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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보전'이 열리는 국제갤러리 K1전시장 입구
 "박서보전"이 열리는 국제갤러리 K1전시장 입구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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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에서 '박서보 개인전'이 10월 31일까지 열린다. 작품 16점이 소개된다. 대작은 10억대에도 팔린다. 10년 전, 그의 말대로 '밀리언 달러 작가'가 되었다. 60년대 '파리비엔날레', '상파울루비엔날레' 등 다수 국제전 참가했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2016년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 2018년 상하이 '파워롱미술관'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단색화'의 거장 돌아오다

박서보는 한국 '단색화(Dansaekhwa)'를 세계화한 선구자다. 그렇다면 단색화란 뭔가? 단색화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고,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난 아래처럼 정리해봤다.

"단색화란 색채보다는 작업 태도와 경향 그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한국인의 자연관에 기반을 둔다. 물질의 정신화, 그런 가치를 내면화한다. 마음을 비우고 수행하듯 그린다. 한국 전통화 속에 담긴 '여백, 관조, 풍류, 정중동, 기운생동, 무위자연' 정신을 우리 시대의 조류에 맡게 현대화한 것이다. 그래서 서양의 '모노크롬'과 차별화된다."
 
 박서보 화백. 가까이서 보니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기백이 느껴진다
 박서보 화백. 가까이서 보니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기백이 느껴진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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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생인 박서보는 심근경색, 뇌경색 등 건강상 두 번의 큰 위기를 잘 이겨냈다. 2000년 전까지는 16시간을, 칠순이 넘어선 8시간을 작업했다. 최근에도 지팡이를 짚고 서서 5시간씩 작업을 한다. 한 인터뷰에서 "구순인 이제는 정말 그리는 게 즐겁다"라고 고백한다.

간단히 정리해 보면, 박서보는 초기 '플러스(채우기)미술'로 시작, 무심과 무위자연의 '제로미술'을 통과한 후, '마이너스(비우기)미술'로 돌아갔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정신적 '자유'를 나눠주는 '치유'의 미술이 되었고, 구순이 되어 마침내 '향유'의 미술에 도달한 셈이다.

그의 작업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좀 설명해 보면 작가는 두 달 이상 물에 충분히 불린 한지 세 겹을 캔버스 위에 붙이고, 표면이 마르기 전에 흑연심로 이뤄진 굵은 연필로 선을 그어 나간다. 그렇게 해서 젖은 한지를 좌우로 밀려 산과 골의 형태를 만든다. 그게 마르면 거기에 아크릴 물감을 칠한다. 선 길이, 형태 등은 미리 엄격하게 구상해둬야 한다.

스스로 경험한 자연경관을 이렇게 연필로 긁어내는 반복행위로 축적된 시간이 겹겹이 쌓인다. 그런 면에서 촉각적이다. 거기에서 작가의 철학과 사유가 직조한 리듬이 생성된다.

그리려 하지 않는데 그려지는 것
 
 박서보 I 'Ecriture(描法) No.060910-08' 162×195cm 캔버스에 한지 2006
 박서보 I "Ecriture(描法) No.060910-08" 162×195cm 캔버스에 한지 2006
ⓒ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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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는 1950년대 '원형질 연작' 등을 통해 한국 화단에 추상회화와 서구의 앵포르멜(비정형)도 도입했다. 그리고 60년대부터 '에크리튀르(Écriture 프랑스어)'라는 연작을 시작했다. 우리말로 '묘법(描法)', 글씨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 정말 묘하다. 이 묘법은 '전기·중기·후기'로 구분된다. 여기선 그냥 '전기(1967~1989)'와 '후기(1990~2021)'로 나눴다.

전반기에는 회색이나 미색의 물감을 바르고, 연필로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비우고 수신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었다. 반면 후반기에는 한지를 도입해, 손의 흔적을 강조하는 대신 일정한 간격의 고랑 형태를 만들고 풍부한 색감을 입힌다. 그래서 자연과 합일을 추구했다. 90대 중반부터 화폭에 입체감을 주는 울퉁불퉁한 요철선을 썼다.

그의 선 긋기는 자신을 무화(無化)시키는 과정, 자신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무의 세계를 그렇게 그려진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업은 수신에 가깝다. 아무것도 그리려고 하지 않는데 그려지는 우연적이고 무의식적이고 원초적인 방식이다.

그는 이미 1973년 도쿄갤러리 전시 때부터 "누구나 선을 그릴 수 있지만 내 선은 내 안에서만 일어나는 독특한 현상이 있다. 거기서 '순수한 진동(pure vibration)'이 일어난다. 나의 그림은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는 곳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내 그림에는 이미지가 없다. 내 작업엔 형식이나 경향이나 강조점이나 시작도 끝도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서보 I 'Ecriture(描法) No.120715' 131×200cm 캔버스에 한지 2012. 사람 마음에 긴 상처자국이 보인다.
 박서보 I "Ecriture(描法) No.120715" 131×200cm 캔버스에 한지 2012. 사람 마음에 긴 상처자국이 보인다.
ⓒ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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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는 "21세기는 모두 병동환자'라고 규정한다. 또 "내 그림은 이미지가 폭력이 되는 시대, 자연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말한다. 또 "21세기 디지털 시대는 급격한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낙오자, 실패자, 탈락자가 많이 발생한다"라며 그래서 "그들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세계 곳곳에서 묻지마 살인과 테러가 빈번히 일어난다"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이들을 살리는 길은 위로와 치유 밖에 없다"라며, 미술은 "문명이 지친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고, 이들이 토해낸 걸 받아주고, 이들의 고통과 분노를 '흡인지'처럼 빨아들이고, 이들의 절망과 고통을 수용하고 품어주고, 그들의 희로애락을 쓰다듬어줘야 한다"라며 "미술은 이런 부적응자를 위한 안식처야 한다"고 덧붙인다.

살가운 색채의 미학
 
 박서보 I 'Ecriture(描法) No.080530'외 3개 75×58.3cm 캔버스에 한지 2008
 박서보 I "Ecriture(描法) No.080530"외 3개 75×58.3cm 캔버스에 한지 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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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는 디지털 문명으로 대대적 전환기에 놓인 시대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겠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돌파구로 가을의 단풍과 하늘 같은 자연이 애써 이룬 절정의 색채를 도입한다.

이번 전시의 색채를 보면 어린아이나 여성의 고운 살결 같다. 사람 마음을 다독이는 살가운 색이다. 색조가 파스텔 색조 그 이상으로 가볍고 경쾌하다. 관객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간다. 헤아릴 수 없이 기묘하고, 거부할 수 없이 유혹적이다. 예술가란 평생 10대 정서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데 그래선가 그의 색감은 여전히 10대의 그것이다.

그는 미술평론가 심은록과 인터뷰에서 '개나리'는 노란색만이 아니라, 개나리 위에 봄 햇살, 나는 새의 그림자, 꽃잎에 떨어진 빗방울이 다 포함한 색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선가. 그의 색채를 보면 그냥 색이 아니라 유채꽃, 철쭉, 올리브 등이 내는 노란색, 붉은색, 황금색 등이 연상된다. 이런 자연색이 잘 융합돼 고품격 단색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리라.

서구와 차별된 '물아일체'
 
 박서보 I 'Ecriture(描法) No.140410' 130×200cm 한지 2014. 관객이 그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물아일체가 된다.
 박서보 I "Ecriture(描法) No.140410" 130×200cm 한지 2014. 관객이 그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물아일체가 된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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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는 그림에서 주객의 구별이 없다. 자연과 인간도 그냥 하나다.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한다. 동양의 '물아일체' 경향을 보인다. 그가 애용하는 한지는 빛과 바람이 잘 통하는 그런 종이다. 이런 속성은 박서보의 동양철학을 담는 데 어울리는 매체다.

이제 박서보에게 자연은 모든 것이다. 그에게 지혜를 주는 명저이고 스승이다. 과거에는 책도 많이 읽었지만, 지금은 책도 안 읽고 자연과 소통이나 대화를 더 선호한다. 자연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에 교감하며 때로 탄성도 지른다.
 
 박서보 I 'Ecriture(描法) No.110502' 170×230cm 캔버스에 한지 2011
 박서보 I "Ecriture(描法) No.110502" 170×230cm 캔버스에 한지 201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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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막대기는 작가의 말로는 한강 다리 등을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란다. 한강의 다리가 낮에 보면 너무 삭막해 보이지만 밤에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단다. 막대기는 '문명', 막대기를 뺀 부분은 '자연'으로 비유한다. 그 말은 결국 상처 받은 문명을 자연이 포근하게 품어줘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런 말에도 함축돼 있다.

박 화백은 일제에 뿌리를 둔 '국전' 혁신파로, 한국 단색화의 거장으로, 홍익대 미대 학장을 하면서 서울대와 다른 화풍을 일으킨 교육자로 한국현대미술에 기여했다. 어려서 아버지 따라 가본 사찰과 거기서 본 수도자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단다. 무한대 반복 행위에서 진정 자유를 느꼈단다. 결국, 그는 순수한 열정과 끈기와 실험정신으로 최고봉에 도달했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박서보 화백 홈페이지: http://www.parkseobo.com/
박서보 화백 인터뷰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QWLE7Ec1Cmo
박서보 화백 유튜브 뉴욕(티나김갤러리): https://www.youtube.com/watch?v=F6H-1OCC2QQ
박서보 화백 국제갤러리 개인전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P0yeeRbTPS4
국제갤러리 홈페이지(Kukje Gallery website):
https://www.kukjegallery.com/KJ_exhibitions_view_1.php?page=current&ex_no=234&v=1&w_n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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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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