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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가 구원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카레는 애인이 '카레를 먹고 싶다'라고 이야기해야만 카레요리 전문점에 찾아가 먹었던 음식이었다. 지금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카레라는 요리를 변주하는 주방의 지휘자가 되었다.

내가 아는 카레라고는 어렸을 적 엄마가 해줬던 카레와 학교 급식으로 나오는 카레, 그리고 3분 만에 완성되는 기적 같은 카레가 전부였다. 어렸을 적에는 집이 아닌 곳에서 먹는 카레는 전부 맛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엄마가 해줬던 카레 속 고소하면서도 폭폭 익은 감자의 맛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게 내가 아는 카레다. 

카레의 종주국 인도에서 카레의 정수를 맛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인도에서 먹는 카레는 필히 무언가 다를 것이다. 어쨌건 돈을 지불하고 외식할 일이 있으면 카레만큼은 피했다. 피했다기보다 아예 카레 자체를 식사 메뉴로 떠올리지 않았다. 외식하면서 카레를 먹을 일은 없었다. 물론 예외가 있다. 바로, 애인이 먹자고 할 때다.

카레는 다 맛없는 줄 알았는데
 
애인이 만들어준 비건 카레
 애인이 만들어준 비건 카레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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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년 전. 내 입과 혀에 '카레 혁명'이 일어났다. 아마 여름이 지나고 찬 바람이 솔솔 부는 무렵이었을 것이다. 애인과 나는 식사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애인은 카레를 먹으러 가자고 말했고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카레집으로 향했다. 

카레 음식점은 이름에서부터 인도 냄새가 그윽하게 풍기는 곳이었고, 우리가 카레 음식점에 들어서자 유창하게 한국어를 말하는 인도인이 우릴 안내했다. 음식을 주문했고 음료와 함께 카레가 나왔다.

유명 카레 음식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카레 한 수저를 입에 떠 넣었는데 걸쭉하면서도 자극적인 카레 가루가 내 혀와 입 안을 마구 헤엄쳤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맛이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동안 내가 맛없는 카레만을 먹어온 줄 알았다. 돌이켜 보니 어쩌면 똑같은 카레였더라도 다르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채식을 하기 전, 내게 반찬은 '고기'와 '채소'로만 구분되었다. 채소 이름을 많이 알지도 못할 뿐더러 오늘 먹은 음식에 어떤 채소가 있었는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카레 혁명이 일어났던 그 무렵은 플렉시테리언(상황에 따라 육식을 하는 채식주의자)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고 버무림(샐러드) 식단과 소금과 후추 정도로만 간을 한 음식을 한창 먹던 시기였다. 덜 자극적인 음식들, 간과 양념이 덜 된 음식들을 먹다 보니 미각이 되살아난 것이라 확신한다.

이후로도 꾸준히 카레 전문음식점에 찾아가 인도의 분위기를 흠뻑 적시며 카레를 먹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는데 동시에 비건(비건은 모든 동물성 식품과 상품 소비를 지양한다) 지향 식단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카레 음식점 방문이 줄었다. 카레 음식점의 메뉴들은 거의 대부분 육식 기반의 카레 음식이었다. 일부 야채 카레도 크림이나 우유, 치즈를 기반으로 조리되었고 카레와 함께 먹는 난에도 보통 우유가 들어간다.

어쩌겠는가? 직접 만들어 먹는 수밖에. 어느 날 자주 가는 생협에 채식 카레가루를 판매하길래 덥석 집어왔다. 비건 카레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1. 감자와 당근을 깍둑 썰기한 후 올리브유에 약한 불로 살짝 익힌다. 완전히 익히면 안 된다. 카레를 넣고 조금 더 끓이기 때문에 적당히 익혀야 한다.

2. 카레와 물을 섞어서 양파와 함께 끓인다. 카레와 물의 비율은 1:1.3 정도가 적당하다. 각자 스타일에 따라 물의 양을 줄이거나 늘린다.

3. 마지막! 늘 마지막이 중요하다. 따먹(따로먹기)과 부먹(밥 위에 부어먹기), 각자 스타일에 맞게 밥과 카레를 원하는 용기에 예쁘게 담는다. 
 
당근, 버섯, 토마토, 양파, 병아리콩, 두유, 고추를 넣은 비건 카레
 당근, 버섯, 토마토, 양파, 병아리콩, 두유, 고추를 넣은 비건 카레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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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번에는 고추를 좀 썰어 넣어서 조리했더니 얼큰한 카레를 먹을 수 있었다. 여기에 소량의 양배추나 고구마를 넣으면 달큰한 카레를 맛볼 수 있다. 개인 취향에 따라 원하는 채소, 물의 양 조절을 통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비건 카레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10월 1일은 채식인의 날, 한 끼라도 함께 해요

최근에는 좀 더 깊고 진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카레 요리를 개발했다. 물과 함께 비건 두유를 넣고, 다른 채소와 함께 토마토를 넣는다. 두유가 카레를 깊고 진하게 우려내고 맛을 풍성하게 만든다. 토마토의 새콤한 맛이 자칫하면 느끼할 수 있는 두유의 맛과 특유의 비릿함을 잡아준다. 

비건인들이라고 모두 카레를 예찬하지는 않을 테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카레는 구원이다. 쌀쌀한 찬 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가을은 카레가 참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카레는 항암효과도 있고 다양한 질병을 예방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채소를 넣는다면 영양만점 식단이 될 것이다.

요리를 자주 하기 귀찮은 사람들에게는 대용량으로 한 번에 조리해두고 보관해뒀다가 꺼내먹거나 도시락을 싸기에도 좋은 메뉴다. 카레가 구원이라는 말, 이제는 납득이 되는가. 

10월 1일은 채식인의 날이다. 카레 한 끼로 비인간동물의 생명을 구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하루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세상만 바꿀 줄 알았던 '채식'이 당신의 혀와 입을 혁명시킬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 계정에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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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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