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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부터 시작한 수묵 캘리 수업이 벌써 여덟 번째가 됐다. 한 달 동안 매주 토요일에 네 번만 한다는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첫 시간 백영란 선생님이 그릴 작품을 시연해주었다.

여기저기서 감탄의 소리가 쏟아졌고, 찬사의 눈빛은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이 반짝거렸다. 그와 동시에 외쳤다. "이걸 어떻게 그려요? 첫날인데요? 너무 어려워요!" 투덜거림이라기보다는 놀람과 존경이 깃든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우선은 선 그리기부터 시작해서 바다와 물고기를 그렸다. 말도 안 되는 첫걸음이었다. 앉지도 못하는데 걸으라니, 이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의 그림 속에 있던 넓은 바다에서 금방이라도 불쑥 솟아올라 헤엄쳐 나갈 듯한 물고기의 날렵한 몸매에 매력적으로 살랑거리는 꼬리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
 
배부른 물고기가 바다를 헤엄치며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을 그림
▲ 바다와 물고기 배부른 물고기가 바다를 헤엄치며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을 그림
ⓒ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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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그곳에는 배부른 떡붕어 한 마리가 '떡'하니 제자리인양 차지하고 있었다.몇 해 전 남편이 논산 탑정리 호수에서 데려왔던 오동통하게 살찐 그 녀석이 영락없었다. 배부르게 오동통하게 튼실한 그 녀석의 몸매는 관상용이 아닌 '붕어찜'을 하기에 제격인 모양을 갖추었다. 이렇게 살랑거리며 솟아올라 태양 아래 빛나는 금빛 물보라가 일어날 것만 같은 그 녀석의 자태와는 천지차이였다.
 
길고 여유롭게 늘어진 가지에 화사하고 당당함으로 가득찬 능소화의 자태는 어디로 사라졌는 지 모를 능소화 한 가지가 늘어져 있는 모습.
▲ 그리움을 담은 능소화 길고 여유롭게 늘어진 가지에 화사하고 당당함으로 가득찬 능소화의 자태는 어디로 사라졌는 지 모를 능소화 한 가지가 늘어져 있는 모습.
ⓒ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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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정절과 기품이 가득한 절개가 웅장한 소나무는 나에게로 와서 병약하게 웃자라고 메마른 소나무로 재탄생했다. 늘씬하게 뻗은 꼬리가 매력적인 정감 있는 새 한 쌍은 과식으로 통통해진 다리를 감추지 못하는 식욕 넘치는 한 쌍의 새로 다시 태어났다. 우아한 자태를 머금은 수선화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길게 늘어진 능소화는 장원급제하던 당당함과 여유가 새어 나와야 했지만 짧은 늘어짐은 조금의 여유로움도 당당함조차도 전혀 일도 갖지 못했다.

오늘의 그림은 화병에 꽂힌 국화를 표현하는 숙제였다. 가을볕에 고운 빛깔을 머금은 국화 몇 송이를 데려다 백자로 된 화병에 예쁘게 자리를 잡아주고 심심치 않게 나뭇가지 열매를 친구 삼아 그려주면 완성. 현실의 내 손은 아직도 '똥손'이다.
 
가을의 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국화를 꽂은 화병을 그린 그림
▲ 국화와 화병 가을의 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국화를 꽂은 화병을 그린 그림
ⓒ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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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의 주둥이는 왜 그렇게 뭉뚝한지, 몸통은 적당히 비대칭으로 멋들어져야 하건만 평소 비뚤거리던 붓질이 오늘따라 잘 맞는 건 또 왜 그런지. 꽃잎은 따로따로 떨어져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헤벌레 벌리고 말았다. 나무 열매는 한 점 붓질로 끝내야 하는데 그것도 떨리는 손길이 방해했다. 결국 그림을 망쳤다. 야속한 화선지만 한 장, 두 장, 세 장, 계속 구겨지고 있었다.

욕망 덩어리가 마음속에 가득한 채 손을 놀리니 선이 더 무디고 농도가 맞지 않았다. 비대칭이어야 한 것은 대칭이 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연출하고 말았다. 급기야는 자기 만족으로 아쉬움이 가득 담긴 그림 한 점만이 덩그러니 내 앞에 놓여 있다.

종국엔 이게 최선인 건가? 부끄러움과 욕망이 가득한 '국화와 화병'은 그렇게 탄생했다. 수줍음과 절제된 화려함이 품어져 나오는 선생님의 그림과 욕망을 가득 품은 부끄러운 내 그림 사이에 오늘 자리를 잡고 말았다.

처음에 붓을 들어 한국화를 시작할 때 수개월 동안 오로지 선만 그리면서 연습 또 연습을 쉬지 않고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 겨우 그림에 입문한다 했던가. 나는 지금 시작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붓놀림으로 감히 수십 년이 넘게 먹과 붓으로 세월을 보낸 선생님 그림을 본뜨는 것이 안 된다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드는 생각에 실소가 터졌다. 붓과 먹을 가지고 노는 선생님의 그림 시연을 보면서 그 속에 녹아있는 끊임없는 노력과 수많은 시간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차에 준비물을 실어놓고 다음 수업까지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은 채 내 손길만을 기다렸던 내 도구들은 딱 일주일 만에 다시 빛을 보았다. 그런 내가 그림이 어쩌고 선이 어쩌고 묵의 농도가 어쩌고를 말한다는 게 부끄러워졌다.

만 번의 노력이 있으면 결과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똑같은 것을 만 번은 해 봐야 하는데 고작 여덟 번째이다. 그것도 매번 다른 그림으로. 오늘부터 만 번까지는 아니어도 10번만이라도 열심히 잘 해보길 다짐해 본다. 끊임없는 연습으로 단련되었을 때, 그때의 결과물은 지금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수묵캘리, #수묵화, #한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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