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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가 어떤 도시가 되었으면 하나요?
김다정 : 5·18 정신을 흔히 '주먹밥 정신'이라고 하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밥을 지었던 그날의 기억을 생각해보면, 이건 단순히 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봐요.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이 공동체를 바꿔나갈 수 있다'라는, 함께의 가치였던 거 같아요. 저는 광주가 주먹밥 같은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1월부터 광주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소위 '활동가'로 불리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5월까지 16개 분야에서 활동하는 17명의 활동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왜 광주라고 하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묵묵히 세상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꼼지락 꼼지락 무언가를 작당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들이 바라는 미래도시 광주의 모습을 미리 체험해보고 싶었다.

활동하는 분야는 각자 달랐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사회를 재해석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연은 지난 2001년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수직형 휠체어 리프트 사고로 사망한 직후 이동권 투쟁에 참여했다.

시각장애인인 그는 당시 특수교육학과에 재학중이었지만, 그곳에도 점자로 된 책은 없었다. 이동권 투쟁에 참여한 경험은 이 모든 것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세상의 재해석'을 통해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세금도둑잡아라'에서 행정감시운동을 하는 이상석은 1980년 5·18에 참여한 시민들을 순천에서 만났다. 트럭을 타고 순천에 온 시민군이 연대를 호소하는 목소리를 생생히 들었다. 이후 활동을 시작한 그는 군 휴가를 나왔다가 헌병에 체포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4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전두환 정권이 활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진행한 '녹화사업'의 일환이었다. 이후 여지껏 활동가로 평생을 산 그는 마을 예산, 지방행정을 감시하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전남노동권익센터에서 활동하는 문길주는 1991년 5월을 기점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보성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절친한 후배 김철수 열사의 분신이 계기였다. 두 사람이 막걸리를 나눠마신 다음날, 한 사람이 떠났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라는 무거운 언어가 남겨졌다.

농촌에서 건강을 신경쓰지 않고, 쉽게 다치곤 하던 어른들을 보고 자란 그의 눈은 세심했다. 노동자들이 화학물질을 다뤄가며 성실히 일하지만, 이 사회는 그들의 옷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짚어냈다. 그 옷을 그대로 집에 가져가 세탁기에 돌리면, 자녀와 다른 가족들의 옷에도 그 화학물질이 전달될 터였다. 그래서 '노동자 세탁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얼마 전, 광주 하남산단에 노동자 세탁소가 문을 열었다.

그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동안 활동하면서 어떤 일이 가장 힘들었는지 물었다. 이 도시가, 이 사회가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지 물었다.

광주여성민우회에서 활동하는 도담은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입장에서 우리 지역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퀴어 당사자들을 만난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광주 명진고등학교의 사학비리에 맞서 싸웠던 박가영은 학교 교사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너네는 박가영처럼 되지 말아라"라고 이야기하는 등 여러 비난을 받았던 일이 힘들었다고 했다.

광주에서 청년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문정은은 광주가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사람들 사이의 삶의 격차가 크지 않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광주에서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하고 있는 이세형은 이 사회가 염치와 가책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나만 보고 살지 않고, 내 도시만 보고 살지 않고, 인간 만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도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광주에서 활동가로 살아가기> 표지
 <광주에서 활동가로 살아가기> 표지
ⓒ 밥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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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7명의 목소리를 모아 <광주에서 활동가로 살아가기>라는 책을 펴냈다. 완성된 책을 다시 읽어보니,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사회의 개입이 필요한 순간을 마주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아, 그 자신이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기로 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세상을 재해석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모양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설령 혼자일 지라도 외로운 싸움을 꿋꿋하게 이어가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사람들'로 여겨지는 이들이 실은 우리 사회를, 그리고 이 도시를 아주 멋지고 따뜻한 곳으로 바꿔가고 있었다.

다음은 함께 인터뷰집을 만든 이가현이 <광주에서 활동가로 살아가기> 서문에 쓴 말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청년부채 운동을 하는 세연님의 말이었다. 인터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내가 그래도 잘하고 있구나 싶었다는 거.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자책하는 활동가들이 있다. 예민하고 민감하다는, 부담스럽다는 사회적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인터뷰집을 읽는 사람들이, 또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 활동가라는 명명이 조심스러울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광주에서 활동가로 살아가기

김동규, 이가현 (엮은이), 밥북(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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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 언론상을 수상한 것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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