개쯤 팔아먹기라도 한 건가?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왔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고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공평해지고 싶었다. 신이 있다면 묻고 싶었다. 당신은 왜 나에게 이런 삶을 주었느냐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환상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40대 후반을 맞이했다. 젊은 시절에 꿈꾸었던 큰 성공이나 남들이 부자라고 부를 만큼의 부를 갖춘 건 아니지만, 요즈음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조금 다가선 느낌이다.

성공의 정의부터 달라졌다. 체력의 한계, 내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과하게 기대하는 마음도 없어졌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한정된 시간 동안 내가 이루고 싶은 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무엇을 누리고 싶은지, 스스로 이상과 현실의 갭을 좁혀가고 있다고나 할까. 어쩌면 인생은 욕망을 계속 낮추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삶의 수준은 좋은 사람한테 밥 한 끼 정도 살 수 있는 여유, 읽고 싶은 책 살 수 있는 여유, 돈 생각 안 하고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 1년에 몇 번은 여행할 수 있는 여유다. 딱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다. 그리 큰 것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조급했나 싶어 젊은 시절의 내가 안쓰럽다. 가끔 나의 여유로움에 '내가 배가 불렀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이내 '배 좀 부르면 어때?' 하고 결론을 내린다.

언젠가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는 20대, 30대도 노력했는데 그땐 실패하고, 왜 지금은 나아진 걸까?"

남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운."

피식 웃음이 났다. 인정하긴 싫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다. 인간은 그저 노력할 뿐, 결과의 성패나 크기는 신이 결정하는 것 아닐까. 지금은 노력해도 안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비전보드나 상상속의 성공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편이 더 낫다. 그래야 계속 실패를 수정하면서 노력할 수 있으니까.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제일 먼저 그냥 울어도 된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제일 먼저 그냥 울어도 된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 미리캔버스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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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나는 성공이라는 키워드만 찾았다. 실패란 키워드는 검색 대상이 아니었다. 삶을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체력은 실패를 딛고 일어섰을 때 길러졌다. 그 과정이 무척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당연한 이야기를 몸으로 체득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나는 비로소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나면 우선 숨어서 울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는 게 뭐 어때서, 라고 말이다. 그리고 조급해 하지 말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너에겐 시간이 필요하다고, 너는 조금 느린 사람이라고.

대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장점이 있으니 기왕이면 힘 빼고, 조금씩 즐기면서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열정을 한꺼번에 몰입하기보다 조금씩 나누어서 오래 갈 채비를 하라고. 그리고,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다.

너는 어떻게든 네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고. 그러니 조금 여유를 가지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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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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