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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의 공동 육아, 공동 가사가 워라밸의 시작입니다
 엄마와 아빠의 공동 육아, 공동 가사가 워라밸의 시작입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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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수화가 너머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에 잘못 걸었나 싶었다.

"네, 누리(가명) 아빠입니다!"

활달한 음성의 목소리. 누리가 아빠의 말투를 닮은 모양이다.

코로나로 학부모와 만나기는 어렵지만 통화는 가능하다. 전화 상담으로 2학기 학부모 상담을 진행 중이다. 20여 년 교직에 있는 동안 많은 학부모들을 만나 왔다. '학부모'라고 했지만 '학생의 어머니'의 다른 말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 같다.

대면 상담 시 어쩌다 학생의 어머님과 아버님이 함께 오시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게 어머니 혼자 오시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임교사에게 학생의 아버지란 존재는, 사안의 심각성이 크거나 어머님과의 지속적인 상담으로도 학생의 문제에 변화가 없을 때만 활용하는 '비밀 병기' 같은 것이다.

누리 아버지는 평소 아이의 학교 생활이나 교우 관계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고 하셨다. 딸에 대해 꼭 아이 담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노라고, 아빠로서 아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고 하셨다. 초등 2학년 딸아이의 친구 이름을 꿰고 있는 아버지라니, 모처럼 만나는 바람직한 MZ 세대 아빠다.

아빠가 어린 자녀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것은 아이에게 굉장히 좋은 신호다. 특히 사회적인 활동 범위가 상대적으로 더 넓은 아빠와 자주 대화를 나눈 딸일수록 사회성과 리더십이 큰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평소 누리가 구김살 없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으며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는 아이의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분명, 아빠의 관심이 큰 지지기반이 되었을 터다.

누리 아버님께서 내 책 <본캐가 2학년 담임입니다>에 있는 글 내용을 인용하시며 아이가 잃어버린 1학년 학교생활을 언급하셨을 때는 속으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토록 딸의 교육에 진심인 아빠는 나의 20년 교직 경력에도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젊은 아빠들이 더 많아진다면

언제나 학교 생활, 교우 관계, 진로 문제 등 아이에 대해 알고 싶어 하던 분들은 '엄마'들이었다. 자신 몸의 일부였던 아이가 세상에 나와 세상의 한 부분이 되어가는 과정을 마주하는 일은 부모로서 맞는 경이로운 체험이다. 문제는, 그 경이로움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엄마 몫으로만 돌린다는 것이다.

담임이 들려주는 아이의 학교 생활에서 뭔가 아이에 대해 걱정스러운 점을 발견하면 그저 내 탓인 것만 같은 것이 자식을 세상에 내어놓은 모든 엄마들의 마음일 것이다. 아이에 대한 칭찬에도, 우려에도 코끝이 시큰해지는 이는 상담에 임하는 엄마들이다. 그렇기에 학부모 상담에서 이렇게 아이에 대해 진심인 아빠를 만난다는 것은 참 마음 따뜻해지는 일이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대를 살았다. 우리의 부모들이 더 많은 자식을 낳아 길러내셨으니 그보다 적은 수의 자녀를 길러내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 싶었다. 가부장적인 시스템 속에서 자라난 남편과 아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사회 문화 속에서 부모 역할 분담의 조화로운 롤 모델을 보고 배우지 못해 갈팡질팡했다.

자녀들에게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시기에 젊은 아빠들은 일과 한 몸이 되어야 했고, 일은 퇴근 후에도 아빠를 따라다니기 일쑤였다. 일주일 동안 일과 인간관계에 치인 아빠들은 모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에도 일주일간의 부족한 잠과 피로를 충당하느라 여력이 없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은 급급한 삶을 살아내는 보통의 아빠들에게, 특히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에게는 이상에 불과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이 실천하는 공동 육아와 가사 이야기, 그것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실현해 가는 모습은 참으로 부럽다. 과거의 아빠들보다 권위를 내려놓고 가족 모두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함께하는 젊은 아빠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아이들은 더 큰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일과 가정 밖의 관계에 얽혀 사느라 어린 자녀들의 모습을 모르고 살았던 아빠들이라면, 자녀들에게 자율성을 길러주었다는 쓸데없는 변명일랑 하지 말고, 속히 가족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난 뒤 힘과 권위가 사그라든 나약해진 아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이들은 '가족' 뿐일 테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시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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